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기고에서 개천에서 용이 나는 사회를 만들어야한다고 강조했다. 재산도 없고 소득도 변변찮은 개천(가정환경)에서는 올라갈 사다리(기회) 없이는 용이 될 수 없다. 용이 되기보다는 자력으론 건전한 중산층이 되기도 버겁다. 2018년 기준으로 중산층에 진입한 용(중간용)의 가구 1인당 국민총생산(GNI)은 3400만원(미화 3만1000달러)) 이상이어야 한다. 국민 대다수가 1인당 GNI 3만불시대를 체감하지 못하고, 중간용이상의 지위를 점할 수 없는 이유는 우리사회가 세습사회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개인이 평생 버는 소득을 영구소득이라고 부른다. 지난주 소개한 서울대 주병기 교수가 말하는 분배정의는, 교육기회의 평등을 통해 누구나 중간수준 이상의 영구소득을 보장하자는데 있다. 그러나 세습공화국에서 물려받은 재산이 없으면, 중산층이 될 기회를 교육을 통해 스스로 확보해야한다. 주 교수가 소득재분배 실현을 위해 정부가 특히 교육기회에 재정지출을 확대해야한다고 강조한 이유다. 그는 시장에서 고용형태와 기업규모에 따른 임금격차를 축소함으로써 소득불평등을 해소해야한다는 주장도 잊지 않았다. 

빈부격차를 줄이고 평등한 사회로 진입할 수 있는 전제인 교육기회 확대·보장을 위해 무엇부터 할 것인지 알아보자. 교육의 출발인 유치원부터 보자. 유치원이 대중의 주목을 받게 된 것은 지난해 하반기들어서다. 사립유치원 운영이 어렵다는 이유로 한국사립유치원총연합회(한유총)가 폐원까지 불사하겠다며, 학부모를 상대로 으름장을 놓으면서 이른바 ‘사립유치원 사태’로까지 발전했다.

사립유치원 사태는 지난해 8월부터 본격 시작됐다. 사립유치원의 비리와 부패를 이미 알았던 교육부가 공영유치원 비율을 40%까지 확대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하면서부터다. 한유총은 즉각 반발했다. 박용진 의원(더불어민주당) 등이 지난해 10월 개최한 토론회를 한유총 회원들이 난입해 무산시킨 사건을 계기로 정부와 한유총 간의 갈등이 표면화됐다. 한유총의 반발은 더 거세졌고, 지난해 연말 광화문에서 유치원 통학차량 시위를 주도하는 등 저항을 더욱 조직화했다. 따가운 국민여론에도 불구하고 한유총은 지난 2월24일 사립유치원 관계자 3만명을 동원(경찰 추산 1만명)해 ‘유아교육 사망선고’ 집회도 강행했다. 이어 유치원의 봄학기 개학을 앞둔 3월3일 한유총은 유치원 개학을 전면 연기한다는 방침을 결정했다. 

그러나 한유총은 개학연기 결정 하루만에 무릎을 꿇었다. 일부 사립유치원의 회계비리와 공금유용 사실이 알려지면서 학부모와 시민들의 비난이 쏟아졌고, 한유총 규탄시위까지 시민사회가 행동에 나선게 주효했다. 교육부 또한 유치원 개학연기가 불법이란 점을 분명히 하고, 개학연기를 주도한 한유총에 법인인가 취소방침을 밝히는 등 정공법을 택한 것도 한 몫했다. 시민사회와 정부의 압력, 사회여론에 밀려 개학연기 결정을 한유총이 전격 철회함으로써 사립유치원 사태는 일촉즉발의 위기에서 벗어났다. 실제 개학을 연기한 사립유치원은 없었고, 다만 19곳의 사립유치원만 문을 닫았다. 이로써 ‘교육대란’으로까지 번질 것이란 우려와 달리, 사립유치원 사태는 일단 수습국면에 들어섰다.

