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습처럼 내려온 조상들의 소박한 여가행위 중 하나는 단풍놀이다. 딱히 단풍놀이에는 흔한 놀이처럼 정해진 행위나 규칙이 없다. 가을이 되면 선선한 날씨에 단풍 구경을 하며 정취에 취하는 것뿐이다. 단풍놀이와 같은 여가활동은 예부터 여러 시구에 빈번히 등장해 왔다. 단순히 관람만 하는 것에서 나아가 오롯이 계절을 즐기는 여가시간이 우리의 문화를 풍부하게 해 준 것이다.

고전작품으로 남아 있는 문화유산으로 비추어 보면, 매년 돌아오는 이 관습은 단순한 단풍구경이 아닌 놀이로 불리는데 충분한 조건을 가지고 있다. 오늘날 이러한 관습 때문에 여전히 가을이 오면 많은 이들이 어디론가 여행을 떠나고 싶어 한다.

취향, 지식, 교양을 국제적으로 공유하게 된 그랜드 투어

그랜드 투어는 16세기부터 18세기까지 유행했던 여행이다. 영국에서 시작해 로마로 끝나는 귀족들의 여행으로, 부를 축적한 영국인들이 교양을 쌓고 신학문을 익히고 혹은 과시하기 위해 이뤄졌다.

2018부산비엔날레 전시작품, 임민욱(Minouk LIM) 만일의 약속.<사진제공=부산비엔날레>

그랜드 투어는 16세기 중엽 엘리자베스 여왕의 후원으로 대륙을 여행한 필립 시드니 경이 그 시초다. 시드니 경은 가정교사와 하인 그리고 4필의 말을 대동해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을 방문한 후 귀국했다. 시드니 경은 3년간 여행하며 외국어와 각종 예법을 익혔다. 이후 점차 많은 영국의 귀족들은 그랜드 투어에 떠났다. 그랜드 투어를 통해 영국인들은 점차 편협한 세계관에서 벗어나는 계기가 됐다.

그리고 단순한 각종 문화를 접하고 또 이를 전파했다는 점에서 그 특징이 있다. 그랜드 투어의 파급력은 예술계에서 가장 효과가 크게 나타났다. 여행 중 구매한 그림과 음악은 영국의 예술계를 풍요롭게 해 주었다. 그리고 대륙의 건축양식을 영국에 도입해 건축기술의 발달에도 기여했다. 그랜드 투어를 통해 영국 귀족들의 관심이 그들 내부에서 나아가 국제적인 차원으로 취향, 지식, 교양을 공유하게 된 계기가 된 것이다.

이후 철도의 발달로 19세기 이후부터는 일반인들도 여행이 가능해졌기에 더 이상 그랜드 투어라는 명칭의 여행은 사라졌다. 그러나 오늘날에도 미술계의 행사가 곳곳에서 열려 그랜드 투어라 칭하곤 하는 투어가 있다. 이탈리아의 베니스 비엔날레와 스위스의 아트 바젤, 독일의 카셀 도큐멘타와 공공미술을 주제로 하는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가 그것이다.

베니스 비엔날레는 2년마다 열리고 아트 바젤은 매년 열려 함께 관람하곤 하는데 카셀 도큐멘타는 5년 주기,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는 10년 주기로 열리기에 이 모든 행사가 합쳐지는 기간에는 전 세계 미술인들과 애호가들이 유럽으로 현대미술 여행을 떠난다. 바로 지난해가 이러한 행사가 겹쳐서 열리는 해였고, 다음은 2027년에 아마도 한꺼번에 관람이 가능한 유럽 현대미술 여행이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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