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역사·현실을 고발하고 희망 보여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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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역사·현실을 고발하고 희망 보여주다 유한과 무한의 틈, 환상과 현실 사이…이반 나바로㊤

기사입력2020-02-18 09:38

안진국 객원 기자 (critic.levahn@gmail.com) ㅣ다른기사보기

안진국 미술비평가(‘비평의 조건’ 저자)

밤이 되면 그 나라는 어둠이 지배했다. 정부는 전력을 차단해 어둠 속에 국민을 가뒀다. 그 시간, 통행은 금지됐다. 잔인한 군사독재 정부의 밤. 그 밤, 그 시간을 버텼던 한 어린아이는 커서 빛을 다루는 예술가가 됐다. 닫혀 있는 공간을 끝도 없는 무한한 공간으로 뒤바꾸는 예술가가 됐다. 어두운 역사와 현실을 고발하고, 자유를 향한 갈망, 희망, 해방을 보여주는 예술가가 됐다. 그는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나에게 미술가가 된다는 것은 멋진 것을 만드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다.”

그는 바로 칠레 출신의 작가 이반 나바로(Iv án Navarro, 1972~)다.

어둠과 고립의 나라를 견뎌낸 아이…이반 나바로

화려한 네온과 형광등 그리고 그의 빛을 반사하고 확대하는 거울과 유리 등의 재료를 사용해 환상적인 공간을 연출하는 이반 나바로는, 마치 얄팍한 현실공간을 앨리스가 살고 있을 법한 이상한 나라로 바꾸는 신묘한 작업을 선보인다. 관람객은 마치 그의 작품을 바라보며 블랙홀에 빨려드는 듯한 착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그 블랙홀과 같은 무한한 공간의 실재 길이는 50cm도 채 되지 않는다. 작품을 보는 감상자는 이반이 만들어 놓은 환상적인 빛의 세계와 무한한 공간감에서 느껴지는 자유와 해방감, 현실을 넘어설 수 있다는 희망을 품게 된다. 그의 작업은 번화가의 반짝이는 네온사인을 떠오를 정도로 화려하다.

이반 나바로, ‘현대 울타리’, 2011년 아모리쇼 전시 전경<출처=www.kasmingallery.com>

그래서 감상자는 눈으로 강렬하게 쏟아지는 시각적 이미지에 현혹되기 쉽다. 그러나 작가의 성장배경을 통해 이러한 작품이 나오게 된 까닭을 알게 되면, 이 작품을 바라보는 다른 감정을 가지게 된다.

칠레는 우리나라보다 더 길고 강압적인 군사독재 정부 시기를 거쳤다. 1973년 군사쿠데타를 일으킨 아우구스토 피노체트(Augusto Pinochet)가 칠레의 정권을 장악해 대통령이 된 후 군사독재 정부를 세웠다. 그는 헌법을 개정해 1990년까지 장장 17년간 칠레를 통치했다. 그동안 반정부 시위대와 정적 등을 잔인하게 탄압하면서 악명을 높였다. 게다가 저녁 시간에 전력을 차단하고, 통행금지를 시행해 시민의 외부활동을 제한하고 가정에 고립시켰다.

이반 나바로는 피노체트가 쿠데타를 일으키기 1년 전인 1972년 칠레 산티아고에서 태어났다. 그는 갓난아이 때부터 피노체트의 폭압적 독재정부의 그늘 아래에서 성장할 수밖에 없었다. 칠레에서 유년시절을 보낸 작가는 전력 차단에 의한 정전과 통행금지를 경험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암울한 시기를 견뎌낸 아이는 빛이 대중을 제어할 수 있음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 아이가 경험한 통제에 관한 기억과 자유에 대한 갈망은 네온과 형광등, 거울과 유리를 사용한 빛과 공간의 무한 확장을 보여주는 예술가 이반 나바로를 탄생시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빛은 ‘지난날’ 억압과 통제의 상징이었지만, 나에게는 희망과 자유 그리고 해방을 상징하는 새로운 매개체로 다가왔다.” (중기이코노미 객원=안진국 미술비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