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이 김병준 비상대책위원장 제안으로 ‘자율경제’와 ‘공정배분’을 근간으로 한 가칭 ‘국민성장론’의 세부 정책을 마련중이다. 같은 당 김성태 원내대표가 ‘출산주도성장론’을 제기한지, 보름도 되지 않은 시점이다. 여성의 몸을 인격체가 아닌 공공재로 보는 원내대표의 천박한 발언이 역풍을 맞자, 비대위원장이 구원투수로 국민성장론을 제기한 모양새다. 

뚜껑을 열어봐야 분명해지겠지만, 국민성장론은 소방수 역할보다 패전처리용이 될 개연성이 매우 크다. 문재인 정부 이후 차기를 꿈꾸는 자유한국당이 게임을 뒤집을 최소한의 가능성마저 스스로 차단하는 자충수다. 정략에 따른 이해득실로 따지면 시민사회엔 호재지만, 한국경제 미래를 고민하는 입장에선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김병준 위원장이 지난 17일 비상대책위원회에서 밝힌 ‘국민성장론’은 그 이름과는 정반대로 ‘기업성장론’으로 채워졌다. 국민성장론의 두가지 핵심 키워드중 하나인 ‘자율경제’엔 재벌대기업의 독과점구조를 깨지말고 묵인하라는 주문이 담겼다. 장식품에 불과한 또다른 구호 ‘공정배분’에도 기업성장론 은폐를 넘어, 기업의 몫은 건들지 말라는 메시지를 담았다.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론에 대해 김 위원장은 ‘성장없는 성장정책’이라 폄하했다. 산업정책이 부실하거나 없고, 책임없는 노동정책으로 꺼져가는 대한민국 성장엔진이 꺼진다며 새로운 성장담론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김 위원장은 “경제성장론의 기본이 정부여당은 소득을 늘려주면 소비가 촉진되고, 그러면서 투자와 생산이 일어난다고 했”다며 “오히려 반대로 경제의 기본으로 돌아가서 투자를 늘리도록 하고, 그것이 생산·소득·소비·투자로 확대 재생산되는 것이 맞다”며 새로운(?) 성장담론을 제시했다. 이명박근혜 정권이 줄기차게 시행했던 ‘기업 프렌들리’, ‘대기업 중심 성장론’으로 회귀하자는 주장일 뿐이다. 

신자유주의와 함께 ‘이윤주도성장’의 전도사였던 세계은행(IBRD)과 국제통화기금(IMF)도 ‘낙수효과’ 이론을 폐기했다. 양육강식 시장원리에 따라 (재벌)기업이 이윤을 독점함으로써 발생한 대중소기업 양극화 현상은 대기업 중심 성장론이 가져온 필연적 결과다. (재벌)기업의 곳간을 차고 넘치는 반면 가계소득은 쪼그라져, 갈수록 심화되는 사회양극화도 낙수효과가 작동되지 않기 때문이다. 비정규직 양산과 노령계층 등 빈곤층 증가로 내수부진이 구조화되고, 저성장기조가 고착화된 이유도 이윤주도성장만을 고집했던 이명박근혜 정권 탓이다. 

이런 이유로 IBRD와 IMF도 낙수효과 종언을 선언하면서 ‘포용적성장론’ 도입을 회원국에게 권고했다. 기업 이윤주도성장에 대한 반성적 고려에서 정립된 포용적성장론의 한국버전이 소득주도성장론이다. 그럼에도 고목나무에 꽃이 피길 기다리듯, 죽어 말라비틀어진 대기업 중심 성장론을 꺼내들고 어쩌자는 것인가. 실패한 과거를 반추하고, 고쳐 배우려는 최소한의 시도조차 하지 않는 자유한국당이다. 국민성장론이 작동하기 위한 전제, 기업 투자활성화를 위해 김 위원장이 제시한 해법이란게 이명박근혜 정권이 사용했던 방법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했다. 

