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분배가 더욱 공평한 미래사회로 가기 위해서는 부자에 대한 세금을 대폭 징수할 수 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는 세계 1위의 경제대국인 미국의 여론조사 결과와도 같다. 미국인 70%이상은 부자들에게 더욱 높은 세율을 부과해야 한다는데 동의한다. 물론 부유층을 대표하는 기성 정치인들은 반대한다. 이들은 부자증세가 기업의 활력인 투자를 위축시켜 성장을 떨어뜨리는 악재로 작용한다고 주장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성장이냐 분배냐를 놓고 국가를 넘어 세계가 요동치는 21세기가 될 것으로 전망한다.

지난날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에서 네덜란드 역사학자 뤼트허르 브레흐만은 부자증세를 제안하면서, 제도언론을 넘어 세계의 SNS 스타로 급부상했다. 그는 부자증세를 제안하면서도 성장을 도모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한다. 자본주의를 살리자는 것이다. 자본주의를 죽일 수도 있는 극도의 불평등한 분배를 동시에 해결하자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의 저서 ‘리얼리스트를 위한 유토피아’(2017년 번역 출간)는 분배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 부자증세 밖에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지금 세계는 사회의 양심세력이 하나 둘씩 국정의 진보세력에 합류하고 있다. 이들 ‘진보적’ 정치세력의 지향점은 삶의 양인 성장보다는 삶의 질인 분배에 맞춰져 있다. 그럼에도 이들은 ‘경제’를 살려두되, 세금이라는 수단으로 ‘개혁’해야 한다는데 의견이 일치한다. 

이를 위해 경제학을 전공했지만, 현실의 경제구조를 바꾸기 위해선 우선 정치세력이 바뀌지 않고서는 안된다고 주장한 좌파학자가 있다. 파리경제대학 토마스 피케티(Thomas Piketty)는 ‘21세기 자본’(2014년)에서 자본주의의 불평등 구조를 고발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치개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자본주의가 태생적이며 본질적으로 불평등한 사회구조를 만들 수밖에 없는 이유로 피케티 교수는 부의 세습을 꼽았다. 자본주의야 말로 자본이 세습되고 재산이 세습되는 경제체제이며, 따라서 불평등도 세습되는 세습자본주의라고 낙인을 찍었다. 

수십년 수백년 간 세습을 통해 구조화되는 개인·가계 간 분배의 현격한 격차는 자본주의가 만들어 낸 본질 그 자체다. 과거 봉건주의 사회에서는 토지가 거의 유일한 재산으로 승계됐는데,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선 토지 이외 자본이라는 더욱 유력한 재산이 상속된다. 정치개혁이 동반되지 않으면 세습자본주의가 보다 고착화되고 강화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피케티가 카를 마르크스(Karl Marx)의 저서 ‘자본’을 그대로 그의 저서 이름으로 사용한 이유가 이해되는 대목이다.

피케티는 지난해 다른 학자들과 공동으로 ‘세계불평등보고서’라는 소책자를 발간했다. 이 책에서 그는 금세기에는 자본이 계속 증가할 것으로 예측했다. 자본소득의 증가는 노동소득의 상대적 감소를 가져온다. 이런 현상은 자본과 노동이란 생산력(생산수단과 노동력)이 각각 취득하는 이윤과 임금의 격차를 연년세세 더욱 확대시킨다. 불평등은 더욱 심화되고 분배격차의 문제를 수면에 떠오르게 만든다. 개인의 창의와 능력을 중시하는 종래의 경쟁자본주의는 사라지고, 돈이 권력으로 지배하는 금권자본주의 시대가 도래한다. 

‘세계불평등보고서’는 세습자본주의·금권자본주의 시대를 일시적으로 늦추거나 영구히 멈출 수 있는 대책으로 크게 3가지를 제안했다. 

첫째는 사회국가다. 국민 개개인의 필요(수요)가 충족되는 사회로서 모든 국민이 행복을 추구하는 생활이 보장되는 국가다. 2차세계대전 이후 영국에서 노동당이 집권했을 때, 최초로 구상했던 ‘요람에서 무덤까지’란 복지국가와 비슷한 개념이다. 

이와 관련해 피케티는 보편적 기본소득의 도입을 권유한다. 기본소득은 국민이면 누구나 소득의 여부나 크기와는 무관하게 일정 금액(현금급여)을 지급받는 복지정책이다. 기본소득을 도입한지 2년이 된 핀란드는 최근 기본소득이 분배에 미치는 효과를 조사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아직 긍정적인 뚜렷한 효과는 나타나지 않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세계불평등보고서가 제시한 두 번째 정책은 개인소득세 최고세율을 80%로 대폭 인상하는 이른바 부유세 도입이다. 지난 번에 말했듯 부유세 도입은 옥스팜과 다보스 포럼을 위시해 미국 2020년 대통령 선거를 후끈하게 달굴 핵심 의제로 떠올랐다. 

그러나 부유세 도입은 지난 세기말부터 일부 유럽 국가들이 시도해 왔지만, 부자 기득권 보수세력과 민족우월의 국수주의가 결합된 우파 국민정당이 가세한 여론에 밀려 지금은 거의 잠재돼 있는 상태다. 하지만 지금 미국에서는 오히려 활성화되고 있다. 지난 1월28일 공화당 상원 지도부가 상위소득계층(1700여 가구)에 대한 상속세를 폐지하는 법안을 발의하자, 이에 격분한 버니 샌더스 등 민주당 대선주자들이 상속세와 소득세 최고세율을 각각 77%, 70%로 인상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증세·감세 전쟁은 이제 거대 양당 간 대결에서 결코 피할 수 없는 정치적 이슈로 부각되고 있다.

끝으로, 세계불평등보고서는 세계자본세의 도입을 강력히 추천한다. 과세대상인 자본이 세계 어디로 움직이더라도, 어느 지역이나 국가에서도 통일된 세율로 부자에게 과세하는 국제주의의 도입이다. 과거에도 영국은 유명 영화배우들에게, 스웨덴은 테니스 스타들에게 70~80%에 가까운 부유세를 징수한 전례가 있다. 이에 대한 납세자들의 반발은 자국의 부유세를 피하기 위한 국적의 이동이었다. 최근에도 프랑스의 갑부가 세금압박을 피하기 위해 벨기에로 망명한 사건이 있었다. 이에 자극 받은 피케티는 국적을 바꿔도 피할 수 없는 세계공동의 자본세를 제안하게 된 것이다.

한국도 이제는 대중들이 흔히 비판하는 흙수저, 금수저라는 대물림으로 세습되는 금권자본주의에 종말을 고해야 한다. 자본과 재산의 세습을 통한 불평등한 사회구조는 급기야 우리사회를 ‘기울어진’ 운동장으로 만들었고, 결국‘ 헬조선’이라는 오명을 뒤집어 쓸 수밖에 없었다. 이에 한국에서 ‘수저’라는 재산이 승계되는 불평등 사회를 청산하는 유일한 길은 부자에게 높은 세율을 부과하는 정치적 결단만 남았다. 이로써 우리는 분배의 격차를 줄여 공평한 소득을 달성하는 유토피아를 만들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