황용엽, 어느날, 145.5x112.1cm,oil on canvas, 2018

화업의 길로 들어선 지 60여년이 지난 작가는 올해 88세(米壽)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인간’을 연구하고 새로운 시도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번 전시에 중점적으로 전시될 그의 최근 신작은 70년대의 색감과 유사한 회색과 블루의 단색조가 주를 이루고 있다.

작가는 자신의 작품이 곧 ‘삶의 증언’이라고 말한다. 증언은 곧 우리나라 현대사이며, 그의 작품을 보는 것이 우리 역사를 보는 것과도 같다. 그에게는 여전히 선명하게 남아 있으며, 그 기억을 캔버스에 기록하는 것이다.

기존 작품들에서 보였던 선과 색은 최근 작업에서는 간단해지고 단조로워졌으며, 한국적 문양과 패턴은 더욱 과감하게 표현됐다. 지난 작업에서는 작가의 주관적 이야기가 그려졌다면, 근작에서는 현대사적 요소들을 형상화했고 주로 70년대에 표현됐던 색감이 많이 사용됐지만 오히려 밝고 가벼워졌다. 그리고 다양한 구도와 분할된 화면에서는 각기 다른 스토리가 담겨 있는 듯하다.

작가는 1931년 평양에서 출생해 민족의 분단과 전쟁의 상처, 남겨진 이방인으로, 가족들과의 생이별 등 디아스포라적 의식과 격한 고통을 받았던 내면을 리듬감이 느껴지는 선의 형태로 표현하고 있다.

북한의 징집을 피해 위험한 월남을 감행했던 청년 황용엽은 국군에 입대해 6.25에 참전했으나, 총상을 입고 제대한 후 삶의 전쟁터에 내동댕이쳐진다. 연고가 없던 남한사회에서 생존을 위해 치열한 사투를 벌이던 황용엽은 우여곡절 끝에 편입한 홍익대학교를 1957년 졸업한 후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시작한다. 그는 작업 초기 ‘실존미술가 협회’(1958년)에 관여하고 ‘앙가주망(Engagement)’의 창립멤버로 활동(1961~1969년)하기도 했지만, 이후 어떤 형태의 그룹활동에도 참여하지 않고 본인의 독자적인 작업에 몰두한다.

60년대부터 지금까지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간’은 왜곡된 형태로 나타나 점점 도식화됐으며 단순화돼 시대마다 다르게 표현됐다.

60년대에는 어두운 색채로 그가 보고 느꼈던 극한의 고통을 담았으며, 70년대 작품 속의 ‘인간’은 기하학적인 선으로 도식화되고 회색과 갈색 등 무채색의 단색조 배경으로 변화했다.

80년대 이후부터는 지난 작업들과 달리 다양한 색감으로 한국적이며 토속적인 배경을 표현하며 새로운 시도를 하기도 했다. 2000년대 이후에는 1987년작 ‘무녀의 비밀Ⅰ’ 작품에서 시작된 무속, 샤머니즘 요소가 다시 등장하고 어린 시절 강서 고분벽화를 자주 접했던 문양과 패턴들이 표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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