김 위원장은 문재인 정부의 경제운용 방식을 ‘정부주도와 정부중심’의 ‘국가주의’라고 규정하고, “시장내의 자율배분 체계를 강화하는 자율주의를 기본으로 한다”고 했다. 구체적인 정책으론 ‘전면적인 네거티브 규제시스템’으로 바꿔 기업투자를 촉진하겠다며 ‘혁신밸리’ 구상을 제안했다. 창업 촉진을 위한 ‘스타트업밸리’, 소상공인·중소기업 성장을 지원하는 ‘그로우업밸리’, 해외진출기업의 국내 유턴을 촉진하는 ‘리쇼어링밸리’를 구축하겠다고 했다. 

본말이 전도된 정책이다. 재벌대기업의 무한탐욕을 시장에서 규제하지 못해 발생한 사회 전반의 극단적인 양극화로 대한민국이 고통받고 있다. 정부의 규제가 아니라 기업의 자율에 맡긴 결과, 스타트업과 소상공인·중소기업은 대기업의 수탈대상으로 전락했다. 해외진출기업의 유턴을 위해 지금 필요한 것은 ‘기업의 자율’이 아니라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다. 미국정부의 통상정책을 옹호할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유턴하는 미국기업이 늘어나는 이유는 트럼프가 자율대신 책임을 선호해서다. 

국민성장론중 ‘공정배분’에 대한 김 위원장의 발상은 ‘귀족노조’를 입에 달고 살았던 홍준표 자유한국당 전 대표와 판박이다. 김 위원장은 “공정배분을 위해서는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개혁할 필요가 있다”면서 “대기업 귀족노조들이 정부의 과보호를 방패로 협력업체 근로자들의 이익까지 폭식하는 악행도 끝내야 된다”고 주장했다. 대기업노동자가 ‘고임금’이란 주장이 사실이더라도, 이들이 협력업체 노동자의 이익까지 폭식한다는 주장은 억지궤변이다. 사내유보금만 1000조가까이 쌓아놓고도, 협력업체 사업주·노동자의 정당한 몫을 뺏어가는 재벌대기업의 범죄를 감춰주려는 꼼수다. 쥐꼬리만한 빵을 두고 ‘을’과 ‘병’이 싸워, 이긴 놈이 좀 더 먹으라는 얘기다. 재벌대기업의 기득권은 손대지 말고, 협력업체 사장과 노동자 모두 주면 주는대로, 받으며 살란 파렴치한 주장이다.  

나아가 김 위원장은 공정배분이란 명분으로 기간제 2년이상 사용제한 규제를 원점에서 재검토하는 등 비정규직 정책을 전면적으로 개선(?)하겠다고 했다. 지금도 노동자의 절반이 비정규직인데, 사용제한 규제를 풀어 전체 노동자를 비정규직으로 바꾸겠다는 주장에 다름 아니다. 국민성장론으로 포장했지만, 국민 전체를 기업의 필요에 따라 쓰고 버리는 소모품으로 만들겠다는 발상이다. 극우성향의 홍 전 대표도 감히 하지 못했던 극단적인 기업프렌들리정책이다. 

촛불혁명 이전과 이후 국민의 의식은 분명히 다르다. 민주공화국 시민으로 헌법적 가치를 수호하면서, 우리사회 공동체가 추구해야 할 이상을 함께 공유한다. 재벌대기업의 갑질에 분노하고, 사회적 약자의 아픔을 공감하면서 연대의 손길을 내밀길 주저하지 않는다. 종부세 논란을 보면서, 극우성향 언론과 정치모리배가 선동하는 ‘세금폭탄’이란 억지궤변을 구별하는 혜안도 가졌다. 

이미 국민의 심판을 받은 홍준표 전 대표야 국민감정과 무관하게 자신만의 길을 갈 것이고, 가도 무방하다. 그런데 아직 자신의 패를 다 까지 못한 김병준 비대위원장에겐 국민의 심판을 받을 기회가 남았다. 그러나 경제학적으로 효용가치가 이미 소멸됐고, 反역사·反국민 정책으로 채워진 국민성장론을 고집한다면 정치인 김병준에게 미래란 없다. 시대적 소명을 역행하는 국민성장론으로 자신에게 주어질 수 있는 기회를 차버리는 우를 범하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