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책연구기관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최근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우리 경제의 성장률 둔화와 장기전망’이라는 보고서를 내놨다. 보고서는 우리경제의 침체가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추세적인 하락일 가능성이 높으며, 2020년대에는 경제성장률이 1%대로 내려앉을 수 있다는 부정적인 전망을 담았다. 또 단기적인 확장재정정책은 재정건전성을 해쳐 위험성을 키울 수 있기 때문에, 금융·노동·기업활동 규제 등 제도적인 요인을 개선해 생산성을 높이라고 주문했다.

보고서가 공개되자 야당은 일제히 현 정부의 경제정책을 성토하고 나섰다. ‘재정의 과감한 역할이 어느 때보다 요구되는 시점’이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16일 국가재정전략회의 발언을 두고,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는 국책연구기관마저 정권에 쓴 소리를 하는 터에, 대통령만 오답을 고집하며 엉뚱한 처방을 하고 있다고 날을 세웠다. 유승민 바른미래당 의원은 한발 더 나아가 ‘KDI가 옳고, 대통령이 틀렸다’고 단정한 뒤, 개혁을 외면하고 세금이라는 마약성 진통제만 맞으면 나라곳간이 거덜 날 것이라며, 막말에 가까운 비난을 퍼부었다.

대통령이 틀린 게 아니라 유승민 의원이 틀렸다. KDI 보고서를 제대로 읽었다면 이렇게 주장해서는 안된다. KDI 보고서에 확장적인 재정정책에 대한 우려가 담긴 건 맞다. 그러나 이는 경기침체를 순환적인 요인으로만 판단해 돈을 쏟아 부으면, 장기적으로 재정부담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에 구조적 요인을 개선하라는 충고다. 대통령이 말한 재정의 적극적 역할론을 부정하는 주장이 아니다. 저소득층의 소득개선, 일자리 창출, 혁신성장 위한 R&D 투자, 무역 다변화를 위한 신남방·신북방 지원, 남북간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한 지원을 ‘나라곳간을 거덜 낼 사업’으로 보는 유승민 의원의 시각이 오히려 진부하다.

KDI 보고서는 노동생산성 제고를 주문했다. 금융·노동·기업활동 규제를 개선해야만 노동생산성이 높아져 성장을 뒷받침할 수 있다는 주장도 덧붙였다. 맞는 말이다. 노동생산성을 높이려면 착취구조와 같은 임금체계, 중소기업의 기술을 가로채는 대기업의 불공정행위, 기술향상에 투자하기 보다는 값싼 노동력을 찾아 외국으로 공장을 이전하는 얄팍한 상술을 버려야 한다. 비정규직 일자리를 늘여 노동생산성을 높인다는 건 있을 수 없는 궤변이다. KDI가 주장하는 노동생산성 향상은 문재인 정부가 주창한 공정경제, 혁신성장과 궤를 같이 한다.

수출기업·대기업 편에 서서 공정경제, 혁신성장을 가로막아 왔던 게 자유한국당 등 극우·보수 야당이었다. 기업성장을 오로지 저임금과 손쉬운 해고로 해결하려는 이들 정당의 경제철학이 오히려 노동생산성을 떨어뜨리는 요인이다.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과 수십조원의 혈세를 낭비한 자원외교를 앞장 서 추진했던 이들이다. 박근혜 정부가 국정농단으로 경제질서를 엉망으로 만들 때조차도, 아무런 문제제기도 하지 않았던 당사자가 이들 정당이다. 그랬던 극우·보수 야당 의원들이 문재인 대통령의 재정역할론에 대해 KDI 보고서를 왜곡하면서까지 공격하는 행태는 비난받을 일이다. 

경제가 점점 더 힘들어 진다는 진단에는 이견이 없다. 미중 무역갈등 등 세계경제도 어두운 전망이 드리워지고 있다. 정부정책에 대해 다른 생각을 할 수는 있지만, 이럴 때 일수록 정부와 여야가 머리를 맞대야한다. 어려운 경제여건을 빌미로 거리에서 좌파정권 타도를 외치고, 국회의원 인지도 향상의 소재로 활용하는 건 국가를 위한 것도 국민을 위한 일도 아니다. KDI보고서가 전적으로 맞더라도, 그것을 가지고 문재인 정부가 틀렸다고 말하는 건 자가당착이고 아전인수식 해석이다. 비판을 해야지, 비난만 하면 정치는 결코 나아지지 않는다. 바른미래당 유승민 의원, 비난보다 진지한 비판이 아쉽다. 그런 이유로 유승민 의원이 틀렸다는 얘기다. (중기이코노미=안호덕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