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GM에) 5000억원 들여서 일자리 10만개를 5년이라도 유지한다면 그게 나쁜 장사인가?”

지난해 3월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이 한겨레신문과 가진 인터뷰에서 “(정부도) 일자리를 지키려고 몇조원씩 쓴다”면서 설파했던 ‘사회적 가성비’론이다. 당시는 GM본사가 군산공장 폐쇄 방침(5월31일) 선언과 함께 ‘한국GM 철수설’까지 흘리면서 한국정부를 압박하던 시점이다. 협박에 굴복한 정부는 결국 군산공장도 포기하고, 국민혈세 8100억원을 고스란히 GM본사에 갖다 바쳤다. 

그리고 5년은 고사하고 이제, 1년6개월여가 지났을 뿐이다. 한국지엠 사내하청업체 7개사는 자사 노동자 560여명을 12월31일자로 해고하겠다고 통보했다. 한국지엠이 지난 11월 이들 7개사에게 12월31일자로 하도급계약을 종료하겠다는 공문을 보낸데 따른 사내하청업체의 결정이다. 하도급계약 종료 이후 사내하청업체 소속 비정규직이 수행했던 공정은 한국지엠 소속 정규직으로 대체된다. 한국지엠의 설명에 따르면, 현행 주야 2교대 근무제를 주간근무제로 전환함에 따라 절반의 인력이 남는 상태에서 사내하청업체에 대한 계약해지는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가성비까지 거론하며, 5000억원에 10만개 일자리를 유지하는 ‘좋은 장사’라고 했다. 그런데 2년도 채 되지 않는 기간에 8100억원을 쏟아부었음에도, 560여개 기존 일자리마저 날릴 판이다. 장사 또는 거래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한, 그냥 퍼주기다. 이제라도 지엠본사가 8100억원을 그대로 토해내면 모를까, 한국지엠의 대량해고 사태는 무조건 막아야한다. 

‘좋은 장사’ 운운하며 당시 노조에는 고통전담을, 지엠본사에는 제대로 된 항변조차 못했던 이동걸 산은 회장. 한국지엠을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생산·판매 및 기술개발의 핵심거점으로 육성하겠다는 장밋빛 약속과 함께 지엠본사와 MOU를 체결한 산업통상자원부 관료. 이들이 창원공장 560여명 노동자의 생존권을 벼랑 끝으로 내몬 당사자이기에, 그에 따른 책임도 분명히 져야한다. 

정리해고 통보를 받았지만, 창원공장 560명의 노동자 모두는 자신의 일터에서 쫓겨나지 않을 권리를 가졌다. 이미 창원공장 사내하청노동자 100여명은 한국지엠을 상대로 근로자지위확인소송을 제기해 지난해 8월 승소했다. 인천지방법원 판결에 따르면 한국지엠이 이들 100여명을 불법파견으로 사용했기에, 파견법에 따라 이들 100여명 노동자의 사용자는 사내하청업체가 아닌 한국지엠이다. 

실제 사용자가 아닌 사내하청업체가 해고예고 통보를 하고, 해고처분을 내린다고 해고효력이 발생하지 않는다. 이들 100여명의 사내하청노동자에 대한 해고가 정당하려면, 실질적 사용자인 한국지엠이 근로기준법상 정리해고 사유를 갖추고 절차 또한 준수해야 한다. 한국지엠과 사내하청업체가 행한 해고예고 통보와 이에 따른 해고처분은 근기법을 위반해 무효이므로, 당장 철회되는 게 마땅하다. 

근로자지위확인소송 판결의 효력이 직접 적용되는 이들 100여명 이외, 나머지 약 460여명의 창원공장 사내하청노동자 역시 한국지엠 소속의 정규직이다. 고용노동부는 지난해 5월 창원공장에 대한 특별근로감독을 실시하고, 같은 해 7월까지 불법파견 사내하청노동자 774명에 대한 직접고용을 명령했지만, 한국지엠이 이를 거부했다. 이후 한국지엠이 시정명령 거부에 따른 77억원 과태료 부과처분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그렇더라도 이들 744명 사내하청노동자의 진짜 사용자가 한국지엠이라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인천지법의 2018년 근로자지위확인소송 판결은 2016년 소송이 개시된 이후 3년만에 나온 판결이다. 이에 앞서 2013년 대법원은 창원공장의 불법파견 여부가 문제된 형사사건에서 한국지엠의 유죄판결을 확정했다. 이후 창원공장 사내하청노동자 5명이 근로자지위확인소송을 제기했고, 2016년 대법원에서 원고승소 판결아 확정됐다. 이에 따라 한국지엠은 이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했다. 

창원공장 외에도 부평·군산 공장 등에서 불법파견을 이유로 한국지엠이 패소한 판결은 모두 8차례에 달한다. 이같은 사정에 비춰보면 창원공장 100여명에 대한 판결이 최종심이 아니란 이유로, 사내하청노동자가 한국지엠노동자라는 법적지위를 부정할 수 없다. 또 744명 직접고용을 명령한 고용노동부의 행정처분에 구속력이 없다는 이유로, 시정명령을 거부할 수도 없음은 당연하다.

창원공장 560여명의 밥줄이 떨어지기까지, 이제 20여일 남짓 남았다. 올 연말 정리해고 대상은 빈껍데기뿐인 사내하청 소속 노동자지만, 구조조정의 칼날이 창원공장 전체 정규직으로 향하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 한국지엠 군산공장 역시 구조조정의 시작은 사내하청이었고, 군산공장 정규직 대부분을 정리하면서 공장폐쇄로 결말을 맺었다. 한번은 지엠의 농간에 속아 군산지역 경제를 파탄상황까지 만들었지만, 같은 실수를 창원에서 반복할 수는 없다. 지금 당장, 정부와 노동계·시민사회 모두가 창원공장을 지키겠다는 각오를 벼리면서, 정리해고 반대투쟁을 조직해야 하는 이유다.  

산업부와 산업은행 그리고 정부 모든 부처에 촉구한다. 한국지엠이 정리해고 방침을 철회하도록 가용한 행정력을 총 동원해라. 대한민국 사법부의 판결과 행정부의 명령을 무시하면서까지, 불법적인 정리해고 방침을 강행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책임한 정부 탓이다. 2013년 대법원 판결로 불법파견 사실이 확인됐다면, 당시 고용노동부를 포함 행정부가 나서 주어진 권한으로 이를 바로 잡아야 했다. 만약 그랬다면, 지금과 같은 극단적인 상황까지는 이르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산업은행은 한국지엠 보통주 17.02%를 가진 2대주주다. 주주로서 당연히 가진 권리를 행사해라. 아울러 한국지엠에 들어간 8100억원이 제대로 집행됐는지 여부도 살펴, 정리해고 사태를 막을 방법을 찾아라. 중앙정부도 그리해야 한다. 경남·창원지역 지방정부 또한 한국지엠의 횡포를 저지할 대책, 경남·창원지역 시민과 함께 마련해야 한다. 미국 자본에 맞서 자국 노동자의 생존권 보장을 위해 함께 싸워주는 중앙·지방정부가 있는 나라, 그런 나라에서 살아봤으면 좋겠다. 중기이코노미 논설위원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