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소개된 그림을 봤을 때, 어떻게 제작된 작품인지 예상이 되는가? 언뜻 추상적인 동양화 작품처럼 보이는 이 작품은 사실 온몸에 먹을 묻힌 낙지로 그려진 작품이다. 바다에서 잡혀 수산시장의 수족관에 자리하게 된 낙지는 작가에게 선택되어 예술제작을 위한 시련을 겪게 된다. 그리고 그 시련을 견뎌내면 완전한 해방으로써 바다에 방생되며 그 자유의 소중함을 체감하게 될 것이다. 이렇듯 작가는 시각적 결과물뿐만 아니라 그 모든 과정을 예술로 제시하며 자신의 작품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끊임없이 고민하며 도전하는 작가 최민수의 작품을 만나보자.

‘무제’, ink on cotton fabric, 91×60.5cm, 2019.

Q. 자신의 작품세계를 소개한다면?

기존 제 작업들은 손으로 그리는 일반적인 페인팅이었어요. 그런데 대학원에 진학하며 작업에 대한 고민을 하다 보니 ‘나는 어떻게 살고 있는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던 것 같아요. 그 끝에 제 삶에는 늘 고통이 함께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고, 삶에 수반되어 있는 고통을 시각적으로 표현할 방법에 대해 연구하다가 현재의 작업을 하게 되었어요.

낙지에 먹을 묻혀 낙지가 거의 힘을 잃을 때까지 캔버스 위에서 형상을 만들도록 하고, 작업이 완료되면 낙지를 씻겨서 바다에 방생하는 과정까지가 모두 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거죠. 삶이라는 무대 위에서 고통에 몸부림치지만, 종국에 죽음이 아닌 방생을 통해 자유와 해방을 줌으로써 진정한 해방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결국 고통이 수반되고 그 고통은 숭고하다는 삶의 경험과 메시지를 예술로 선보인 과정 모두가 제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Q. 그 주제 표현에 있어 낙지를 선택한 이유나 계기가 있는가?

제가 목포 태생인데 목포의 특산물로 낙지가 유명해요. 그래서 군대나 대학 생활을 할 때도 목포 출신이라고 낙지라는 별명으로 불린 경우가 많기도 해서, 낙지가 익숙하다 보니 자신에 대한 상징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식재료로 죽임 당하기 위해 판매되는 낙지를 구매해 작품에 필요한 행동력을 취한 후 물로 씻기고 방생하는 과정을 통해, 하루하루 버티며 살아가고 있는 저 자신을 드러낸 자화상과 같은 존재라 할수 있을 것 같아요.

Q. 개인적으로 형식적인 측면에서 이브 클라인이 생각났는데, 영감을 받은 작가가 있는가?

사실 현재의 작업을 시작할 때 기존의 대가 작품에 영감을 얻어서 시작한 건 아니었어요. 그런데 대학원에서 공부하다 보니 교수님께서도 이브 클라인의 작업과 어떤 차별성이 있는가에 대해 물으셨어요. 형식적으로 기존 미술제작에 사용된 도구가 아닌 생명체를 사용한다는 점은 닮아 보일 수 있지만, 제 작품은 담긴 의미나 개념도 다르고 시각적 결과물도 다르게 남기 때문에 저는 분명히 차별화되는 지점이 있다고 답변했었어요.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없어서 특정 누군가의 영향을 받고 작업을 한다고 할 순 없을 것 같아요. 다만, 좀 더 확고한 제 작품세계의 특색을 구축하고자 끊임없이 고민하며 연구하고 있어요.

Q. 과정을 모르는 상태에서 결과물을 보면 동양화나 추상미술을 보는것 같다. 감상자는 작품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해하길 원하는가?

실제로 작품을 보고 동양화 같다고 생각하시는 경우도 많고, 시각 결과물만 봤을 땐 과정을 이해하기 힘들 작업이라고 생각해요. 그래도 제 작품을 봤을 때 어렵게 받아들이기보단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직접 느껴보시길 원해요. 그래서 제목도 ‘무제’로 설정하고 있어요.

추상적인 형상을 보고 느끼는 것도 그만의 재미가 될 수 있을 것이고, 유심히 작품을 감상하다 보면 찍혀있는 낙지의 빨판들을 발견하고 호기심을 갖게 돼 과정이 궁금해지고, 또 개념이 궁금해지고 그렇게 작품에 대한 호기심으로 작품과 감상자가 소통하게 되는 그런 작업을 하고 싶어요.

‘무제’, ink on canvas, 34×12cm, 2019.

Q. 좋아하는 자신의 작품을 하나 소개해 준다면?

2019년작 ‘무제’를 추천드리고 싶어요. 기존에는 캔버스에 작업을 해왔었는데, 계속 작업을 하다 보니 더 다양한 분위기와 표현을 연구하고 싶어서 어떻게 새로운 결과물에 도달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낙지와 먹물의 표현을 살릴 수 있는 새로운 천을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으로 원단 시장을 돌아다니면서 다양한 천을 소재로 실험을 했어요. 광목천이나 의류에 사용되는 직물 섬유를 이용해 작업을 해봤는데 시각적 결과가 마음에 들었어요.

아직 제 작업방식이 완성되었다고 생각하지 않기에 계속 실험하고 있고 그 실험 끝에 시각적으로 감상자를 끌어당기는 강렬한 결과물을 끌어내고 싶어요. 그래서 최근 실험들 중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이 이 작품이고요.

Q. 앞으로 작업을 어떻게 확장시켜 나갈 계획인가?

아마도 내용 자체는 변함없겠지만, 이 주제를 어떻게 하면 더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에 대한 실험들이 이어질 것 같아요. 더 낙지를 잘 활용할 수 있는 먹에 대해서도 고민을 해보고, 최근에는 기존의 사각형 캔버스의 틀을 벗어나 변형 캔버스에도 작품을 제작해보는 시도를 하고 있어요. 당분간은 지금의 연구를 유지하며 더 깊게 파고들 것 같아요.

Q. 작가로서 현재 가장 힘든 점은?

역시 먹고살기 힘들다는 점이겠죠. 일반적으로 대학을 졸업하고 자격증을 취득하고 취업을 하는 삶의 방식처럼, 작가도 작업의 양과 질을 끌어올려 공모전에서 수상하고 그 경력을 통해 전시 기회나 레지던시 입주 기회가 주어지죠. 그런데 그 시작점인 작업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경제적인 부분이 늘 발목을 잡아 작업을 쌓아가지 못하고 생존을 위한 다른 일들을 이어가게 될 때 ‘이대로 작가하겠다며 나이만 들어가고 있는 건 아닌가. 나는 불효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와 같은 고민을 많이 하게 되는 것 같아요.

Q. 앞으로 작가로서의 꿈이 있다면?

해외에 나가서 활동하는 작가가 되고 싶어요. 국내활동도 좋지만 항상 새로운 환경에 도전하면서 끊임없이 배우고 싶어요. 그래서 대학원에도 진학했지만 곧 대학원을 졸업하고 나면 해외에서 또 다른 배움을 쌓아가며 고민하고 발전하는 작가로 계속 살아가고 싶어요. (중기이코노미 객원=김찬용 전시해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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