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승용 박사(중국 문학, 한국외대 중국연구소 연구원)

‘봉건적(封建的)’이라고 할 때, 봉(封)은 ‘주다’의 의미이고 건(建)은 ‘세우다’의 의미로서 ‘봉토건국(封土建國)’ 즉 땅을 주어 각각 나라를 세우게 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적(的)’이란 목적(目的)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본래는 ‘과녁’이라는 뜻이지만, 여기에서는 ‘그러한 성격을 띤다’라는 의미의 접미사다.

일반적으로 봉건제도는 중세유럽의 사회제도를 일컫는다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 봉건제도를 처음 실시한 나라는 기원전 11세기부터 기원전 3세기까지 있었던 고대 중국의 주(周)나라다. 주나라에서는 왕이 여러 제후(諸侯)에게 토지를 나눠 주어 제후국을 세우고, 제후는 왕실을 종가(宗家)로 받들며 세금과 군사적인 부역 등을 부담하는 대신에 자신이 다스리는 지역에서 전면적인 권력을 행사했다.

중국과 유럽의 봉건제도에서 다른 점이라면, 왕과 제후의 관계가 유럽의 경우에는 땅을 매개로 하는 계약관계로 이뤄진 것이라면 중국의 경우에는 대체로 왕의 친척과 건국공신들이 제후로 임명된다는 점이다. 즉, 중국의 봉건제도에서는 왕과 제후가 혈연으로 주종관계가 이뤄지는데, 이러한 구조는 오늘날 우리나라의 많은 재벌기업에서 회장과 사장의 관계가 가족관계로 이뤄진 것과도 유사하다.

‘봄날이 참으로 좋으니 바로 공부할 때이다’라는 내용이다. 오늘날 중국 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포스터인데, 조셒 니덤은 옛날 중국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관리가 되기 위한 공부에 몰두한 것이 오히려 중국의 발전에 걸림돌이 됐다고 했다.<사진제공=문승용 박사>

그런데 유럽에서는 세습적인 봉건제도가 중세까지 이어지지만, 중국에서는 B.C. 221년에 주나라가 망하고 시황제(始皇帝)의 진(秦)나라가 들어서면서 일종의 중앙집권제인 군현제(郡縣制)가 채택된 이래 모든 권력은 황제가 장악해 지방에도 황제가 임명하는 관리들이 파견되어 권력을 수행하게 된다. 이들 관리는 자신의 자리를 아들에게 물려줄 수 있는 세습제가 아니므로 언제든 황제에 의해서 교체될 수 있었다.

이와 같은 중국의 관료제도는 수(隋)나라 때 과거제도를 통해서 관료를 뽑기 시작한 이래 마지막 왕조국가인 청(淸)나라 때까지 이어진다. 실제로 봉건제도가 중국에서 처음으로 실시된 것이기는 하지만, 중국왕조의 대부분에서는 봉건제가 아니라 관료제가 시행됐다.

그러므로 조셒 니덤이 중국의 관료제도가 ‘봉건적(feudal)’이라고 말한 것은 실제로 역사 사실에는 맞지 않는 표현이다. 하지만 유럽이 세습적인 봉건제로부터 산업자본주의 단계로 나아간 것에 비해 중국은 ‘세습적인 관료제’가 중국 과학기술의 발전을 막았다고 본 것이다.

조셒 니덤이 중국의 관료제를 세습적이라고 했던 이유는 옛날 중국에서 대체로 관리 집안의 자손이라야 과거시험 공부를 해 시험에 합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유럽 봉건제후의 아들들은 특별히 공부하지 않더라도 아버지의 자리를 이어받을 수 있었던 것에 비해, 중국에서는 이미 과거시험에 합격해 관리가 된 아버지가 자신과 집안의 권력을 이어받게 하기 위해서는 그의 아들에게 어릴 때부터 사서삼경(四書三經)과 같은 유가의 경전을 달달 외울 정도로 공부를 시켜야만 했다. 그래야 관리의 아들 역시 과거시험에 합격해 관리가 될 수 있었으니, 중국의 관료제를 ‘세습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사정은 우리나라도 다르지 않았다.

중국 하남성(河南省) 허창(許昌)의 춘추루(春秋樓)에 있는 관우(關羽)의 상이다. 이때는 관우가 조조(曹操)에게 포로로 잡혔을 때인데도, 관우가 춘추(春秋)를 즐겨 읽었다고 해서 이곳을 춘추루(春秋樓)라고 부른다. 무신인 관우가 중국인들에게 사랑받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늘 공부하는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이기도 하다.<사진제공=문승용 박사>

그 뿐만 아니라 사농공상(士農工商)이라 해, 중국은 사회계층 구도에서 공부를 열심히 해 관리에 나아갈 준비를 하는 선비들을 가장 위의 단계에 두고, 이어서 농민을 뒀다. 과학기술을 발전시켰어야 할 기술자나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상인들을 천시하는 분위기가 매우 강했다. 그렇다 보니 과학기술을 연구·개발해 산업을 발전시키고 돈을 벌어 상업자본주의를 발전시키지 못했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많은 학생이 자신의 전공과 상관없이 공무원시험에 매진하는 경우를 흔히 본다. 나라가 망하지 않는 한 또박또박 월급을 챙겨주는 안정된 직장 가운데 공무원만 한 것이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긴 뛰어난 자질을 가진 이들이 안정된 직업을 얻기 위한 시험공부에 힘쓰는 것이 무슨 잘못인가 싶기도 하겠지만, 오늘날과 같이 급변하는 사회에서 그때그때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아이템이나 과학기술을 개발하지 않으면 더 이상 발전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공자는 논어 ‘위정(爲政)’ 편에서 “공부를 하더라도 생각하지 않으면 얻는 것이 없다(學而不思則罔)”라고 했다. 이것은 당시 선비들에게 무엇을 위해서 공부하는지를 염두에 두고 공부해야 한다는 것을 일깨운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여기에다가 하나 더 보태야 할 것은 젊은이들이 오로지 안정된 직장을 구하기 위한 공부에만 몰두할 것이 아니라, 좀 더 도전적이며 창의적인 일에 힘써야만 자신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미래도 보장받을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중기이코노미 객원=한국외대 중국연구소 문승용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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