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일자리를 잡아야 여자친구, 남자친구 보기에 좋다’, ‘좋은 일자리에 가지 못하면 취업공부를 더 하는 게 차라리 체면이 선다’는 생각은 이제 버려야 한다. 실용적인 생각을 가져야 한다.”

2007년 9월 당시 한나라당 17대 대통령 후보로 나섰던 이명박 후보가 청년실업 해법으로 제시했던 ‘눈높이 낮추기 정책’이다. “여러분(청년)들이 조금 눈을 아래로 낮추면 아직도 일자리가 많다”는 그 유명했던 발언, 10년도 더 된 옛날 얘기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이명박 시대의 어법이 문재인 정부 출범 3년차, 청와대 경제보좌관 입에서 나왔다. 김현철 경제보좌관은 28일 대한상공회의소 CEO 조찬간담회에서 “(청년들이) 취직이 안 된다고 ‘헬조선’이라고 하지 말고, 아세안을 가보면 ‘해피조선’”이라며 청년들에게 인도, 인도네시아, 태국 등 아세안 국가 취업을 권유했다. 이어 “아세안 국가에서는 한국학생들 붙잡고 한글 배우려고 난리”라며 “마음 같아서는, 내가 젊은이들을 한국어 선생으로 데려가고 싶다”는 말도 덧붙였다.

김현철 경제보좌관이 신남방정책특별위원장임을 감안해도, 당장 일자리가 없어 고통받는 청년들에게 아세안 취업 운운은 해선 안될 말이다.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어야 할 청와대관료가 자신의 본분을 다하지 못했다면 그에 따른 자성과 질책을 해야지, 애꿎은 젊은이들에게 훈장질이나 해대니 꼰대소리를 듣는 건 당연지사다. 

무능하면 용감하다고 했다. 김현철 경제보좌관은 청년뿐 아니라 중장년에게도 총질을 했다. 그는 “50~60대들이 우리나라에선 할 일이 없다고 산에 가고 소셜미디어(SNS)에서 험악한 댓글을 다는데, 그러지 말고 아세안이나 인도로 가야한다”며 “박항서 감독도 베트남에서 새 감독이 필요하다고 해, 가서 인생이모작 대박을 터뜨린 것”이라고 했다. 

장삼이사가 술잔을 기울이면서 자조섞인 한담으로나 할 말을 청와대 경제보좌관이 했다는 사실이 놀랍다. ‘사오정(45세 정년퇴직)’, ‘오륙도(56세에 퇴직 안하면 도둑놈)’ 관행을 바꾸지 못한 책임을 통감하지는 못할망정, 조기퇴직에 따른 피해자들에게 칼을 들이대서 어쩌자는 것인가. 또 이들 중장년이 SNS에서 한 ‘험악한 댓글’이 뭐길래, 그리 흥분해 중장년 모두를 싸잡아 비난한단 말인가. 

대한민국 노동시장을 인생이모작 시장으로 만들지 못했다면, 국으로 가만있으면 될 일이다. 그럼에도 ‘박항서’보다 못났다고 타박하는 오만은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가장 낮은 지지율을 보이는 계층이 20대 남성이라는데, 이같은 현상을 50~60대 중장년으로까지 확대하고 싶은 것인가. 

중장년이야 지난 80년대 이후 고도성장과정에서 낙수효과의 맛을 조금이나마 봤다하니, 청년얘기만 해보자. 이 땅의 청년 그 누구도 ‘헬조선’을 탓하며, 스스로의 인생을 포기하지 않는다. 인연을 만들고 인성을 다듬어야 할 고교과정, 아카데미여야 할 대학 모두 취업전문기관이 된지 이미 오래다. 공식적인 교과(취업교육) 과정만으로는 취업이 불가해, 취업학원·어학연수·워킹홀리데이는 필수가 됐다. 그것으로도 부족해 대학교육 4년 중 취업준비에 전념하기 위한 휴학도 기본이 됐다. 청춘시절 전부를 바쳐 취업준비에 몰두했으니, 취업스펙이 차고 넘치는 청년은 넘쳐나고, 취업경쟁 또한 더 극심해진 게 오늘의 한국사회다. 

이들 청년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기 위한 정책을 만들어야 할 경제보좌관이 “젊은이들에게도 아세안 신남방은 희망의 국가”라고 하면 자신의 무능이 덮어지는가. 

이 땅의 젊은이와 중장년 모두에게 ‘희망의 국가’는 대한민국이어야 한다. 그리고 대한민국에는 청년과 중장년 모두를 채용할 수 있을 만큼의 일자리가 있다. 전체 노동자의 88%를 고용하는 중소기업 대다수가 구인난을 겪고 있는데, 청년들이 중소기업을 기피하는 구조족인 문제를 해결해야만 청년실업도 해소하고 중소기업의 경쟁력도 강화할 수 있다.

젊은이들에게 신남방으로 가란 말은 수사일뿐, 정부와 경제보좌관 자신의 무능을 고백한 것과 다름없다. 중소기업에 다녀도 인간다운 삶이 보장되고 애를 키우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면, 청년들이 공기업과 대기업에 목을 맬 일도 없다. 대기업이 독점한 시장권력을 중소기업에 나눠주도록 할 힘도 배짱도 없으니, 청년들에게 각자도생하란 말밖에는 안된다.

이제라도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임금격차 해소를 위한 근본적인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시장에서 중소기업이 대기업과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도록 중소기업의 지위를 획기적으로 강화한 제도와 대안을 찾아야 한다. 재벌대기업의 이런저런 저항에 밀려 중소기업에서 일자리를 만들지 못하겠다면, 청와대 경제보좌관 직에서 내려오면 될 일이다. 괜히 정부와 자신의 무능을 감추고자, 아직 준비가 덜된 청년들을 정글로 내몰아선 안된다. 소수의 ‘박항서’가 나올 수 있지만, 청년과 중장년 모두가 ‘박항서’가 될 수 없다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