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계가 막막한 이들은 죽음을 택한다. 지난 2014년, 서울 송파구 지하 셋방에 살던 세 모녀는 수입이 없는 상태에서 질병을 앓으며 극단적인 생활고 속에서 동반 자살을 택했다. 구멍뚫린 사회보장제도의 단면을 보여준 사건이었다.

6·25 전쟁 직후인 1953년 우리나라 1인당 국민총소득은 67달러에 불과했다. 65년이 지난 지난해에는 3만3400달러를 넘어서며 500배 이상 늘었다. 그러나 고용없는 성장, 노동없는 미래에 대한 우려가 커지며 최소한의 소득보장을 여전히 걱정해야하는 것이 지금 우리사회의 현실이기도 하다.

매월 65만원의 기본소득이 보장되면 어떨까? 기본소득은 국가 또는 지방정부가 모든 구성원 개개인에게 아무 조건없이 정기적으로 지급하는 소득을 말한다. 일자리가 없어도 최소한의 소득을 보장받아 인간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자는 기본소득 필요성에 대한 주장은 오래 전부터 있었지만 AI와 로봇, 정보통신의 발달로 노동환경이 급변하는 최근 더욱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다.

민간연구단체인 LAB2050의 윤형중 정책팀장은 4일 국회에서 열린 기본소득 토론회에서, 우리 정부의 재정규모가 OECD 주요 국가들에 비해 낮은 편인데다, 사회복지지출 비중은 매년 OECD 최하위를 면치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윤 팀장에 따르면, 한국 정부가 OECD평균 만큼 사회복지 지출규모를 늘린다면 204조원의 복지재원을 확보할 수 있고, 프랑스만큼 지출을 높이면 386조원의 신규 재원을 확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는 모든 국민에게 매월 각각 33만원과 62만원을 지급할 수 있는 규모라고 한다.

물론 문제는 재원이다. 윤 팀장이 제시한 재원마련 방안은 ▲소득세제 비과세감면 정비 ▲기본소득 과세 ▲탈루 및 비과세 소득 적극 과세 ▲일부 복지정책 폐지 및 축소 ▲소득보전 성격의 비과세감면 정비 ▲기금 및 특별회계 정비 ▲지방재정 지출 조정 ▲재정 증가분의 일부 활용 등이다.

국가 재정을 정비하고 세원을 확충하는 방안인데, 불가능하지는 않겠지만 당장 실현은 어려워보인다. 그럼에도 기본소득 현실화를 위한 재원 모형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기본소득에 한 발 다가가는 시도로 보인다.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는 기본소득은 모든 자원의 공유라는 관점에서 가능하다고 설명한다. 미국 알래스카의 국민 배당은 대표적인 예다. 1959년 알래스카는 주헌법을 통해 알래스카의 모든 자연자원은 알래스카 사람들에게 속한다는 원칙을 천명하고, 이후 발견된 석유에서 나오는 수익금을 알래스카 영구기금으로 만들어 이를 주민들에게 매년 배당금으로 지급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기본소득에 대한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경기도가 시작한 청년배당은, 비록 모든 주민에게 지급되지는 않지만 만 24세 청년이라면 누구나 연간 100만원의 기본소득을 받을 수 있다. 경기연구원에 따르면, 청년기본소득을 지급받은 청년 10명 중 8명은 이에 만족하고 있으며, 이 기본소득이 지역화폐로 지급돼 골목상권에도 도움이 되는 것으로 나타난다.

경기도는 또한 올해부터 데이터 주민배당을 실시한다. 개인정보를 뺀, 지역화폐 데이터를 필요로 하는 업체 등에 판매하고 수익금을 지역화폐로 주민에게 배당하는 제도다. 이는 공공자원이 특정 기업이나 정부에 속하는 재산이 아닌 지역공동체가 나눠야 할 재원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는 이와같은 맥락에서 데이터 또한 공공의 자원이 될 수 있음을 주장한다. 데이터를 통해 돈을 버는 구글이나 네이버의 경우, 데이터 축적을 위한 인프라를 구축한 것은 맞지만 이 플랫폼에 참여해 데이터를 생성하는 것은 이용자 개인이기 때문에 데이터로 발생하는 수익금의 일부는 이용자들과 공유해야 한다는 얘기다.

기본소득은 사회가 공유한 부를 모두가 나눈다는 관점에서 시작된다. 세금확보를 통한 재원확보 뿐만 아니라, 구성원들이 공동으로 보유한 자원에 대해서도 고려해야 한다.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는 과거 이상적인 이야기에서 점차 현실의 이야기로 부상하고 있다. 선별복지의 사각지대를 없애고 소득 재분배 효과를 가져올 수 있는 기본소득의 현실화를 위해 다양한 경제관계자들의 참여와 논의가 필요하다. 중기이코노미 채민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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