전국의 유치원은 국립 3개, 공립 4516개, 사립 4040개 등 모두 8559개원이다(유치원 정보공시 사이트, 유치원 알리미 인용, 2019.3.20.). 이번 사립유치원 사태를 주도한 한유총 회원 숫자는 3318곳, 전체 사립유치원의 82%이상으로 한유총의 입김은 거의 절대적이었다. 그럼에도 이 권력이 종이호랑이에 그친 이유는 사립유치원 대부분이 중소자영업으로서 생존권 문제가 걸려있어서다. 아울러 이들 사립유치원이 고객인 학부모와의 지역유대를 끊을 수 없는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회원과 고객의 이익을 무시하고 개학연기와 같은 강공책을 택한 한유총, 어리석게도 스스로 실패를 자초한 셈이다. 

사립유치원 개학연기 투쟁이 실패로 끝난 지금도 한유총의 입장은 크게 달라진 게 없다. 정부의 법인취소에 대응하기 위해 한유총은 이사장을 새로 선임하고 이사진을 재편하다는 계획이다. 그런데 임원을 바꾼다고 한유총의 대표성이 회복될지는 미지수다. 한편 교육부가 한유총의 법인인가를 취소하고, 대신 한국사립유치원협회(한사협)를 대화 상대로 정했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그렇지만 교육부가 알아야 할 것은 사립유치원 제도개선을 위해 지난해 박용진 의원이 제안한 ‘사립유치원 3법’이 여전히 다툼의 불씨로 남아 있다는 점이다.

이에 우리는 유치원 3법을 포함해 크게 3가지 정책대안을 제시한다. 첫째는 교육기관으로서 사립유치원의 공식적인 지위를 보장하고, 전체 교육계에 정식으로 포괄하기 위해 ‘유아학교’로 명칭과 체계를 변경해야한다. 전체 어린이 인구에서 3세미만은 지금의 어린이집에서 복리와 교육을 실시하고 3세 이상은 유아학교에 입학시킨다. 이후 전체 교육체계는 유아교육, 초등교육, 중등교육, 대학의 고등교육이란 단계를 밟는다.

둘째는 공사립 구분없이 유아학교 모두 ‘무상교육’을 실시 한다. 무상교육 추진을 위해 지난해 8월 충남도와 사립유치원 간 업무협약을 맺었으나, 충남도가 협약내용을 보류하면서 무산됐다(경향신문, 2019.3.15.). 헌법상 명시된 의무교육에 준해 법률로 규정할 수도 있지만, 어린이교육을 권리로 보장하기 위해선 향후 헌법 개정이 필요하다. 이는 물론 학부모들의 학비부담(전국 평균 연 245만원)을 덜기 위한 조치다. 지금까지 국가지원금을 제외하고 순수 학부모 부담금이 공표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유치원정보공사사이트, 위 유치원 알리미 제공).

끝으로, 유아학교에 대한 재정지원을 ‘지방자치단체’가 전담토록한다. 지금 유치원에 지원되는 재정은 국공립에 3조원, 사립에 2조원 정도 규모다. 이를 교육부가 부담할 것이 아니라 지역의 취득세, 등록세 등 재산관련 지방세로 부담하는 게 공적자원의 효율적 이용 차원에서 옳다. 이에 따라 부자 지방과 빈자 지방이 갈라지고 육아 지원도 불평등하게 분포 될 것이지만, 그런 격차는 교육부가 중앙 보조금으로 해소하면 된다. 어느 지방이든 평등한 수준의 유아교육을 보장하기 위함이다.  

이제 정부는 유아학교를 대표하는 조직이 한유총이든 한사협이든 상관없이 대화해야 한다.  이들 단체의 지위가 학교사업을 운영하는 이익단체인 점을 명확히 규정해야 한다. 나아가 정부개입으로 자신의 이익이 침해당하거나, 개선해야 할 제도가 있다면 정부에 대해 압력단체로서의 역할도 물론 수행할 수 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종래처럼 비합리적인 색깔론을 내세우거나, 마녀사냥까지하는 전근대적인 행태는 분명히 지양해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