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모르겠지만, 한때 ‘관리의 삼성’이란 말이 있었다. 그런 기업문화를 가졌던 삼성에서, 삼성 총수 일가가 10년가까이 황창규 KT 회장을 최고경영자 일원으로 받아들이고 함께 했다는 사실 자체가 놀랍다.

17일 열린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KT 화재원인 규명 및 방지대책에 대한 청문회’에 출석한 황창규 KT 회장의 발언과 태도를 보면서 든 생각이다. 황 회장은 2009년 삼성전자 기술총괄 사장직을 끝으로 2014년 KT 회장직에 올랐다.

이날 청문회 자리에서는 최고경영자의 책임과 의무는 전혀 부담하지 않고, 권한만 행사하고 특혜만을 향유했던 황창규 회장의 민낯이 그대로 드러났다. 오죽했으면 황 회장을 향해 더불어민주당 이철희 의원은 ‘황제경영, 측근경영, 폐쇄경영’이라 쏘아붙였고, 같은 당 김성수 의원도 ‘무개념경영’이라 질타했겠는가. 

황창규 회장은 자신의 직을 유지하기 위해 경영고문단을 꾸려 정치권에 로비를 했다는 게 정설이다. 그럼에도 황 회장은 이날 청문회에서 경영고문단 존재 자체를 몰랐다고 강변했다. 황 회장 자신이 정치권 인사, 퇴직한 군·경찰·고위공무원 등 14명을 경영고문에 위촉했음에도, 언론보도를 통해서 경영고문단의 존재를 알았다고 했다. 이들 경영고문에게 모두 20억원이 넘는 고문료를 지급했지만, 이들이 어떤 업무를 했는지에 대한 기록 자체가 없다. 

경영고문단의 실체를 KT 이사회도 알지 못했다. 이철희 의원이 과거 5년간 KT 이사회 의사록을 전수 조사한 결과, 경영고문단 관련 안건은 단 한번도 논의되지 않았다. 20억원이상 회삿돈이 경영고문단으로 빠져나갔음에도, 이사회는 그 사실조차 몰랐다. 이사회 승인도 없고 자문도 없이 회삿돈이 흘러갔다면, 그것은 배임죄를 구성해 형사처벌 대상이 된다.

경영고문단과 관련 황 회장은 부문장이 독자적으로 구성해 운영할 수 있고, 실제 그렇게 했다고 발뺌했다. ‘경영고문 운영 지침(KT 정관)’에 경영고문 위촉권은 회장의 권한이라 명시됐음에도, 이 지침 또한 부문장이 만들었다는 게 황 회장 주장이다. 이게 사실이라면, 황 회장 결제도 받지 않고 이사회 승인없이, 부문장의 독단적인 결정으로 20억원이상 고문료를 지급했다는 얘기가 된다. 배임죄로 처벌받아야 할 당사자가 부문장인 셈이다. 

불법적인 경영고문단을 활용해 로비활동을 하고, 그 책임은 부하직원에게 떠넘긴다는 비난이 나온다. 삼성전자 재직시에도 이렇게 했는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황 회장의 불법적인 경영고문단 운영은 ‘무개념경영’의 일부분이다. 황 회장은 2018년도 CEO 경영평가에서 ‘최우수’ 등급을 받아 급여 5억7300만원과 성과급을 포함 모두 14억4900만원의 보수를 받았다. 그러나 2018년은 황 회장에 대한 검찰수사가 개시된 시점이다. 아현지사 화재에 따른 통신대란 사태, 자유한국당 김성태 의원 딸을 포함 채용청탁 비리, 불법 정치자금을 제공한 혐의로 황 회장은 지금도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다. 

CEO 리스크가 현실화되는 시점에 거수기 이사회를 동원해 경영평가 ‘최우수’ 등급과 함께 거액의 보수를 챙겼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날 청문회에서 김성수 의원이 황 회장의 ‘민망스런’ 최우수 등급을 거론하며, 성과급 반납을 요구했다. 노웅래 과방위 위원장까지 나서 성과급 반납을 거듭 촉구했지만, 황 회장은 “열심히 하겠다”는 동문서답으로 돈욕심을 포기하지 않았다. 

노동계 인사들은 KT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가 인력구조조정과 부당노동행위라고 말한다. 정당한 노조활동 방해와 관련된 고소고발 사건은 너무 많아, 여기선 생략하고 인력구조조정 부분만 보자. “8500명 직원들 피눈물 나게 잘라 놓고 본인은 급여 5억에서 17~18억까지 올리고, 그걸 국회가 이해해야 합니까.” 경영악화로 구조조정이 불가피했다는 황 회장 발언에 대한 노웅래 위원장의 질책이다. 

무리한 인력구조조정이 통신대란을 초래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민중당 김종훈 의원은 KT 본사직원의 대량 구조조정으로 “자회사와 외주업체 업무강도가 가중됐고 현장 위험마저 증가한 것”이라며 “이런 열악한 요인들이 아현지사 화재로 인한 통신재난의 주요 원인이 됐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노웅래 위원장도 18일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안전등급을 KT측이 스스로 허위, 축소, 조작을 했던 것이 (아현지사 화재의) 주원인”이라며 “KT 화재는 불법에 의한 인재”라고 주장하며 황창규 회장의 즉각 사퇴를 촉구했다. 

11시간 계속됐던 KT 청문회는 끝이 났지만, 매듭져야 할 사안들은 여전히 남았다. KT는 화재원인 규명에 필요한 각종 자료를 청문회에 제출하지 않았다. 심지어는 불이 난 지하통신구를 운영하는 외주업체 현황 자료 제출도 거부했다. 또 참고인으로 채택된 협력업체 직원의 청문회 출석을 KT가 막았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이미 수사 중인 사안으로 포함 이번 청문회에서 확인된 황창규 회장의 불법·탈법 경영행태는 검찰수사를 통해 단죄돼야 마땅하다. 황제경영·측근경영·폐쇄경영·무개념경영을 더 이상 방치한다면, KT는 5G시대에 생존조차 할 수 없어서다. CEO리스크를 제거하고 KT를 건강한 기업으로 되살리기 위해서도 검찰수사는 불가피하다. 마침 노웅래 과방위원장은 ‘모르쇠’와 ‘거짓말’로 일관했던 황창규 회장을 검찰에 고발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하루라도 빨리 검찰수사를 통해 KT 경영이 정상화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중기이코노미 논설위원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