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채민선 기자>   ©중기이코노미

서울에서 남양유업 대리점을 운영하는 A씨는 인근 중소형 슈퍼마켓에 남양유업이 생산한 커피·우유 등의 제품을 공급한다. 그런데 A씨는 제품 공급계약의 당사자인 자신과 슈퍼마켓이 체결한 계약서를 한번도 보지 못했다. 대리점과 슈퍼마켓 간 제품공급 계약서를 남양유업 본사가 대신 체결했고, 그 계약서도 남양유업 본사가 보관하고 있기 때문이다.

본사에 계약서를 달라고 요청했지만 주지 않았다

이에따라 대리점주 A씨는 슈퍼마켓에 제품을 공급할 의무와 대금수령 의무가 있음을 추정할 뿐, 계약서에 어떤 내용이 포함됐는지 알지 못한다. 적게는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 상당의 제품이 오가는 계속적 거래관계에서 대리점주가 자신의 권리·의무를 명시한 계약서 자체를 보지 못했다는 현실은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다. 남양유업이 아닌 타 유제품 브랜드 대리점주는 “본사가 나서 마트나 상우회 등의 계약을 대신해주는 경우는 없다”고 중기이코노미에 밝혔다.

대리점주 A씨에 따르면 대리점과 슈퍼마켓 간 제품공급 계약은 남양유업과 상우회 간에 체결된다. 상우회는 중소마트들의 모임으로, 공동구매로 구매단가를 낮춰 시장경쟁력을 높이고자 만들어진 단체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상우회는 전국적으로 여러 지역에 크고 작은 규모로 조직돼 있다.

남양유업 A씨는 “대리점을 인수하고 운영을 하다보니 수익이 너무 안나와 매출분석을 했다. 이 과정에서 공장도가 이하로 납품하는 거래처가 있어 본사에 상우회와 체결한 계약서를 달라고 요청했다”고 말했다. 계약단가와 납품 조건 등을 알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담당 영업사원은 차일피일 미루며 계약서를 주지 않았다. A씨는 “계약서도 대리점이 한창 바쁠 시간에 영업사원이 찾아와 인감도장을 달라고 해 도장만 찍어간다”고 말했다. 계약서 원본은 물론 사본도 받지 못하고 계약내용조차 알 수 없다는 주장이다.

남양유업 “상우회와 대리점 요청으로 계약 등의 역할을 한 것”

남양유업 본사 관계자는 중기이코노미와의 통화에서 “남양유업은 상우회와 대리점의 요청으로 위임받아 계약 등의 역할을 한 것”이라고 밝혔다. 반면 대리점주 A씨는 “남양유업과 상우회가 거래단가는 물론이고 어떤 조건으로 계약을 체결하는지 알지 못하고, 알려주지도 않았다”고 반박했다.

대리점주들의 위임을 받아 계약을 적법하게 체결했다는 남양유업 관계자의 말이 사실이라도,  대리점주가 계약의 주요내용 자체를 모른다는 사실은 설명이 안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권리·의무 관계를 적시한 계약서는 통상 2통을 작성해 계약 당사자가 각각 1통씩 보관하는 관행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남양유업 본사가 위임권한을 남용해 대리점주가 행사해야 할 계약결정의 자유를 침해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계약당사자도 아닌 본사가 대리점주에게 납품가 통보

A씨와 다른 대리점주 얘기를 종합하면, 남양유업은 대리점주들의 위임을 받아 상우회와 계약하면서 최저가로 납품가를 정해 대리점에 통보한다. 결국 위임이란 형식으로 빌어 대리점과 상우회가 계약을 체결하지만, 계약내용을 대리점이 전혀 컨트롤할 수 없는 구조란 얘기다. 이와관련 한 대리점주는 “상우회 납품 마진율은 약 10%인데, 여기에 반품되는 비용을 대리점이 모두 부담하기 때문에 상우회와 거래하는 것은 봉사활동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라고 말했다.

대리점주가 계약내용을 전혀 모른다는 주장에 대해 남양유업 관계자는 “커뮤니케이션상의 오류나 오해일 수 있다”고 해명했다. 또 이 관계자는 상우회와 대리점 간 공급계약서를 기자에게 보여 줄 수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 “상우회와 협의해 결정할 사안”이라고 말했다.

상우회, 대리점주보다 협상력이 강한 본사와 거래…통행세 의혹

상우회와 협의해 계약서 공개여부를 결정하겠다는 남양유업 관계자의 발언에 비춰보면, 상우회는 대리점주와 체결한 계약서를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대리점주의 거듭된 요청에도 제공하지 않고, 기자에게 보여 줄 수 없다는 상우회와 대리점주 간 계약서는 의혹덩어리다. 계약서에 공개해선 안되는 내용이 포함된 것은 아닌지, 또 대리점주가 알면 안되는 내용이 포함된 것은 아닌지 하는 의혹이다.

상우회가 계약당사자로 등장하는 이유도 납득이 안되는 대목이다. 대리점으로부터 슈퍼마켓이 보다 싼 값에 제품을 공급받기 위해서는 남양유업 본사보다 힘이 약한 대리점과 협상하는게 보다 유리하다. 그럼에도 상우회가 대리점에 비해 우월적 지위를 가진 대기업 남양유업과 협상한다면 자신이 대리하는 슈퍼마켓에 불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아주 크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대리점과 슈퍼마켓 간 거래관계에 상우회를 끼워넣어 남양유업 또는 누군가가 통행세를 받는다는 의혹도 제기된다.

<저작권자 ⓒ 중기이코노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관련기사 ㅣ “돈 빌려줄테니, 프렌치카페 40박스 받으세요”
• 관련기사 ㅣ 극단적인 선택으로 ‘남양유업 갑질 알려야겠다’
• 관련기사 ㅣ 남양유업, 6년째 끝내지 못한 불공정행위 논란
• 관련기사 ㅣ “남양유업 밀어내기 증거 복원”…불공정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