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16일 7박8일간 중앙아시아 3개국 순방에 앞서 “국회에서 최저임금 결정구조 개편과 탄력근로제 개선 관련 법안을 통과시켜 달라”고 당부했다. 이날 환송나간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와 홍영표 원내대표에게 문 대통령이 이같이 주문했다고 청와대 윤도환 국민소통수석이 밝혔다.

1주일이상 국정 최고책임자 자리를 비운다는 게 부담스러워, 문재인 대통령이 집권여당 지도부에게 한 ‘당부’라고 보기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보다 솔직하게 말하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을 넘었고 용납돼서도 안되는 발상이다. 산적한 국정 현안을 바라보는 대통령의 인식 자체가 잘못됐고, 정책 우선순위 면에서도 선후 경중이 완전히 거꾸로 선 당부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문재인 대통령 발언 중 하나만을 빼 말꼬리 잡자는 게 아니다. “여야 합의가 어려우면 중앙아시아 순방을 마치고 돌아와서 여야정 협의체를 가동해 쟁점(최저임금·탄력근로제) 사안들을 해결하는 게 좋겠다”는 게 윤 수석의 전언이다. 해외 순방길에 나서면서도 대통령의 머릿속엔 최저임금 결정구조를 바꾸고, 탄력근로제를 확대겠다는 생각만 가득 찼다고 봐도 크게 틀린 진단이 아니다. 

어쩌다 여기까지 왔는지 안타깝고 답답할 따름이다. 최저임금 결정구조 이원화가 뭐 그리 급한 현안인지 의문이다. 선의로 해석해도 노사 당사자 간 다툼의 여지를 최소화하고, 공익위원 권한을 강화해 최저임금 결정과정에서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을 줄이자는 게 표면상 이유다. 그러나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가파르게(?) 오른 최저임금을 공익위원이란 권위(?)에 기대 낮추겠다는 의도다. 

탄력근로제 법안 역시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연장 등을 통해 노동기본권을 침해한다는 점에서, 그 지향점은 최저임금 결정구조 개편과 동일하다. 고용노동부 실태조사에 따르면 100개 사업장 중 단 3곳만이 탄력근로제 단위기간(현행 3개월) 연장을 요구했다. 또 현재 탄력근로제를 운용하는 사업장 중 75%가 ‘현행 제도로 노동시간단축 대응이 가능하다’고 응답했다. 1주 52시간 노동상한제에 따라 기업경쟁력이 약화된다는 주장과 함께 재계·정부·국회가 보완책으로 제시한 탄력근로제 확대는 실효성이 없다는 얘기다. 반면 탄력근로제가 확대되면, 노동시간 통제권이 상당부분 사용자 재량으로 넘어가 노동자의 임금감소·건강권훼손은 불보듯 뻔하다.

집권여당 지도부에게 한 문 대통령의 당부가 對국민 설득력을 가지려면, 입법을 통해 촛불정부의 개혁을 제도화할 수 있어야한다. 그런데 최저임금 결정구조 개편과 탄력근로제 확대는 여기에 해당되지 않는다. 백만번을 양보해 양 제도의 개편에 따른 순기능만을 오롯이 인정하는 경우에도, 이들 법안은 지금 당장 처리해야 할 개혁법안 범주에 포함될 수 없음은 너무나 명확하다.

    

패스트트랙 지정 여부를 둘러싸고 난항을 겪고 있지만,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위한 공직선거법 개정에 대한 집권여당의 의지가 있기나 한가. 재벌총수의 황제경영을 견제할 감사위원 분리선출·집중투표제 도입·전자투표제 의무화·다중대표소송제 도입 등 상법개정안 통과를 위해 민주당은 무엇을 했나. 재벌대기업의 독점구조를 깨고, 경제력 집중 억제를 위한 전속고발권 전면폐지·일감몰아주기 규제강화 등 공정거래법 개정은 어디까지 왔나. 이외 소비자주권 보호를 위해 필수적인 집단소송법 제·개정, 부동산투기 근절을 위한 관련 법 개정 등 쌓이고 밀린 개혁입법안은 천지다.

자유한국당 등 극우·보수 정당이 딴지걸고, 재벌대기업·기득권 편향의 극우·보수 언론의 선동 때문이란 변명은 더이상 안된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2년가까이 개혁입법이란 이름으로 법안만 제출했지, 법안통과를 위해 정부·여당이 지금껏 어떤 노력을 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대통령이 민주당 지도부에게 당부하고 촉구해야 할 일은 최저임금 결정구조 개편과 탄력근로제 개선이 아니다. 어렵더라도 이들 개혁입법을 통과시킬 구체적이고 실행 가능한 계획안을 만들라는 질책이어야 했다.  

개혁입법은 난망하고 최저임금·탄력근로제 사안은 여야 합의가 가능하다는 편의주의, 문재인 대통령 생각은 아니라 믿는다. 이런 이유로 윤도환 수석의 전언과 같이, 중앙아시아 순방 이후 문재인 대통령이 나서 최저임금·탄력근로제 입법에 드라이브를 걸어서는 안된다. 이들 법안은 여야 간 첨예한 대치정국을 해소하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법안 조정 과정에서 불거질 수밖에 없는 이견과 갈등은 정부·여당의 입지를 축소하고, 극우·보수 정당의 목소리만 키울 장을 제공할 뿐이다. 게다가 이들 법안은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기반인 시민사회·노동계와 정부·여당 간 대립전선을 확대할 우려도 너무 크다. 현실 정치지형에 근거해 계산기를 두드려도 그렇고, 대통령 공약인 ‘노동이 존중되는 나라’로 가기 위해서도 그 길을 선택해선 안된다. 중기이코노미 논설위원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