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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실패를 인정하고 그만 둘 용기를 내야 한다 [재기도전 중소기업인 수기] ⑤파산,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희망

기사입력2020-03-30 19:00

김남주 객원 기자 (knj.lawyer@gmail.com) ㅣ다른기사보기

재기도전 중소기업인들의 익명 수기

중소기업의 5년 생존율이 28.5%에 불과하다. 적지 않은 중소기업인이 한번쯤 사업에 실패하지만, 한번의 실패가 있다고 해서 내일의 해가 뜨지 않는 것은 아니다. 좌절을 겪은 중소기업인들을 지원하는 법무법인 도담에서, 중소기업인들(익명) 자신의 경험을 직접 담은 수기를 모았다. [편집자주]

2017년 중국의 사드(THAAD) 보복조치로 인한 한한령으로, 국내 중소게임회사 수백곳의 중국 진출이 중단됐다. 수많은 회사들이 폐업하고 그 회사의 대표였던 선후배이며 친구들은 파산할 수밖에 없었지만, 나는 지금의 암흑기만 이겨내면 더 큰 기회가 올 것이라라는 확신으로 버티고 또 버텼다.

진행중인 게임 프로젝트 계약을 중국과 체결했고, 60억원의 중국투자 유치 이후 300억원 이상의 회사 인수제안도 있었다. 하지만 ‘한한령’ 이후 중국에서의 투자금은 중단됐고, 100억원 가까운 적자를 내면서 더 이상 은행 융자조차 받을 수 없었다. 중국과 계약한 프로젝트에 이미 50억원 가까이 개발투자를 해온 터라 포기할 수도 없었다.

어느덧 개인부채가 20억원에 다다르며, 매월 수천만원의 이자조차 감당할 수가 없었지만 그래도 버틸 수밖에 없었다.

20년간 피땀 흘려 지켜온 인생 자체가 송두리째 물거품으로 사라지는 것이 두려웠다. 한국에서 사업실패자, 파산자라는 낙인을 갖고 다시 일어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아버지와 선배들을 보면서 너무나도 두려웠다. 20년전 대학생 벤처로 시작해서 수없이 노력하며 힘겹게 해왔기에 다시 시작하는 것 또한 엄두가 나지 않았다.

실패한 수많은 사람들이 이런 두려움 때문에 세상을 져버리는가 보다 생각했다. 그렇기에 회사가 무너져가는 것을 알면서도 멈출 수가 없었고, 영혼이 갉아 먹히는 걸 알면서도 탈탈 털릴 때까지 포기할 수가 없었다.

거래처 파산에 미수채권 수억원…실패라는 두려움

1999년 겨울 설립한 회사를 2018년 11월 폐업했다. 청춘과 인생 그 자체였던 사업을 정리하고 결국 파산을 할 수밖에 없었다. 20년의 사업기간 중에 회사를 폐업하기까지의 마지막 1년은 지옥과도 같았다.

나에게 인생을 걸었던 동료들, 나를 믿고 투자해 준 많은 사람들을 실망시킨다는 것만으로도 스스로를 용서할 수 없었고 후회와 자괴감으로 지옥과도 같은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거래처들의 연이은 파산으로 수억원의 미수채권으로 인해 수개월째 급여가 밀리고, 매일 수백통의 채권추심 전화로 시달리며 법인계좌부터 개인통장까지 모든 은행계좌가 압류되면서도 솟아날 구멍을 찾아 다녔다.

지금까지 셀 수도 없을 만큼 위기를 이겨내 왔듯이 이번에도 할 수 있다고 스스로를 믿으려 발버둥 쳐봤지만, 과거의 잘못된 선택에 집착하며 자괴감에 시달렸고 도저히 이 늪에서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 나 자신뿐만 아니라 이미 모든 것을 원망하고 있었다.

“너무 자책하지 말고 ‘스스로를 용서’해야 자괴감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나도 살기위해 실패를 인정하고 그만둘 수 있는 용기가 필요했다. <이미지=이미지투데이>

십 수년 간 동고동락해온 회사의 대표들이 최근 몇 년 새 연이어 회사를 폐업하고 파산하면서 겪는 고통을 수없이 지켜 봐왔다. 대부분의 대표들이 모든 것을 다 잃을 때까지 멈추지 못하는 것을 보며 ‘나는 절대 그러지 않겠다’ 다짐했건만 어느새 나 또한 더 이상 잃을 것이 없었다.

