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진국 미술평론가(디지털문화정책학)

우리는 지금 현생누대(顯生累代, Phanerozoic eon) 신생대(新生代, Cenozoic era) 제4기(第四紀, Quaternary period)의 홀로세(Holocene epoch)에 살고 있지만, 몇몇 학자들은 2000년대부터 홀로세에 이은 ‘인류세’라는 새로운 시대에 들어섰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인류가 지구에 남긴 흔적이 지질학적으로는 ‘눈 깜짝할 사이’지만, 다른 지질시대와 뚜렷이 구분될 만큼 이질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대표적인 화석으로 플라스틱, 콘크리트, 방사능 물질, 닭 뼈가 꼽히고 있다.

어떻게 보면 인류세는 지질학적인 학술용어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단어는 단순히 학문적 연구의 영역에서 존재하는 관념적인 용어가 아니다. 이것은 하나의 경고다. 지구 역사에 인간의 흔적이 지구에 심각한 위기를 초래하고 있다. 이 위기 상황은 고스란히 지질시대의 지층으로 압축되고 있다. 이것이 인류세다. 따라서 인류세는 지구의 심각한 위기를 경고하는 경고장이다.

리투아니아 국가관 전시 ‘태양과 바다(마리나)’ 전시 모습.<출처=operawire.com>

암울하고 어두운 세계 종말을 재촉…인류세라는 경고장

올해 제58회 베니스 비엔날레 국제미술전에서 황금사자상을 받은 리투아니아 국가관 전시 ‘태양과 바다(마리나)’는 이것을 분명히 보여준다. 

너무도 평온하고 나른하고 한가로운 해변의 일상은 끊임없이 플라스틱 같은 지구 환경을 파괴하는 쓰레기를 남기는 활동이다. 너무 일상적이어서 아무도 그 위험을 인식하지 못하지만, 이 일상적 활동은 환경 파괴와 인간의 종말을 끌어당기는 치명적 행위다.

그런데 문제는 아무도 이 행위의 위험성을 모르며, 이 행위는, 이 해변의 나른한 모습은 전혀 위험해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차라리 평온하다고 해야 맞다. 하지만 이 활동은 미세하게 끊임없이 지구의 환경을 파괴하고 있다. 이런 파괴를 상징적으로 알려주는 것이 인공해변 위를 떠도는 오페라의 선율과 합창이다. 평온한 해변의 일상 위로 기후 변화와 세계의 종말에 관한 내용이 담긴 현대 오페라가 울려 퍼진다.

너무나 평온한 일상의 사이사이에 균열을 만들며 그 균열 사이로 환경 파괴와 인간의 종말 이야기가 펴져간다. 이것은 너무 이율배반적인 모습이다.

리투아니아 국가관 전시 ‘태양과 바다(마리나)’ 전시 모습.<출처=www.metalocus.es>

‘태양과 바다(마리나)’의 인공해변은 마치 진짜 해변처럼 아주 밝고 여유롭다. 진짜 해변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곳은 아주 암울하고 어두운 세계 종말을 재촉한다. 이것이 인류세로 명명되어 인간에게 날아온 경고장의 내용이다.

‘태양과 바다(마리나)’는 겉으로 보기에 생기발랄하고 밝고 가벼운 작업이다. 하지만 그 내용은 무서운 경고다. 우리는 이 오페라-퍼포먼스를 보며 마냥 신기해하고만 있어야 할 것인가. 이 무서운 경고가 현실이 되지 않도록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이제 이 질문을 고민할 시점이다. (중기이코노미 객원=안진국 미술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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