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양동 황해이발관은 1970년 문을 열어 새벽 5시 반이면 손님이 있든 없든 어김없이 문을 열고 손님 맞을 준비를 한다.   ©중기이코노미

새벽에 가장 먼저, 한집 한집 이어주는 좁은 골목을 밝히는 가게가 있다. 1970년 문을 열어 새벽 5시 반이면 손님이 있든 없든 어김없이 문을 열고 손님 맞을 준비를 하는 곳. 서울 삼양동 황해이발관이다.

눈을 뜨면 북한산에 올라 운동을 하고, 이발관에서 하루를 보내는 이우태 대표. 가게 문을 닫는 시간도 따로 정해두지 않았다. 늦은 시간이라도 가게 불빛을 보고 들어오는 손님의 머리를 정성껏 손질해 주고, 동네를 오가는 주민들이 들러 차 한잔, 수다 한자락 나누는 동네 사랑방 주인 역할을 한다.

“젊었을 때는 이발이 적성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죠. 형님이 운영하던 이 이발관에서 이용기술을 배우고 사람들과 정이 쌓여가며, 한번 맺은 인연을 쉽게 저버리지 않는 성격 탓에 이 동네를 지금껏 지키고 있습니다.”

오랜 시간 지나며 마을 변했지만 이웃 정은 여전

이 대표는 젊은시절 고향인 경상도를 떠나 우체국에서도 근무했고, 건설현장도 돌아 다니며 안해 본 일이 없었다고 한다. 바쁜 형님의 일손을 돕기 위해 이용기술을 배우다가 가게를 이어받아 마을 터줏대감이 됐다.

북한산 자락, 과거 피난민들의 주택이 모여있던 이곳 삼양동은 저렴한 임대료를 찾아오는 서민들의 마을이었다. 이 대표는 세월이 흘러 마을이 개발되고 빌라와 아파트들이 들어섰지만, 오래 마음을 나눠온 이웃의 정은 여전하다고 말한다.

황해이발관 이우태 대표는 늦은 시간이라도 가게 불빛을 보고 들어오는 손님의 머리를 정성껏 손질해 주고, 동네를 오가는 주민들이 들러 차한잔, 수다 한자락 나누는 동네 사랑방 주인 역할을 한다.   ©중기이코노미

“한때는 손님이 많아 이용사를 5명 고용했었습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이야 미용실에 가지만, 예전에는 남자손님은 아이들이나 어른이나 무조건 이발소에 왔죠. 1970년대 어른 이발요금이 60원이었는데, 가게 밖에서 줄을 서 기다렸다가 시원하게 이발을 하고 돌아가는 손님들의 뒷모습을 보면 저절로 흥이 났더랬습니다.”

이제는 이웃도 많이 떠났고, 더러는 생사를 달리하는 이웃들을 한 자리에서 지켜보며 요즘은 마음 한 구석에 쓸쓸함을 느낀다고 말한다. 2년 전 작고한 형님의 안부를 누군가 물어오면 그 쓸쓸함은 배가 된다. 그래도 오랜 단골들이 있어서 황해이발관은 쓸쓸하지 않다고 했다.

“어제도 상주에 농사지러 내려간 단골이 서울에 볼일 보러 왔다며 찾아와 이발을 하고 갔어요. 반갑고, 고맙더라고요. 그런 손님들 때문에 문도 못 닫고 이곳을 떠날 수도 없습니다.”

선행으로 마을 지키는 사랑방 ‘추억이 담긴 가게’

황해이발관이 동네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데는 이 대표의 선행도 한몫을 한다. 새벽마다 북한산에 오를 때면 산 구석구석 버려진 쓰레기를 주워 한 자루씩 들고 내려온다. 구청에서도 이를 알고 종량제 봉투를 지원해줄 정도다.

이우태 대표는 옛사진들을 보여주며 삼양동 주민들과의 추억을 이야기했다.   ©중기이코노미

“저도 젊은 시절 고생을 많이 했어요. 이제는 밥은 먹고 사는데, 어려운 사람들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그들을 보고 어떻게 돈을 받겠습니까.”

비록 손님은 줄었지만,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그의 손은 쉴 틈이 없다. 가게에서 도장 파는 일도 함께 하고, 북한산 주변 경작이 금지되기 전에는 산 자락과 옥상에 텃밭도 일궜다. 한 때는 토끼 100마리, 닭 11마리, 개 6마리를 키우느라 눈코 뜰 새 없었다고 웃는다.

이 대표는 이발관에서 일하며 형님의 소개로 만난 지금의 아내와 슬하에 1녀를 두고 있다. 활달하고 생활력 강한 아내가 처음 봤을 때부터 맘에 들었다고 한다. 이 대표의 아내는 현재 충무로에서 인쇄소를 운영하고 있다.

황해이발관은 최근 서울시의 ‘추억이 담긴 가게’에 선정돼, 가게 단장을 지원받게 됐다. 

“이웃들이 언제라도 찾을 수 있는 사랑방 역할을 할 것입니다.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이 동네 사람들을 사랑합니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가게를 지키며 동네 사람들의 친철한 이웃으로 남고 싶습니다.” 중기이코노미 채민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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