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도 골목은 조용하다. 겨울에는 추워서, 여름에는 더워서, 또 미세먼지가 기승인 날이면 창문마저 꼭꼭 걸어 닫는다. 집안에서 놀 거리를 찾지 못한 사람들의 발길은 자연스럽게 복합쇼핑몰로 이어진다. 아이가 있는 엄마·아빠도 복합쇼핑몰에 가면 하루를 손쉽게 보낼 수 있다. 극장과 쇼핑몰, 키즈카페와 쉼터, 다양하게 구색을 갖춰놓은 식당가를 순회하다보면 해는 어느새 저물어 있다. 복합쇼핑몰내 대형마트에서 장을 본 후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온다. 골목은 집과 집 사이를 이어주는 통로일 뿐, 골목상점들은 스산하기 그지없다.

지역소비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는 유통대기업의 폐단을 시정해 소상공인에게 최소한의 울타리는 만들어줘야한다는 절박한 요구는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다. 20대 국회에 이미 총 28건의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이 제출됐지만, 제대로 된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는 답답한 상황이다. 지난 18일 진행된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서도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을 포함한 77개 법안 심사가 예정됐지만, 25개 법안에 대한 논의가 있었을 뿐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은 논의 테이블에 올라오지도 못했다.

현행법은 대형마트와 기업형슈퍼마켓(SSM)에 대해 월 2회 의무휴업을 강제한다. 그러나 대형마트와 비교할 수 없는 규모의 초대형복합쇼핑몰, 아울렛, 신종유통전문점은 유통산업발전법 규제가 적용되지 않는다.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의 취지는 이와같은 대규모유통업을 유통산업발전법 규제 내로 편입해 소상공인을 보호하자는 것이다. 등록제로 운영되는 대규모유통업(점포)을 허가제로 전환해, 규제를 강화해야한다는 내용도 있다. 

민주평화당 박지원(전남 목포) 전 대표를 비롯한 목포지역 정치인과 소상공인 등이 지난해 10월5일 오후 무안 남악롯데복합쇼핑몰 앞에서 쇼핑몰 입점에 따른 피해대책 마련과 이마트 트레이더스의 입점 저지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사진=뉴시스>

유통생태계에 공룡만 살아남아서는 생태계 자체의 지속가능성을 보장하지 못한다. 전통시장과 골목상점, 대규모유통업점이 공정하고 조화롭게 운영될 때 소비자의 선택권 또한 넓어진다. 대규모유통점에 입점한 소상공인들 또한 복합쇼핑몰 이외 전통시장이든, 골목상점이든 자신의 입지를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보장돼야한다. 지난해 신세계 스타필드에 입점한 한 업체의 매니저가 연중무휴인 스타필드의 고강도 노동을 못 견뎌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골목상권보다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다는 대규모유통업 입점 소상공인 또한 골목상권 처지와 다르지 않음을 보여준 사례 중 하나다.

자본을 가진 이들에게 상권장악은 너무도 쉬운 일이다. 기업의 존재 목적 자체가 ‘공존 공생’이 아닌 ‘이윤’이라는 점에서, 유통대기업에게 소상공인의 처지를 배려해달라고 요구할 수도 없다. 여기에 보수언론은 유통산업발전법이 복합쇼핑몰에 입점한 소상공인에 대한 또다른 차별이라며 을대을 갈등까지 부추기기까지 한다. 돈 많은 놈이 돈을 이용해 더 많이 벌겠다는데, 뭐가 잘못된 것이냐고. 그게 헌법이 보장한 자유시장질서가 아니냐는 주장도 한다.

그래서 반론한다. 시장을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한 사람 간 거래관계가 아닌 양육강식이 전부인 정글이라는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 시장과 사회 모두 약자를 보듬어주고, 강자의 권력을 억제할 수 있어야만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함께 공존할 수 있어서다. 전국의 자영업자와 소상공인 모두가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을 바라는 이유 또한 ‘공정한 시장질서’만이 자신들의 생존을 보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억강부약 (抑强扶弱) 원리가 관철되는 시장만이 우리 공동체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담보할 수 있어서다. 과욕과 탐욕은 배척되고 응징되어야지, 시장논리란 미명하에 용인돼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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