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아트 슈퍼스타 앤디 워홀은 “훌륭한 사업은 가장 뛰어난 예술이다”라고 말하며, 자신의 작업실을 팩토리(공장)라고 명명했다. 실크스크린 기법을 중심으로 ‘생산’한 그의 작품은 아직까지도 팝아트를 대표하는 작품들로 사랑받고 있다. 박주은은 앤디 워홀과는 다른 방식으로 실크스크린을 활용하는 작가다. 대중적 이미지를 이용한 복제 판화가 아닌, 인간 내면의 추상적 감정을 레이어로 제작하고 조합해 단 하나만 존재하는 오리지널 판화 작품을 선보이는 작가 박주은에 주목해보자.

Q. 자신의 작품세계를 간단히 소개해 달라.

저는 내면의 풍경을 판화로 그리고 있는 작가 박주은입니다.

Q. 내면을 표현한 작품이라고 했는데, 좀 더 구체적으로 얘기해준다면?

저는 사람의 내면에는 복잡한 감정들이 존재한다고 생각하고, 그중 스스로를 괴롭히게 되는 것들도 많다고 생각해요. 저에게도 그런 감정과 생각들이 많았기에 이를 잊기 위해 작업을 진행하고 있어요. 자신 안에 알 수 없는 것들을 무의식의 표현으로 담아내기 위해 선을 중심으로 제가 느낀 감정들을 표현한 결과물이 제 작품이에요. 그래서 제 작품을 감상하시는 분들도 즉흥적으로 그 느낌 속에 몰입해 복잡한 생각없이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게 하는 그런 작품을 하고 있어요.

Q. 작업의 시작이 주로 구상적인 인간을 소재로 추상화시켜 가고 있는데, 이 인물은 자신에 대한 표현인가?

제가 표현하는 인물은 특정 누군가가 아닌 그냥 보편적인 인간을 상징하는 실루엣으로 사용하고 있어요. 저의 이야기로 시작된 작품이지만 누구도 아닌 동시에 모두를 상징하는 이미지로 활용되는 거죠. 인간 내면을 표현하려다 보니 추상적인 색면과 부유하는 듯 느껴지는 다양한 형태가 하나로 엮여 공간으로 보이게끔 작업하고 있어요.

Q. 작업 노트를 확인해 보니 힘든 시기에 작품이 위로가 되었다고 했는데, 어떤 계기로 현재의 작품에 도달했는지 소개해 준다면?

과거에 여러 힘든 상황들이 동시에 벌어진 시기가 있었어요. 정신적으로 무너진 힘든 시기였었죠. 오히려 어릴 때는 사회현상이나 이슈에도 관심이 많았는데, 내 삶이 무너지니까 주변을 바라볼 여유도 없어졌었죠. 그 시기 박서보 선생님의 개인전을 보게 되었는데 크게 감명받고 위로를 받았어요. 커다란 전시실을 메운 큼직한 추상 작품들 속에서 치유 혹은 안정되는 감각을 느끼게 되었고, 공부하면서 이 감각이 예술이 전달하는 숭고미라는 걸 알게 되었어요. 그래서 저도 그런 작품을 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자세한 묘사보다는 단순화되면서도 깊이감이 쌓여있는 형태로 작품이 변화되어 온 것 같아요.

Reflection of the Mind_100x140cm_silkscreen_2017

Q. 지금 제일 추천해주고 싶은 혹은 아끼는 작품이 있다면 소개해 달라.

2017년작 ‘Reflection of the mind’를 추천해드리고 싶어요. 이 작품은 좀 더 소우주를 형상화한 작품이었어요. 자신의 내면 속 공간은 끝이 어딘지 알 수 없다는 생각에 끝없이 계속 부유하는 형태를 다뤄봤어요. 작품은 화면이라는 공간 안에 제한되어 있지만, 계속 확장되어 가는 이미지를 표현한 작품이에요. 이 작품을 통해 끝을 알수 없는 사람의 마음과 더불어 감상하는 각자가 스스로에게 빠져드는 시간을 가져보면 좋을 것 같아요.

Q. 드로잉이나 페인팅도 제작하지만, 실크스크린 기법을 활용해 만드는 작품이 눈에 들어왔다. 기법적인 선택은 어떤 기준으로 이뤄지는가?

기본적으로는 선 표현에 집중하고 싶었고 그 표현 방식을 연구하다보니 실크스크린을 활용하게 되었어요. 초기에는 펜촉과 잉크를 이용해서 면처럼 쌓는 작업을 했었는데, 작업 시간 소모가 커서 좀 더 다양한 작업 실험을 해보게 되었고 실크스크린을 활용해 보았어요. 제가 원하는 드로잉적인 이미지와 중첩되는 깊이감이 뭉개지지 않고 온전히 표현될 수 있는 기법임을 확인하게 돼서 판화 기법을 활용하고 있어요.

Q. 판화적 작업의 단점도 분명 존재할 텐데 판화를 고집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보통 판화를 중심으로 작업하면 에디션의 존재 때문에 시장성에 대한 문제를 걱정하시는 경우가 있는데, 저는 판화의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제 작품은 에디션 없이 하나의 판으로 단 하나의 작품을 만들고 있어요. 여러 형상의 레이어들을 조합하며 하나의 작품이 형성되기 때문에 동일한 결과물은 하나도 없이 원본성이 강한 판화를 제작하는 거죠. 제가 가진 복합적인 감정과 내면을 표현하는데 판화의 이러한 특성이 오히려 장점으로 활용될 수 있어서 지금은 판화 중심으로 작업을 하고 있어요.

Q. 현재 작가로서의 고민이 있다면?

당연히 전업 작가로 살아갈 수 없는 환경이기 때문에 시간을 쪼개야 하지만, 다행히 저는 작업할 수 있는 시간은 확보 가능한 부업을 하고 있어요. 그래서 오히려 시간이 지나 신진이 아닌 중견작가가 되었을 때 성공하지 못하면 어떻게 생존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해보게 되는 것 같아요. 요즘은 큰 성공보다는 꾸준히 오래도록 작업을 이어가는 작가로 살아가고 싶다는 막연한 고민을 품고 있는 것 같아요.

Q. 마지막으로 앞으로 계획을 간단히 소개해 달라.

지금은 실크스크린을 주 재료로 작업하고 있지만, 매체를 확장해보고 싶어서 지금 VR아트도 연구하고 있어요. 더불어 패브릭 작업도 진행하고 있는데 다양한 매체 실험을 통해 평면과 가상, 실제 삶을 넘나들며 작품 세계를 발전시켜나갈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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