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의 1차 협력업체들이 2차 협력사를 대상으로 한 갑질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법 개정과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단속에도 법망을 우회한 불공정행위가 여전하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공정위 서면조사 결과, 전속거래 사업자 사이에서 기술탈취나 대금 부당감액 등 불공정거래 관행이 그렇지 않은 경우의 3배에 달한다며, 서면실태조사와 익명제보센터에 들어온 사례들을 모아서 집중적으로 직권조사를 할 계획임을 밝혔다.   ©중기이코노미

그러나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더불어민주당 고용진 국회의원과 경제민주화전국네트워크, 참여연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전국가맹점주협의회가 공동으로 25일 개최한 ‘자동차산업 하도급 5대 불공정행위 근절을 위한 정책 간담회’에 참석해, 법 집행 과정에서 “법과 현실의 괴리가 존재한다”고 털어놨다. 독점적인 산업구조상 거래 상대방이 제한된 경우 등 전속거래가 남아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김 위원장은 공정위 서면조사 결과, 전속거래 사업자 사이에서 기술탈취나 대금 부당감액 등 불공정 거래 관행이 그렇지 않은 경우의 3배에 달한다며, 서면실태조사와 익명제보센터에 들어온 사례들을 모아서 집중적으로 직권조사를 할 계획임을 밝혔다.

이날 간담회에서는 자동차산업 협력업체들 간에 발생하는 다양한 불공정행위 사례들이 발표됐다. ‘유형별 중소협력업체 피해사례’를 발표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서보건 변호사는 자동차 산업에서 전속거래와 불공정거래 관행이 나타난 원인으로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의 직서열 생산방식을 지목했다.

현대·기아차를 정점으로 현대모비스-1차-2차-3차로 이어지는 업체간 피라미드를 구축한 결과, 재고 부담을 협력업체에 떠넘기고 투자리스크를 피하면서 비용상 이익을 보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현행 법을 피하는 다양한 피해사례가 발생하고 있다고 밝혔다.

◇‘암묵적’ 전속거래 강요 여전=현행 하도급법 상 금지된 것은 전속거래의 ‘강요’이며, 당사자 합의에 따른 전속거래는 허용된다. 형식적으로 당사자간 합의에 의해 체결된 계약이라면 문제삼을 수 없다는 의미다. 서 변호사는 이에 따라 명시적이지 않은 암묵적인 강요가 2차 협력업체에 작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전속거래의 규모가 제대로 파악되지 않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하나의 완성차 업체에 부품을 납품하는 업체임에도, 1차 협력업체가 여럿으로 나뉘어 서류 상으로는 전속거래가 아닌 것처럼 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

25일 열린 ‘자동차산업 하도급 5대 불공정행위 근절을 위한 정책 간담회’에서 자동차산업의 협력업체들 간에 발생하는 다양한 불공정행위 사례들이 발표됐다.   ©중기이코노미

◇‘가단가’ 이용해 대금 미지급 규제 피해 가= 하도급업체들 중 단가후려치기를 당해보지 않은 업체를 찾기는 힘들다. 최근에는 낮은 수준의 ‘가단가’를 구두로 제시하면서, 추후 계약을 체결할 때는 적당한 마진을 반영해 단가를 책정하겠다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실제 적절한 마진을 보장하지 않더라도, 계약서 상 명시된 단가를 지급했기 때문에 하도급법 상 대금 미지급에 따른 처벌은 피할 수 있게 된다.

협력업체 스스로 일정한 단가인하율을 정해 입찰에 참여하게 하는 ‘약정 CR’ 역시 단가후려치기의 일종이다. 단가를 낮추는 대신 충분한 물량을 배정해 손실을 줄여주는 식으로 운영돼 왔으나, 물량을 보장하지 않은 경우 협력업체가 큰 피해를 입게 된다. 

입찰 시 약정과 달리 부정기적으로 추가 단가인하를 요구하는 추가 CR 역시 형식 상 동의하의 감액으로 보이지만, 사실상 단가인하 강요의 성격을 띤다.

◇금형 설계 변경하고 비용은 추후 단가인하율로 보전= 생산에 착수한 다음, 금형의 설계를 변경할 경우 2차 협력업체는 금형제작 비용을 지출하게 된다. 그러나 그 비용이 제대로 지급되지 않는다.

심지어 향후 수주할 물량에서 단가인하율을 낮춰주는 방식으로 무마하는 경우도 있다. 영세한 2차 협력업체 입장에서는 재무 부담이 늘어갈 수밖에 없다. 특히 제품 불량률 등을 이유로 책임을 떠넘기는 경우, 2차 협력업체는 치명적인 피해를 입게 된다.

◇설비투자 유도 후 방치, 심지어 어음부도까지= 신규 발주 물량이 늘어날 것이란 언질에 2차 협력업체가 대규모 투자를 해 설비를 늘렸으나, 충분한 물량을 발주하지 않은 경우도 있다. 이런 일을 당한 2차 협력업체가 납품중단 등의 행동을 선택하면, 공갈죄 등 형사처벌로 대응한 사례도 있다.

또 2차 협력업체의 추가 대금 요구에 일단 어음을 발행한 다음, 다른 업체에 금형을 넘겨 대체생산 체제를 갖추고 나서 공갈에 의해 발행됐다는 이유로 어음결제를 하지 않고 ‘피사취 부도’ 처리하는 사례도 있었다.

◇법망회피, 기술탈취에 사적 갑질까지= 하도급법 규정을 피하기 위해 1차 협력업체가 친인척을 동원해 SPC나 페이퍼 컴퍼니를 설립하는 경우도 있다. 신설 SPC에 발주한 다음 이 업체가 다시 아래 단계의 협력업체에 부품생산을 위탁하는 방식이다. 신설인데다 규모도 작아 하도급법 적용을 피할 수 있다. 이 밖에 생산공정 시찰을 명분으로 한 기술탈취도 발생하고 있다.

1차 협력사 임직원들이 접대나 떡값 요구, 자신의 친인척에 재하도급 요구, 인사청탁 압력 등을 하기도 한다. 하도급법 위반의 소지가 있지만, 힘없는 2차 협력업체가 이런 사례를 신고하기는 어렵다. 특히 공정위가 대책 강구에 고심할 부분이다. 중기이코노미 이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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