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3년, 참을성 없는 44살의 엔지니어 찰스 헐이 “좀 더 빨리 시제품 낼 욕심에” 3D프린터(당시 헐은 ‘입체인쇄’라고 불렀다)를 발명해 냈을 때만 해도, 이것이 30년 후 산업지형을 무자비하게 흔들어버릴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역사상 첫 3D프린터를 함께 지켜봐주길 바랬던 그의 아내조차 “뭐길래?”라는 밍밍한 반응을 보였을 뿐이었다.
2014년 4월 중국 상하이의 대표적 신도시 칭푸에서는 한 디자인설계회사(건설회사가 아니다)가 3D프린터로 하루만에 열채의 집을 뚝딱 지어냈다. 정확히는 3D프린터로 ‘출력’한 구조물을 24시간만에 조립해 60평짜리 집 열채를 지어올린 것이다. 놀랍게도 채당 건설비용은 500만원 정도로 전해졌다.
3D인쇄는 이제 거부하기 힘든 도도한 흐름이다. 편리함이나 단순함보다 더 주목받는 것은 무궁무진한 응용 가능성이다. 애초에 헐이 공들였던 시제품이나 캐릭터 제작은 ‘고전’에 가깝다. 앞서 예로 든 주택은 물론 각종 부품 및 장비, 악기, 피자 같은 음식물, 인공장기까지 상상할 수 있는 대부분의 것을 조준할 수 있게 됐다.
3D인쇄는 컨슈팩처러(consufacturer)라는 신조어도 뽑아냈다. 소비자(consumer)와 제조업자(manufacturer)의 조합이 상징하는 그대로, 소비자와 생산자의 경계를 무력화시킬 수도 있다는 것이다. ‘입력자료’만 주면 뭐든지 ‘출력’해내는 도깨비 방망이라면 수많은 일자리와 ‘전통적’ 제조업체를 역사의 뒷골목으로 돌려세울 수 있을 것이다. 생산 단계에서 노동력의 비중이 줄어든다면 ‘제3세계’에 공장을 세울 매력도 명분도 없어진다. 시저의 것은 시저에게. 미국 기업은 미국에서, 일본 기업은 일본에서 생산하면 그만이다. 광고에서 토스터기가 현금 ‘구워’ 내듯, 가정용 혹은 산업용 3D프린터가 대부분의 상당부분의 생산과 물류기능을 대체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제3의 산업혁명’이라며 3D프린터에 눈을 꼿꼿이 세우는 것이 호들갑만은 아닐 수도 있다. 이러다가 현대판 러다이트 운동이라도 봉기할지 모르겠다.
산업만이 아니다. 최근 일본에서는 20대 대학 교직원이 3D프린터로 ‘출력’한 권총을 개발했다가 경찰에 붙잡혔다. 우리돈으로 60만원 정도에 구매했다는(선반기술을 배운 이 청년이 직접 제작했다는 설도 있다) 3D프린터로 뽑은 권총은, 합판 10장을 관통할 수 있는 살상무기의 위력을 지닌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5월 미국에서 20대 청년이 ‘해방자’라는 이름의 3D프린터 기반 권총 설계도를 인터넷에 올려 다운로드 10만건을 기록한지 1년만의 일이다. ‘해방자’가 될지 ‘점령자’가 될지 몰라도, 금속탐지기를 유유히 따돌릴 수 있는 플라스틱 권총에 혈기방장한 20대 청년만 침을 흘릴 리는 없다.
변화할 것인가, 변화될 것인가. 벌써부터 한창인 진부한 갑론을박에 끼어들 생각은 없다. 다만, 진보 혹은 발전이라는 이름으로 점차 잦아지는 이러한 낯섦이, 종국에 어떠한 얼굴로 우리 인생에 자리를 틀고 앉게 될지 기대만큼 두려움도 함께 자라고 있다.
<저작권자 ⓒ 중기이코노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중기co-이슈
중기co-비즈
객원 전문기자 칼럼
알림설정
독자의견
총 0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