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개혁의 핵심은 주식지분이상 지배력을 행사하는 재벌기업 총수일가의 전근대적 경영행태를 뿌리뽑는데 있다. 권한없이 부당한 지배권 행사를 통해 시장에서 ‘갑’의 지위를 구축한게 재벌총수일가다. 이들은 ‘단가후려치기’·기술탈취 등 중소기업에게 온갖 갑질을 행해, 공정이 담보돼야 할 시장 자체를 파괴했다. 또 자회사와 손자회사·증손회사 형태로 사실상 개인회사를 세우고, ‘일감몰아주기’를 통해 재산과 경영권을 자식에게 세습하는 ‘재벌공화국’을 만들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대선에서 재벌개혁 공약을 제시했던 배경에는 재벌공화국을 해체하고 공정경제를 구현하라는 국민의 명령이 있었다. 문제인 정부 출범 후 1년6개월이 지난 지금, 재벌총수일가의 부당한 지배구조가 해소되기는커녕 보다 강화된 것으로 드러났다. 보다 심각한 문제는 이들의 부당한 지배구조를 관리·감독해야 할 주무부서인 공정거래위원회조차 실효적인 대책을 내놓지 못한다는 점이다. 소유지배구조 개혁과제, 재벌총수의 선의에 기댄 ‘김상조식 재벌개혁’이 바닥을 드러냈다는 평가까지 나온다.

박기흥 공정거래위원회 지주회사과장이 13일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공정거래법상 지주회사 현황 분석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지주회사 전환을 통해 총수일가 지배력이 이처럼 비정상적으로 강화된 이유에 대해 공정위는 이른바 ‘자사주의 마법’이 작동한 결과로 분석했다. 자사주 마법이란 인적분할 방식으로 기업이 분할하면, 의결권이 없던 자사주에 의결권이 부활하는 현상을 말한다. 예컨대 특정기업(A)을 지주회사(B)와 자회사(C)로 분할시 B사는 자사주를 그대로 승계받고, 자사주 비율만큼 C사의 분할신주를 배정받는다. B사가 받은 분할신주에는 자사주와 달리 의결권이 발생하고, 그에 따라 총수일가는 그만큼의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다.  

총수일가 소유가 아닌 회사 소유 자사주에 의결권이 발생하면, 총수일가는 자사주 의결권을 활용해 추가자금을 전혀 투입하지 않아도 B사와 C사 모두의 지배권을 강화할 수 있다. 공정위도 이날 보도자료에서 ‘자사주취득→인적분할→현물출자’ 과정을 통해 A기업집단 지주회사의 총수일가 지분율이 16.9%에서 50.1%까지 확대됐다고 밝혔다.

자사주 소유자인 기업과 전체 주주의 권리를 침해하고, 총수일가가 부당하게 의결권을 행사해 지배력을 강화하는 행위는 현생 상법의 허점을 악용한 꼼수다. 또 자사주의 의결권이 총수일가 이익만을 위해 부당하게 사용되기 때문에, 주주평등의 원칙을 깨는 반시장행위다. 이에따라 20대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 바른미래당 오신환 의원 등은 지주회사 전환시 자사주 의결권을 제한하는 상법개정안을 이미 제출했다. 

공정위가 발표한 ‘2018년 공정거래법상 지주회사 현황 분석 결과’는 재벌총수일가의 부당한 지배력 강화 추세가 예전보다 강화됐음을 확인시켰다. 그럼에도 이날 공정위는 “제도개선이 필요하다고 판단된다”고 지적했음에도, 과도한 지배력 확대를 방지하기 위한 아무런 대책을 제시하지 않았다. 순환출자 해소를 위한 대안으로 지주회사를 상정하는 공정위로서는 자사주의 마법을 금지하는게 부담이었을 터이다.

공정위, 이제 선택해야 한다. 재벌대기업이 소유지배구조 개선의지를 보이지 않는다면, 남은 수단은 강제력 외에는 없다. 국회 계류중인 상법개정안 통과를 위해 일정한 역할을 하든지, 그게 아니라면 공정위 스스로 제도개선 방안을 내야한다. 그것도 가장 빠른 시간내. 재벌대기업 총수일가의 자사주 활용 제한은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공약이기도 하다. 공정위가 우물쭈물 하는 지금도, 재벌기업 총수일가의 부당한 지배력 강화 시도가 계속되고 있음을 상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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