나를 아는 모든 사람들을 피하고 싶었다. 모든 것이 원망스럽고 생각하기조차 싫었다. 믿었던 사람들에게 배신당하는 것도, 바보 같은 실패자로 낙인 찍히는 것도, 남들 앞에서 태연한 척하며 웃어야 하는 것도 싫었다.

“스스로를 용서해야”…용기가 필요했던 파산신청

하지만 나에게 선택권은 없었다. 할 수 있는 최선은 현재의 실패를 받아들이고 나 자신을 용서하는 것이었다. 실패라는 칠흑 같은 어둠속에서 희망의 빛을 찾아야만 했다.

“너무 자책하지 말고 ‘스스로를 용서’해야 자괴감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사업실패 후 파산한 선후배들과 친구들을 찾아 다녔다. 상황은 다들 제각각이었지만 한결같이 얼굴은 밝았다. 내일 죽더라도 이상하지 않을 듯한 수심 가득했던 얼굴들이 달라져 있었다. 나도 살기위해 실패를 인정하고 그만둘 수 있는 용기가 필요했다.

회사를 정리하기 1년전, 불안한 마음에 몇 번을 망설이다 파산경험이 많은 변호사를 찾아갔다. 당시 회사는 간신히 버티고 있었지만 내 회사가 망하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진 않았기 때문에 파산·면책·회생과 같은 너무나도 생소했던 얘기들이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하지만 그때 변호사의 한마디 말에 큰 위로를 받았다. “실패해도 괜찮으니 걱정하지 말고 최선을 다해서 사업하라고, 정말 망할 수밖에 없을 때가 되면 그때 와서 상담 받으라”는 한마디에 파산해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다.

후회가 남지 않을 만큼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기에 회사를 폐업할 수 있었고, 두려움을 떨쳐준 변호사를 믿고, 용기를 내 파산신청을 할 수 있었다. 파산을 신청하자 수십억에 달하는 채무변제 독촉은 곧바로 중단됐고, 운이 좋게도 파산 신청한지 4개월만에 면책을 받을 수 있었다.

“지금 행복”…평생을 바쳐 이루고 싶은 꿈을 찾아서

“저는 지금이 가장 행복합니다.”

나를 걱정해주는 분들을 만나서 항상 얘기하는 말이다. 그냥 인사치레가 아니라 현실에 만족하고 있고, 평생을 바쳐서 이루고 싶은 꿈을 찾고 있는 스스로가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지난 20년간의 사업목표는 ‘성공’이었다. 하지만 회사를 창업하고 20년이라는 시간동안 성공의 목적지는 점점 높아져만 갔고, 기대치가 높아진 만큼 더 노력해야만 했기에 더 많은 소소한 행복들을 희생하며 살았다.

처음에 사업을 시작한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함께하는 사람들과 ‘행복’하게 살기위해서 였다. 하지만 실패하지 않고 계속 버텨왔다면 ‘불행’하게 세상을 등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섬뜩해 진다.

지금은 번듯한 회사도, 편안한 집도, 좋은 차도 없지만 책임감에 등 떠밀리는 삶이 아닌 ‘평생을 바쳐서 이루고 싶은 꿈을 위해’ 산다는 희망으로 하루하루가 설렌다. 나와 비슷한 상황으로 괴로워 하는 분들도 용기내고, 꼭 행복해지시길 바란다.

“희망이 있어서 버티는게 아니라 버티고 있어서 희망이 있는거다.”(홍콩 민주주의를 갈망하는 대학생)

“인생에는 두번의 기회가 찾아온다고 한다. 어떤 선택을 할 기회와 그 어떤 선택을 버릴 수 있는 기회. 기존의 삶을 뒤로하고 다른 삶을 취할 땐, 언제나 모험과 희생이 따르는 법이다. 중요한 것은, 당신이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는 절호의 타이밍이 ‘지금 이 순간’일지도 모른다는 사실. 행복하지 않다면 지금 행복하라.”(아인잠) [제공=중기이코노미 객원 김남주 대표변호사(법무법인 도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