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업상속공제 요건을 완화하고 한도금액도 확대하는 ‘부자감세’ 움직임이 구체화되고 있다. 정부가 먼저 운을 띄웠고, 자유한국당이 거들고 나섰다. 여기에 더불어민주당도 가세해 부자감세법안 마련에 열을 올리는 모양새다. 정쟁이 일상사인 여의도에서 민주당과 보수·극우 야당의 이해가 맞아떨어진 사안이 反개혁 입법이란 현실이 서글프다. 

부자감세 최초 포문은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열었다. 그는 지난달 30일 방송기자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지금의 좁은 (가업상속) 업종범위를 좀 더 넓히고, 10년이라는 가업유지 요건을 낮추는 쪽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자 자유한국당 심재철 의원이 지난 7일 가업상속공제 적용 요건을 완화하는 상속세 및 증여세법 개정안을 발의하겠다고 맞장구를 쳤다. 500억원이 한도인 현행 가업상속공제액을 최대 1200억원으로 올리고, 피상속인의 기업유지 요건을 ‘최소 10년간 경영에서 최소 7년간 경영’으로 낮춘다고 했다. 정부 그리고 자유한국당, 여기에 집권여당 조정식 정책위의장까지 등판해 부자감세 방안을 추진한다. 그는 지난 10일 국회 기자간담회에서 당 정책위 내에 태스크포스팀을 설치해 가업상속세 개선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용어부터 바로잡자. 현재 운용되는 가업상속제도는 ‘가업’상속이 아닌 ‘기업’상속제다. 가업상속공제 적용대상은 매출액 3000억원이하 기업이고, 공제금액만 최대 500억원이다. 마치 ‘100년가계’ 연속성을 유지하는 대가로 우리사회가 지급하는 인센티브인 양 ‘가업상속’으로 포장하는 것은 궤변이다. 중소 규모를 넘어 중견까지 포괄하는 기업의 창업주와 그 자식들에게만 보장되는 특권이다. 최대 500억원까지 상속세를 감면해 주는 특혜가 어찌 가업상속으로 포장될 수 있단 말인가. 재산상속이고 가업상속이란 껍데기로 감춘 기업상속이다. 

금융자산이든 주식지분이든 그 형태와 관계없이 모든 자산을 상속·증여하기 위해서는 법에 정한 세금을 내는 게 원칙이다. 따라서 가업상속이란 이름으로 자산을 넘기는 경우에도 원칙을 깨고 예외(세금감면 특혜)을 적용하려면, 사회적 합의 등 정당한 명분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현행 가업상속공제는 금수저의 대물림을 법으로 보장하고, 사회계층간 경제적 불평등만 심화시키는 역기능만 있을 뿐이다. 따라서 가업상속공제는 극히 제한적으로 허용돼야 마땅하다. 

1997년 중소기업만을 대상으로 도입된 가업상속공제, 2007년까지 공제한도 금액은 최대 1억원이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가업상속’이란 말이 무색하지 않았다. 가업상속공제 도입취지는 기업자산을 승계받는 중소기업인에게 상속공제 혜택을 부여해, 해당기업 노동자의 일자리를 유지하도록 독려하기 위함이다. 따라서 기업자산 이외 개인자산으로 상속세를 납부할 여력이 있는 상속자에게는 상속세를 감면해 줄 하등의 이유가 없다. 그럼에도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가업상속세 적용대상을 연매출 3000억원이하 중견기업으로까지 확대했고, 공제한도액 역시 500억원으로 늘렸다. 가업상속이란 순기능은 온데간데 없고, 우리사회 극소수 특권층에 대한 감세정책으로 변질됐다. 

방송기자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홍남기 부총리는 “가업상속 요건이 다른 선진국과 비교하면 상당히 엄격한 게 사실”이라고 했다. 그러나 미국은 2013년 1월 ‘납세자의 세금감면법’에 따라 가업상속공제를 폐지했다. 2014년 12월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도 다른 자산과 비교해 기업지분 상속에만 혜택을 주는 것은 형평의 원칙에 반한다며 위헌으로 판단했다. 가족에게 승계되지 않으면 기업의 경쟁력이 유지되지 못하고, 노동자의 일자리가 위태로운 기업이어야만 가업상속공제 대상으로 정당성을 갖는다는 게 독일 헌재의 입장이다. 아울러 기업지분 이외 다른 상속자산이 있다면, 그 자산을 매각해 상속세를 납부하면 가업승계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이유도 위헌결정의 근거다. 

토지·주택은 물론이고 금융자산·소득의 극단적인 양극화가 우리 공동체 존립 자체를 위협한다는 경고등이 켜진지 이미 오래다. 수천만 촛불의 염원을 안고 탄생한 문재인 정부의 역사적 소임은 한국사회 공동체 통합을 위해 극히 일부가 독점했던 특권을 폐지하는 것이어야 한다. 사회계층 간 극심한 불평등을 완화해야 할 촛불정부가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추진했던 反서민·대중 정책을 계승하려는 이유를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