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부품·장비 산업의 대외 의존도가 심화된 원인 중 하나로, 대기업 집중현상과 그에 따른 협력적 생태계의 붕괴가 지목됐다. 

제20회 중소기업기술혁신대전의 일환으로 열린 ‘소재·부품·장비 중소기업 자립화를 위한 세미나’에서 기술경영경제학회 회장인 이병헌 광운대 경영대학 교수는 “우리나라 부품·소재의 대외 의존도가, 특히 일본에 대한 의존도가 심화되고 해소되지 않은 이유” 중 첫 번째로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기술의 불균등 발전”을 꼽았다. 

“기술개발 인력과 자금이 대기업에 집중되면서, 대기업들은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과 최고 제품으로 나가는 동안 중소기업들은 계속해서 제자리걸음”이었다는 주장이다.

이같은 대기업 집중 현상 속에서, 대기업들이 국내 중소기업을 돌아보지 못한 가운데 “국내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협력적 생태계가 붕괴”됐고, “최근 들어서는 국가 간의 분업체계, 국내기업들의 해외 현지생산이 늘어남에 따라 해외에서 직접 원부자재를 조달하면서 이런 과정은 더욱 더 심화됐다”고 덧붙였다. 

이 교수는 “소재·부품·장비의 국산화를 위한 대책을 마련하는 것도 정부가 나서서 하기 보다는 대기업들이 앞에 나서고, 정부는 뒤에서 도와주는 모양새가 되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고 말했다. 

◇對일 적자 대부분이 소재·부품·장비, 대체도 오래 걸려=한국은 2018년에 일본으로부터 소재·부품을 288억달러 수입했다. 2018년 전체 소재·부품 수입액(1772억달러)의 16.3% 수준이다. 중국(544억달러)에 이어 2위의 수입처로, 규모가 크긴 하지만 최대 규모는 아니다. 게다가 한국기업이 동남아 등 현지공장을 통해 수입한 물량도 많아, 일본의 비중이 절대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이병헌 교수는 “문제가 되는 것은 매우 핵심적인 부품·소재들, 기술적으로 복잡하거나 난이도가 높은 제품의 대일 의존도가 높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 결과, 2018년 對일 무역적자 241억달러 중 부품·소재 분야 적자가 224억달러로 대부분을 차지했다.

양국의 소재·부품·장비 산업 시장구조도 극명한 차이를 보였다. 이 교수는 “한국기업들은 기술 난이도가 낮으면서 범용으로 쓰이는, 그러면서 시장규모가 큰 제품 위주로 생산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반면 일본 기업들은 시장규모가 작고 수요가 그렇게 많지 않은 분야에서, 세계시장 점유율이 크게 높은 경우가 많다. 일본이 부품·소재의 한국 수출을 제한할 경우 한국이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한국 중기는 하청 중심, 기술혁신기업 부족=이 교수는 한국의 소재·부품·장비 산업 기업들의 성장경로를 크게 3단계로 나눴다. 첫 번째는 ‘하청기업군’으로, 제한된 수요기업의 주문을 처리한다. 

하청기업군은 두번째 단계에서 두갈래 성장경로를 걷는다. 생산품목을 확대할 경우 ‘품목다변화 기업군’으로 발전한다. 대기업 고객을 대상으로 다양한 품목을 납품하는 기업들이다. 반면 생산품목 확대 대신 설비투자를 선택할 경우, 수출 중심의 ‘생산중점군’으로 발전한다. 그리고 두번째 단계의 모든 기업들은 기술축적을 통해 ‘기술혁신기업군’으로 발전한다. 

이 교수는 “우리나라 대부분의 소재·부품·장비 기업들이 하청기업이거나 생산중점군 형태”라며, 혁신적인 신제품을 설계하고 개발하는 역량을 갖춘 기술혁신기업군은 전체의 3%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추정했다. 

◇연구개발 지원과정, 길게 보고 단계적 지원해야=이 교수는 실제로 기술개발에 성공한 사례들을 분석한 결과, 소재·부품·장비 산업의 국산화를 위해서는 “수요자인 대기업들이 (새로운 기술에 대해) 명확하게 수요를 제시하고, 그걸 중소기업들이 반영해서 기술개발하는 체제를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기술협력에 대해서는 관계형성·역량확인·제품개발 등의 과정을 거쳐서 이뤄지기 때문에, “이 과정을 길게 보고 정부가 지원해야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대부분의 지원이 기술개발 단계에 집중돼 있다”며 “이미 어느 정도 사귄 사람한테 결혼자금 줄게 라는 수준”이라고 비판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기술협력을 촉진하기 위해서는 관계형성과 역량확인 단계에 대한 지원이 필요한데, “초기에 만나서 사귈 수 있는 장을 만드는 노력이 부족했다”는 주장이다. 이 교수는 따라서 기술개발에 대해 단계별 맞춤지원이 필요하다며, 특히 만날 기회의 장을 형성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중기이코노미 이창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