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혁명’이 남긴 유산과 과제를 떠안고 출범한 문재인 정부, 임기 절반을 보냈다. 온 나라가 ‘조국이냐, 윤석열이냐?’로 들썩인다. 지금 대한민국 정치현실은 모든 국민 개개인에게 커밍아웃을 강요한다. 회색지대가 들어설 틈조차 없다. 개혁·진보와 보수·극우 세력 간 사활을 건 총력전 양상이다. 권력쟁취를 목적으로, 양 진영 간 전형적인 대립구도에 새로운 전선까지 열렸다. 

촛불혁명이 넘겨준 유산 덕에, 한때 80%대 지지율을 누렸던 문재인 정부다. 지지율은 반토막이 났고, 촛불혁명의 주력도 둘로 쪼개졌다. ‘조국 편이냐, 아니냐’가 기준이다. 박근혜 정부를 지탱했던 극우·보수 진영 또한 둘로 쪼개졌다. 태극기를 참칭하는 극우집단, 제도권 정당까지 만들어 ‘박근혜냐, 아니냐’를 묻는다. 계륵 같은 태극기의 질문에 분명한 답을 내놓지 않으면서, 보수세력은 윤석열을 지켜보잔다. 

윤석열의 칼질에 전 대통령 박근혜가 단죄되면서, 극우·보수 세력 간 갈등은 극단으로 치달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들 두 집단을 다시 하나로 묶어세운 이가 윤석열이다. ‘조국대전’이 지속되는 한, 다소 삐꺽거리겠지만 이들의 야합은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다. 나아가 조국이 패하고 윤석열이 승리하면, 이들의 바람대로 문재인 정부는 치명상을 입는다. 극우와 보수 집단의 결합력은 보다 강화될 터이고, 문재인 정부에겐 최악의 시나리오가 펼쳐진다. 

내년 4월 개혁·진보와 보수·극우 세력 간 의회권력 쟁취를 위한 한판 승부가 예정됐다. 심판의 날은 내년 4월15일이지만, 연말 즈음이면 총선결과를 어렵지 않게 가늠할 수 있다. 조국대전 전반전의 승자와 패자가 결정된 이후이기 때문이다. 여야 모두 특히, 야당은 전반전 성적표와 무관하게 후반전 공세의 고삐를 더욱 죌게 불 보듯 분명하다. 총선의 최대 쟁점은 조국대전일 수밖에 없다. 조국에게 벗어나 정책과 비전으로 승부하려는 집권여당의 전략은 애초부터 먹힐 여지가 없다. 

개혁·진보 세력이 분열되고 극우·보수가 단일한 대오로 정비하다면, 내년 4월 총선은 가시밭 길이다.  ‘조국이냐 윤석열이냐?’로 압축된 프레임을 다변화하고, 개혁·진보 세력을 하나로 묶어야하는 이유다. 잔존하는 적폐청산에 가속도를 내고, 재벌개혁을 포함 경제민주화를 향한 강력한 드라이브만이 극우·보수 세력의 야합을 저지할 수 있다. 어차피 넘긴 칼자루를 회수할 수 없다면, 윤석열에게 ‘검찰 본연의 기능’을 하도록 할 수 밖에 없다. 법치주의를 지켜야 할 정부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검찰의 수사·기소권이 적법하게 행사되는지 감시하고 견제하는 역할뿐이다. 

조국 장관은 법무부장관이 가진 권한행사를 통해 법무·검찰 개혁에 박차를 가하는데 더더욱 매진해야한다. 아울러 중앙행정부처 수장 모두가 각기 보유한 권한을 최대한 활용, 적폐청산과 경제민주화 조기 달성을 위한 실행계획을 내야한다. 교육부장관은 사학재단의 정상적 운영을 담보할 개혁안을 제시하고, 시행령 개정 등을 통해 최단기간 내 실현 가능한 성과를 도출할 수 있다. 조국 장관의 딸로 인해 입시 관련 의혹이 불거졌고, 사학재단 운영과 관련한 숱한 문제점이 또다시 수면에 떴다. 위기가 기회라는 말이 있듯, 공세적인 대응을 가할 기회가 주어졌다. 사학재단 개혁은 조국으로 갈라진 개혁·진보 세력을 하나로 모으는 계기다. 조국 때문에 문재인 정부에 등을 돌린 중도세력을 개혁·진보로 견인할 유력한 수단이다. 게다가 사학재단 개혁에 대한 국민의 지지와 성원은, 사학재단을 통해 성장한 극우·보수 인사의 입지도 축소시킨다. 

국회입법을 통하지 않아도 ‘재벌특권은 내리고, 시민권리는 올리고, 공정사회를 만들기 위한’ 방법은 많다. 촛불정부 출범 이후 지금껏 극우·보수 집단과도 ‘협치’를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문재인 정부의 개혁을 가로 막았다. 전 대통령 박근혜 탄핵 이후 숨죽였던 극우·보수 집단의 목소리는 협치를 명분으로 점점 커졌다. 지금 벌어지는 조국대전의 기원도 따져보면, 협치에 대한 정부·여당의 과도한 집착에서 시작됐다. 협치라는 이름하에 정부·여당의 거듭된 양보와, 그에 따른 개혁의 좌초는 개혁·진보 세력 내부의 분열을 초래했다. 개혁·진보 세력의 통합을 위해서도 개혁과제를 전면화하고, 전격 실행해야한다. 개혁·진보 세력을 다시 결집해 다수화하는 길이고, 극우·보수 세력을 고립시킬 최상의 방책이다.  

법무·검찰 개혁에 저항하는 정치검찰의 전횡을 방치한 채, 개혁이 가능한가라는 지적이 있을 수 있어 한마디 한다. ‘그대로 나두지 않으면 어떻게 할 건데’라는 말로 대답을 갈음한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휘두르는 칼이 무서운 이유는, 나름 명분이 있고 여론의 지지가 있어서다. 명분과 여론이 조작된 것이라고 주장해서 조국 장관을 방어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란 말이다. 이런 이유로 조국 장관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가졌다고, 적폐세력과 동일시해선 개혁·진보세력의 통합은 불가하다. 마찬가지로 조국 장관에게 우호적이라고, 입에 담기에도 싫은 ‘조빠’ 딱지를 붙여서도 곤란하다. 개혁·진보 세력 모두가 두 눈 부릅뜨고 검찰수사를 지켜보는 한편, 정부에 대해 전면적인 개혁을 촉구하는 한 목소리를 낼 때다. 

너무 조급해 하지 말자. 문재인 정부의 개혁이 하나하나 이행되면, 국민여론은 정부와 개혁·진보 세력을 향한다. 국민 여론과 관심이 조국이 아닌 적폐청산과 경제민주화로 모아질 수 있도록, 정부를 다그치고 독려하는게 시민사회가 지금 할 일이다. 적폐청산과 경제민주화가 진행되는 속도 딱 그만큼, 검찰이 가졌던 명분은 희석된다. 조국 장관 진퇴를 포함 관련된 모든 문제는 모두 임명권자인 대통령의 결정에 맡기자. 그리고 이제 촛불혁명의 주체가 함께 외쳐야 할 구호는 적폐청산과 경제민주화로 통일해야한다. 중기이코노미  논설위원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