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구 253명, 비례대표 47명. 총 300개의 배지를 쟁취하기 위한 21대 국회의원 선거판이 열렸다. 나라의 기강이 바로 설 수 있도록 법을 만들고 바꾸기도 하는 국회의원이다. 국민을 대리해 대통령과 행정부·사법부의 월권을 견제함으로써 헌법질서를 수호하는 헌법기관이다. 아울러 국민의 직접투표란 정당성을 갖춰, 이들은 대의민주주의를 구현해야 할 의무와 함께 권한도 부여받았다. 4·15 총선에 나선 후보자 모두가 국가의 미래를 얘기하고, 국민의 삶을 개선하겠다면서 입에 거품을 무는 이유다.

주장과 구호에 목소리는 큰데, 진정성이라곤 가뭄에 콩 난 듯하다. 인의와 도덕까지는 바라지도 않지만, 정치 도의·신의조차 완전히 실종된 선거판이다. 여야 할 것 없이 최소한의 염치도 수치심마저 내팽개쳤다. 당연히 온갖 꼼수에 변명이 난무해, 진흙탕에서 개싸움하는 모양새다. 제정신으론 못 볼 난장판이다. 상대적 청정구역인 정의당을 포함 소수 진보정당이 생존 자체를 위해 분투하는 모습이 안쓰럽다.

제21대 4·15국회 의원선거를 13일 앞둔 날이자 공식 선거운동 시작일인 지난 2일, 선거관리위원회 직원들이 서울 종로구 후보자들의 선거벽보를 붙이고 있다.<사진=뉴시스>

진보를 자처했던 더불어민주당. 괴물과 싸우다 괴물이 된다더니, 정말 괴물이 됐다. 미래한국당을 향해 창고·종이·위장·가짜 정당이라고 온갖 비난을 퍼붓더니, 그대로 따라했다. 미래통합당의 ‘의원 꿔주기’를 두고 ‘국민의 투표권을 침해하는 행위’, ‘정당정치의 근간을 흔드는 꼼수’라고 맹공하더니, 똑같은 길을 갔다. 미래통합당과 달리 소수야당 몇과 시민사회를 아울렀다고 포장했지만, 더불어시민당은 민주당의 꼭두각시다.

게다가 민주당 일부 분파도 떨어져 나왔다. 문재인 대통령을 지키겠다는 명분으로 ‘친위’ 위성정당 열린민주당을 만들었다. 그러고 나서 더불어시민당과 열린민주당은 각각 자신의 아버지가 민주당이라며 ‘적자·서자’ 논쟁까지 벌인다. 미래통합당을 향해 ‘정치를 장난으로 만들었다’고 비난한 민주당 이해찬 대표. 제 얼굴에 침 뱉은 격이 됐다.

강도가 총칼을 들고 위협하는데, 맨주먹으로 맞설 수 없다는 논리비약, 이제 신물난다. 민주당이 아니면 누구도 강도에 맞서지 않을 것이란 교만과 독선. 무능한 민주당, 무책임한 자신감으로 세월만 보내면서 지금의 선거지형이 만들어졌다. 민주당 아니어도 정의당·민중당·녹색당, 시민사회 등 헌정질서 파괴 집단에 대항할 정치세력은 무수하다. 촛불혁명의 계승자를 자임하는 거대 여당인 민주당. 진보세력을 신뢰하지 못해 하나로 모으지 못했다면, 그에 대한 반성과 함께 성찰을 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 민주당과 그 아류인 더불어시민당, 열린민주당 어느 곳에서도 참회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이미 벌어진 선거판, 완전히 뒤집기는 불가능하다. 사회통념과 합리를 존중하는 시민사회가 할 수 있는 일 역시 제한적이다. 그렇다고 정치에 대한 불신과 냉소를 조장하는 평론가 역할에 머물러선, 상황이 더 악화될 뿐이다. 무엇보다 양비론으로 포장해 선후와 경중, 원인과 결과를 뒤섞으려는 극우·보수 언론의 행패를 막는 게 급선무다.

이런 이유로 최근 종교·시민사회·언론 등 30개 시민사회단체가 모여 가짜뉴스 검증 플랫폼(개미체커)을 만든다는 소식은 고무적이다. 시민 또는 네티즌을 의미하는 수천만 개미의 집단지성을 활용한다면, 뉴스의 진위 여부를 확인해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다. 아울러 짧은 선거기간임에도 최악의 후보를 내치고, 그나마 차악을 선택할 수 있는 기준도 세울 수도 있다.  

경제정의실천연합이 제공하는 ‘정당선택도우미’도 후보자 선택에 도움을 줄 수 있다. 정당선택도우미에 접속하면, 초선이상 의원들의 입법성향(친재벌·부동산거품조장·반민생 등)은 물론 부동산·자산, 자질(범죄·비리·막말 등) 등을 확인할 수 있다. 또 (사)4·16세월호참사 가족협의회와 4월16일의약속국민연대가, 이번 총선에서 낙선시켜야 할 후보자 17인을 선정하고 낙선운동에 나선다. 이들 17인 낙선대상자는 세월호 침몰에 원인을 제공했거나 승객의 구조·구난 방기에 책임이 있는 인물, 세월호 참사의 수사와 조사를 방해하고 진실을 은폐하거나 진실을 왜곡하거나 피해자를 모욕·비방한 인사들이다.

조금만 더 눈과 귀를 동원해 관심을 갖고 찾아보자. 지금도 여전히 광주민주화운동을 빨갱이가 주도한 폭동이라고 주장하는 국회의원이 있다.  4·3항쟁을 공산주의 세력이 주도한 무장반란이라고 주장하는 후보자도 있다. 헌법을 유린했던 박근혜 전 대통령 사진을 내걸고, “살아만 계십시오”라는 문구로 선거운동을 하는 정당이 있다. 시간이 없어 찾지 못하고 기억력에 한계가 있어 그렇지, 이들보다 수백 수천배 심각한 사례는 널렸다.

개미체커 방식으로 하나하나 찾아서 주변에 알리고 설득하는 방법부터 시작하자. 선택은 유권자의 몫이라는 소극적 태도보다는, 함께 찾아 토론해 결정하겠다는 적극적 자세가 필요한 시점이다. 아무리 그래도, 위성정당은 정말 이해할 수 없다. 중기이코노미 논설위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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