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진국 미술평론가(디지털문화정책학)

우리는 긴 줄을 보면서 그 줄에서 함께 기다리면 뭔가 굉장한 이득이나 보상을 얻게 될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게 된다. 그래서 간혹 어떤 사람은 왜 줄을 서 있는지도 모른 채, 다른 사람을 따라 그 대열에 합류하기도 한다. 나는 지금 미술관 입구에서, 혹은 미술관 안에서 길게 줄을 선 사람들이 찍힌 사진을 바라본다. 그들은 왜 줄을 서 있는 것일까?

◇미술관에서 줄을 선 사람들=2004년, 세계적으로 유명한 영국 런던의 테이트(Tate) 미술관은 ‘줄을 서 있는 사람들’을 구입했다. 사람을 구입했다고? 사람을 사고파는 것은 불법이므로, 다시 말해야 할 것 같다. 테이트 미술관은 줄 서는 행위를 구입했다. 행위를 소장한다는 말인가? 그것도 일상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줄을 서는 행위를? 의아스럽다. 하지만 이 행위는 관리번호 T11940으로 테이트 미술관의 소장품이 됐다.

로만 온닥, ‘좋은 시간에 좋은 느낌’, 퍼포먼스, 2003년<출처=metropolism.com>

사실 테이트 미술관이 소장한 이 행위는 2003년 첫 선을 보인 ‘좋은 시간에 좋은 느낌(Good Feelings in Good Times)’(2003)이라는 퍼포먼스다. 이 퍼포먼스를 기획한 슬로바키아 출신의 예술가 로만 온닥(Roman Ondák, 1966~)은 연기자들을 고용해 전시장 밖이나 안에서 줄을 서 있는 것처럼 보이게 행위하라고 요청했다. 연기자들은 그의 지침에 따라 전시장 밖이나 안에 ‘설치되었다’(줄지어 있었다).

전시장 주변을 지나가는 행인이나 전시장으로 들어온 관람객들은 줄을 서는 것이 전부인 이 퍼포먼스에 놀랍도록 반응했다. 줄지어 있는 것을 보고 호기심이 가득한 행인 혹은 관람객은 그 줄에 합류하기도 했다. 그냥 지나가 버렸던 미술관은, 혹은 그냥 한번 훑고 지나가던 미술관 내부는 호기심 가득한 관심의 대상이 됐다. 테이트 미술관이 구입한 이 퍼포먼스는 2004년 프리즈 프로젝트(Frieze Projects)에서 재시연됐고, 이후 2007년, 2011년, 최근에는 2017년 재시연되는 등 여러 번 다시 실행됐다.

로만 온닥의 이 작업은 전시장에 호기심을 갖게 하는 묘한 마력을 지닌 퍼포먼스다. 그는 퍼포먼스 외에도 다양한 설치 작업들을 선보이고 있지만, 단연 돋보이는 작업은 관객 참여형 작업이다. ‘좋은 시간에 좋은 느낌’은 관객의 참여를 소극적으로 유도한다. 하지만 그의 ‘우주 측정하기(Measuring the Universe)’(2007)나 ‘물물교환(Swap)’(2011)은 관객이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진행되는 작업이다.

로만 온닥, ‘물물교환’, 퍼포먼스, 2011년<출처=waysofcurating.withgoogle.com>

이 작업은 관객들이 전시장 문을 열고 들어서면서 시작된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책상에 앉아있는 퍼포머를 만나게 되는데, 퍼포머는 이때 관객들에게 자연스럽게 말을 걸면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물건을 교환할 생각이 있냐고 물어본다. 동의하면 퍼포머가 일대일로 물건을 교환하며, 그 물건에 얽혀 있는 추억이나 기념할만한 일을 말하도록 유도한다.

이후 다음 관객에게 “이 물건은 이런 추억이 담겨 있는데, 당신이 가진 다른 물건과 교환할 생각이 있냐?”라고 물으면서, 또 다른 물물교환이 시작된다. 이런 방식으로 물물교환은 연쇄적으로 진행된다.

온닥은 이 관객 참여형 작업에서 물건의 경제적 가치와 그 물건에 내재된 추억의 가치를 비교하게끔 한다. 그는 이러한 전근대적인 일대일 교환이라는 방식을 통해 ‘물건의 가치는 무엇으로 측정되는가’라는 근본적인 의문을 갖도록 한다. 과연 물건의 가치는 어디에 있는가?(중기이코노미 객원=안진국 미술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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