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존중 사회’, 개혁성향의 노동법 학자의 말도 노동단체 수장이 한 발언도 아니다. 대한민국 대통령이 스스로 약속했다. 대한민국 역사에서 단 한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노동존중 사회, 정녕 우리 공동체가 갈 수 없는 신기루일 뿐인가.

양승조 충남도지사가 13일 태안의료원에 마련된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발전소 협력업체 노동자 고 김용균 씨의 빈소를 찾아 조문하고 있다.<사진=뉴시스/뉴시스 독자제공>

공기업 하청업체에서 일했던 계약직 청년이 사망하기 하루 전 10일, 50대 장년노동자가 자신의 일터 택시안에서 스스로 몸에 불을 붙여 죽었다. 대기업 카카오의 카풀서비스 사업화가 자신을 포함 동료들의 생존권을 위협하는데, 항거해 택시노동자 전부를 대신해 자신을 불태웠다. 카풀서비스 논란과는 별개로, ‘최저임금에 맞추려고 12시간을 근무해도 5시간만 인정하는 택시업계 ‘관행’만 바로잡았어도, 그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날, 그는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 한달 전에 본 손주의 재롱에 함박웃음을 지을 수 있었다. 

한 목숨, 두 목숨 하나하나 열거하지 않아도 노동현장에서 생을 마감했던 비정규직 20대 청년과 50대 택시노동자는 셀 수 없을만큼 많다. 그리고 이들 모두는 자신의 죽음으로 세상을 움직이는 노동이 더할 나위없이 존귀하다는 울림을 남겼다. 해서 우리 모두는 이들의 죽음을 서러워했고, 같은 아픔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세상과 싸워가며, 이들을 기억하고자 애썼다. 그럼에도 이들은 잊혔고, 살아남은 자들의 나태함이 더해져 또다시 이틀사이에 생목숨 둘을 저세상으로 보냈다. 그리고 이들은 앞서 간 노동자들과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사진으로, 유서로 노동이 존중되는 사회를 만들라는 숙제를 남겼다.

24살 청년이 사망하기 10일 전 노동조건 개선 캠페인에 참여해, 그가 양손으로 손팻말을 들고 서있는 사진이 있다. 안전모에 방진마스크를 쓴 그 청년의 손팻말에는 “문재인 대통령. 비정규직 노동자와 만납시다”라고 적혀있다. 자신을 “화력발전소에서 석탄설비를 운전하는 비정직노동자”, 김용균이라고 소개했다. “노동악법을 없애고! 불법파견책임자 혼내고! 정규직전환은 직접고용으로!”라는 손팻말에 담긴 요구는, 아마도 대통령을 만나면 하고 싶었던 말일 게다. 

문재인 대통령은 비정규직 김용균 청년을 만나지 않았다. 대통령 당선 직후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0) 시대’를 선언했던 사업장, 인천공항 그 곳에서 자회사 정규직으로 전환된 노동자들이 10일 인천지방노동위원회에 쟁의조정을 신청했다. 정규직으로 전환됐지만 종전 용역업체처럼, 회사가 자신들의 임금에서 일정 비율을 착취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는 사이 청년 김용균은 공기업 사업장, 저 구석 아무도 없는 곳에서 비정규직 신분을 가진채 이승을 등졌다. 위험과 죽음의 외주화가 가져온 필연이고, 공공기관 효율성이란 이름으로 필수인력조차 갖추지 못한데에 따른 인재다. 

지난 10일 ‘카카오 카풀’에 반대하며 분신해 사망한 택시노동자 최우기 씨의 분향소가 12일 국회의사당 인근에 설치, 분향소를 찾은 시민들이 고인을 추모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최우기 씨는 JTBC에 남긴 유서에서 “택시도 물론 승차거부, 불친절 등 반성을 할 부분이 있다”면서도 “최근 카카오는 불법적인 카풀을 시행해 사업이윤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카풀의 취지를 호도하고 있다”며 정부의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또 “택시는 12시간 근무해도 5시간만 근무로 인정해준다. 최저임금을 맞추려고 근무시간을 줄이고 정부가 노사협약 사항이라고 묵인해주는 점과 특수업종으로 분류해 장시간근무에도, 제대로 보수를 못 받아도 어디 하소연 할 데가 없게 만들었다”며 “택시 수입으로는 생활을 할 수 없을 정도밖에 안 된다”며 택시노동자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택시노동자 최우기 씨는 “전국의 모든 택시 노동자들이여 불 같이 일어나서, 이번 기회에 택시 근로자들이 제대로 급여를 받을 수 있도록 사람답게 살 수 있는 날이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비정규직 청년노동자 김용균 씨는 “노동악법을 없애고, 불법파견책임자를 혼내고 정규직전환은 직접고용으로” 해 달라고 했다. 잘못된 요구인가 아니면 무리한 주장인가. 문재인 대통령이 공약했던 ‘노동존중 사회’가 아니어도, 현행법을 기업이 준수하도록 행정력만 제대로 집행해도 실현가능한 사안이 대부분이다.

노동존중 사회를 공언한 문재인 대통령 정부가 거꾸로 간다. 최저임금 결정구조를 바꾼다. 말이 좋아 결정구조를 바꾸는 것이지, 최저임금 속도조절론과 맞물려 촛불 이전 정부로 회귀하는 흐름이다. 이미 법제화된 1주 52시간제 위반 사업장에 대한 처벌규정을 또다시 유예한다. 장시간근로를 해소해 저녁이 있는 삶을 주겠다는 것도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이다. 탄력적근로시간제 단위기간을 현행 3개월에서 6개월 또는 1년으로 연장한다. 일은 똑같이 시키고 돈은 적게주겠다는 기업의 민원을 정부가 수용했다.

최근 정부의 노동정책을 보면, 노동존중은 고사하고 소득주도성장론의 근간 자체를 흔들고 있는 꼴이다. 장시간근로 관행을 획기적으로 강제하지 않으면, 기업은 연장근로수당지급을 통해 현원을 유지할 뿐, 추가고용을 하지 않는다. 근로시간 단축을 통해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대통령의 공약은 공염불이 됐다. 최저임금을 묶어 노동자 가계의 소비여력을 떨어뜨리면, 소득주도성장의 한 축이 붕괴된다는 사실은 너무 명확하다.

예전 극우·보수 정권의 단골메뉴였던 노동자의 고통전담의 반복인가. 중소기업 및 소상공인·자영업자 소득향상을 위한 정책이 실패하자, 그 책임을 또 노동자에게 떠 넘기겠다는 발상이라고 밖에는 달리 해석되지 않는다. 노동자만이 고통을 전담하고 ‘기업하기 좋은 나라’가 문재인 대통령이 바라는 나라인지 묻지 않을 수 없는 시점이다. 얼마나 더 20대 청년, 50대 장년 노동자의 생명줄을 끊어야만 노동이 대접받는 나라, 제대로된 임금을 받는 나라를 살 수 있단 말인가. 간절히 바라건대 모두를 비탄과 고통으로 몰아넣는 죽음의 행렬이 멈춰지길. 고 최우기 씨와 고 김용균 씨, 두분이 가신 저 세상은 노동이 존중되는 나라여야만 잠을 이룰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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