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1년 1월 DB금융투자(옛 동부증권)는 방송·통신장비업체 씨모텍의 유상증자를 주관했다. 유상증자에 앞서 씨모텍을 실사한 DB금융투자는 금융감독원에 증권신고서와 투자설명서를 제출했는데, 재무상태에 대한 중요정보를 허위로 기재했다. 2010년 9월13일자 기준 씨모텍의 최대주주인 나무이쿼티의 자본금은 30억원에 불과했지만, 외부차입금 220억원이 자본금으로 전환됐다고 기재했다. 이로써 자본금 30억짜리 씨모텍은 250억짜리 기업으로 둔갑했다. 국내투자자 4900여명에게 145억여원의 피해를 준 ‘씨모텍 주가조작’ 사건은, 그렇게 시작됐다. 

2007년 코스닥시장에 진입한 씨모텍의 외관상 재무상태도 튼실했지만, 기업실적은 더 좋았다. 2008년 7000만달러 수출탑 수상·2010년 1억달러 수출탑 수상에 이어, 같은 해 연말 대통령상 표창을 받는 등 유망 중소기업으로 주목을 받았다. 그리고 다음 해 1월 286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시행했다. 재무상태와 기업실적 모두 좋으니, 투자자가 몰렸다. A씨 등 4900여명 투자자가 유상증자에 참여해 씨모텍 발행 주식을 매입했다. 

그런데 유상증자 후 6개월이 조금 지난 시점, 2011년 9월 씨모텍은 자본잠식으로 상장폐지됐다. 유상증자를 전후해 이사의 횡령·배임 사건이 터졌고, 최대주주의 무리한 사업확장으로 유동성 위기가 오면서, 씨모텍 주가조작 사건은 막을 내렸다.

상장폐지 직후인 2011년 10월, 씨모텍 유상증자에 참여해 피해를 입은 A씨 등 185명은 145억원의 손해를 입었다며, DB금융투자를 상대로 집단소송을 제기했다. DB금융투자가 제공한 거짓정보로 손해를 봤으니, DB금융투자가 A씨 등이 입은 손해를 배상하라는 게 청구이유였다.

2011년 씨모텍 주가조작 사건이 발생했고, 같은 해 손해배상청구소송이 제기됐다. 그리고 약 8년6개월 시간이 흐른 지난 2월27일, 대법원 3부는 증권신고서 등에 거짓정보를 기재한 DB금융투자에게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한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하지만 원심판결은 DB금융투자의 손해배상책임의 범위를 10%로 제한했다. 증권신고서 허위기재 이외 다양한 요인이 주가하락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손해의 90%는 투자자 스스로 부담하라는 판결이다. 

대형금융사인 DB금융투자를 상대로 개미투자자 185명이 8년 가까이 유지했던 손해배상청구소송이다. 법원은 개미투자자의 손을 들어줬지만, 10분의 1만 받아들였다. 145억원을 청구했지만, 법원은 14억5000만원만 인정했다. 주가하락 원인이 다양하다는 법원설명을 백번 이해해도,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 신용을 토대로 영업을 하는 금융기관의 거짓말에 속아, 투자를 결정한 이들에게도 90% 책임이 있다고 했다. 손해배상액 산정 법리도 잘 알지 못하고, 주식시장 작동 메커니즘은 더더욱 문외한이니, 일단 넘어가자. 

진짜 이상한 대목은 A씨 등 185명의 원고가 손해배상금으로 손에 쥘 수 있는 돈은 40만원이다. 이 40만원도 DB금융투자가 1심·2심 패소함에 따라 공탁금을 걸어 늘어난 금액이다. 판결내용에 따르면 30만원도 채 안된다, 집단소송은 소송 당사자로 참여하지 않아도, 판결의 효력이 원칙적으로 씨모텍 주가조작 사건 피해자 4900여명 모두에게 미치기 때문이다. 법원이 인정한 손해배상액 14억5000만원을 A씨 등 원고 185명을 포함 4900여명이 나눠가지라는 얘기다. 결국 A씨 등 185명은 30만원 받자고, 자기 돈과 시간을 들여 소송을 끌고 온 셈이다. 

이런 이유로 소액주주 보호를 위해 도입된 증권 관련 집단소송제, 실효성은 고사하고 무용론까지 나온다. 실제 증권 관련 집단소송제가 도입된 2005년 이후 지금까지 소송제기 건수는 13건에 불과하다. 병합된 사건을 기준으로 하면 모두 10건 뿐이다. 그렇다고 증권 관련 집단소송의 대상이 되는 범죄가 없지도 않았다. 최근 언론보도만 보더라도 허위공시·주가조작·분식회계·부실감사 관련 사건은 차고 넘친다. 그럼에도 집단소송을 찾아 볼 수 없는 가장 큰 원인, 법원의 허가결정이 있어야만 비로소 본안소송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2011년 제소한 씨모텍 주가조작 사건의 경우에도, 법원의 허가결정이 있기까지 5년이 걸렸다. 1심 허가결정은 2013년, 2심은 2015년, 2016년 대법원 결정이 나고서야 본안소송에 들어갔다. 1심·2심 허가결정에 불복한 DB금융투자가 즉시항고를 반복해서다. 즉시항고제로 인해 소송은 장기화될 수밖에 없고, 그 과정에서 돈과 여력이 없는 피해자는 소송을 포기해야하는 구조가 만들어진다. 남소를 방지한다고 소송허가절차를 도입하고, 즉시항고제까지 덧씌워 이중 잠금장치를 만들었다. 소액투자자 피해의 효율적 구제와 기업경영의 투명성 제고라는 집단소송제 취지를 살리려면, 소송허가절차와 즉시항고제 둘 중 하나는 폐기돼야한다. 

소송요건도 대폭 완화해야한다. 본안소송이 시작되기 전 원고가 50명 이상, 원고들이 보유한 증권 합계가 발행증권 총수의 1만분의 1 이상이어야만 소송이 진행된다. 여기에 소송을 제기한 소수의 피해자가 전체 피해자의 소송비용을 대야하는 구조도 집단소송 개시를 가로막는다.  

씨모텍 주가조작 사건에 대한 대법원의 이번 판결은, 금융사에 손해배상책임을 부과한 두 번째 판결이다. 2017년 대법원은 도이치뱅크 주가연계파생증권(ELS) 시세조종 사건에서 6명의 원고와 전체 피해자 464명에게 손해배상금 약 86억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한번 더 강조하지만, 2005년 증권 관련 집단소송제 도입 이후 지금까지 10개 사건만이 법원 문턱을 넘었다. 그리고 2018년 이후 제기된 소송은 단 1건도 없다. 소송요건이 지나치게 엄격해, 사실상 사문화된 제도라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회계부정을 포함 증권관련 범죄가 여전히 줄지 않고 있는 지금, 사문화된 구제제도로 금융소비자만 피해를 본다는 지적이 끊이질 않는다. 집단소송제 존재 자체가 기업에게 자정능력을 갖도록 강제하는 한편 준법경영을 도모하도록 하는 효과도 있다. 집단소송제 활성화를 위해 소송요건 대폭 완화 등 정부와 국회에 입법개선을 촉구한다. 중기이코노미 논설위원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