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한국경제연구원이 흥미로운 보도자료를 발표했다. 지난해 국민연금이 주식 의결권을 보유한 716개 국내 상장사를 조사한 결과, 국민연금이 대주주로 있는 기업이 19개사, 2대주주로 있는 기업은 150개에 달한다는 것이다. 

한경연은 국민연금의 영향력이 이미 막강해진 상황에서, “최근 정부의 자본시장법·상법 시행령 개정(5% 공시의무 완화, 사외이사 결격요건 강화, 공시요건 강화 등)까지 이루어질 경우, 공적연금을 통한 기업 지배가 더욱 수월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보도자료만 보면, 국민연금이 이미 기업들에 막대한 지배력을 행사하는 것처럼 보인다. 영향력이 어느 정도인지 실제 수치를 살펴보면 이렇다.

국민연금공단에 따르면, 주총에서 국민연금이 반대 의결권을 행사한 비율은 2015년과 2016년 10.1%에서, 2017년 12.9%, 2018년 18.8%, 2019년 20.4%로 증가세를 이어가고 있다. 2010년대 이전에는 반대의견 비율이 10%에도 미치지 않아 주총 거수기라는 비아냥을 샀을 지경이다. 과거에 비하면, 분명 국민연금이 주주권 행사에 적극성을 띠고 있다고 평할 만 하다.

그러나 국민연금이 지난해 반대 의결권을 던진 주총안건 539건 중 실제 부결된 안건은 5건(0.9%)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반대의견을 500번 넘게 표명하고서 5번 관철시켰는데, 이를 두고 “공적연금을 통한 기업 지배”라고 해석하는 것이 정당한지 의문이다. 오히려, 국민연금이 보유한 주식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제대로 주총에 참여하는지를 따져야 할 지경이다.

노동조합, 중소상인, 시민사회단체들이 지난 9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10대 입법과제를 발표했다. <사진=을지로위원회>

국민연금은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과정에서 합병 비율이 부적절하게 책정됐다는 의혹에도 불구하고 찬성표를 던진 바 있다. 보다 과거 역사를 돌아봐도, 국민연금이 소극적인 주주권 행사로 비판받은 사례를 무수히 찾아볼 수 있다. 가이드라인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주주권 행사를 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이런 역사에서 나온 것이다.

한경연은 사외이사의 자격 규정을 현재보다 엄격히 하고 공시 의무를 강조한 상법 시행령 개정안에 대해 “국민연금이 주주권을 적극 행사하는데 방해가 되어 왔던 장벽들을 제거하고 기업지배구조에 국민연금이 개입할 수 있는 여지를 대폭 확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고 평가했다. 평가가 사실이라면, 상법 시행령 개정안은 시급히 통과될 필요가 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지난 9월 경실련과 참여연대 등이 함께 선정한 ‘재벌특권은 내리고, 시민권리는 올리고, 공정사회를 만들기 위한 10대 입법과제’에도 상법이 들어 있었다. 정부의 상법 시행령 개정안이 이런 눈높이에 걸맞는지는 따져볼 부분이 많다. 투명한 기업지배구조의 수립과 주주권 보호를 위한 합리적인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중기이코노미 이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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