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자동차산업에 만연한 외상결제와, 소수의 완성차기업에 의존하고 있는 자동차 부품기업들의 거래구조가 혁신역량을 떨어뜨린다. 따라서 혁신역량을 높이기 위해서는 납품대금 결제방식을 개선하고, 부품기업이 매출처를 다변화할 수 있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다.

자동차산업 연구개발투자 집중도 부진…혁신 떨어뜨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원청-하청 간 거래관행이 혁신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는 “기업이 혁신이라는 산출(output)을 낳기 위해서는 연구개발투자라는 투입(input)이 필요하지만, 한국 대표산업인 자동차산업에서 주요국 중 기업의 연구개발투자 집중도, 즉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투자가 부진한 편”이라고 분석했다.

EU집행위원회가 2018년 발표한 ‘전 세계 연구개발 투자 상위 2500 기업’ 중 자동차산업 부분 기업들을 살펴보면, 한국은 연구개발투자액이 약 5억유로로 6위다. 하지만 이를 매출액으로 나눈 연구개발투자 집중도를 보면, 한국이 약 2.8%로 자동차산업 주요국 중 최하위다. 대만(4.1%), 일본(3.4%), 말레이시아(2.9%) 등 아시아 국가들보다도 낮은 14위를 차지했다.

보고서는 연구개발투자 집중도가 낮은 것은 세계시장에서 한국기업들의 혁신경쟁력을 떨어뜨리고, 그 결과로 혁신성장을 어렵게 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특히 ‘친환경·스마트카’의 등장으로 변화를 앞둔 한국의 자동차산업이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더 활발한 연구개발투자가 필요하다.

시장거래는 과소투자…관계계약·수직통합 투자 여력 ↑

보고서는 자동차산업 내 원-하청 간 거래관계를 크게 ▲부품기업-완성차기업 간 일회성 거래(시장거래) ▲부품기업-완성차기업 간 거래관계가 반복적일 경우(관계계약) ▲수직통합으로 구분해 투자 유인을 분석했다.

◇부품기업-완성차기업 간 일회성 거래=시장거래에서는 부품기업이 특정 완성차기업에 납품할 부품의 가치를 높이기 위한 관계특수적 투자를 꺼리게 되는 과소투자 문제가 발생한다. 과소투자 문제의 심각성은 ▲특정 완성차기업을 위한 투자를 다른 완성차기업을 위해 전용하는 것이 수월할수록 완화되고 ▲부품기업의 투자가 해당 완성차 기업에 미치는 영향이 클수록 심해진다.

◇부품기업-완성차기업 간 거래관계가 반복적일 경우=관계계약의 경우, 이같은 과소투자 문제를 완화할 수 있다. 반복거래를 통해 과소투자 문제가 해결될 여지는 ▲부품기업이 특정 완성차기업을 위해 실시한 투자를 다른 완성차기업에 전용하는 것이 더 수월할수록 ▲부품기업의 투자가 해당 완성차기업의 성과에 미치는 영향이 클수록 ▲투자비용이 작을수록 커진다.

◇수직통합=수직통합도 과소투자 문제를 완화시킨다. 즉 다른 조건이 동일할 때 부품기업과 완성차기업이 공통으로 결합이윤을 극대화하는 경우, 이들이 분리돼 각자의 이윤을 극대화시키는 경우보다 과소투자 문제가 덜 심각하다. 수직통합으로 과소투자 문제가 해결될 여지는 특정 완성차기업을 위한 투자를 다른 완성차기업을 위해 전용하는 것이 어려울수록 커진다.

독일·미국 차산업, ‘관계계약’ 중심으로 거래형태 변화

독일은 자동차 부품산업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편이고, 경영성과와 혁신성과가 가장 뛰어나며, 연구개발투자도 가장 활발하다. 또한 완성차기업보다 부품기업이 혁신을 주도하는 경우가 더 많다.

독일 자동차 부품산업의 뛰어난 경영성과와 혁신활동 배경으로, 역사적 특수성에 따라 부품기업-완성차 기업 간 관계에서 부품기업이 높은 협상력을 가지는 점과 부품기업-완성차기업 간 높은 신뢰수준을 꼽을 수 있다.

미국 또한 세계 100대 자동차 부품기업을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는 강국이다. 미국 자동차산업의 발전과정은 앞서 언급한 세 가지 거래형태를 모두 보여주는데, 특히 ‘시장거래 및 수직통합’에서 ‘관계계약’으로 변해왔다.

이에 따라 완성차기업-부품기업 간 정보교류를 통한 혁신의 필요가 높아졌고, 그 결과 관계계약이 보편화됐다.

국내 자동차산업에서 널리 사용되는 ‘외상결제’는 하청 부품기업의 혁신성과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래픽=채민선 기자>   ©중기이코노미

또, 자동차 부품산업이 소수의 국내 완성차기업에 의존하고 있는 구조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부품기업의 매출이 특정 완성차기업이나 특정 지역에 집중돼 있을수록 해당 부품기업은 완성차기업과의 관계에서 협상력이 낮아진다. 이러한 상황에서 부품기업은 혁신을 위한 투자에 대해 적절한 보상을 받지 못할 것을 우려할 개연성이 높고, 따라서 그러한 투자를 꺼릴 수 있다.

그러나 이를 개선하기 위해 완성차기업-부품기업 간 거래에 정부가 직접 개입하게 되면, 오히려 자동차산업 전체의 혁신성과를 떨어뜨리고 한국 완성차의 경쟁력을 약화시킬 우려가 있다. 그보다는 자동차 부품기업이 매출처를 다변화할 수 있도록 유도하거나, 이를 막는 장애요인을 제거하는 것이 더 효율적인 정책일 수 있다고 보고서는 봤다.

보고서는 납품대금 결제방식처럼 원-하청 간 신뢰를 결정하는 요인들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각각의 요인이 하청기업의 혁신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다면, 원-하청 간 신뢰를 증진시킬 적절한 방안을 설계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를 통해 완성차기업-부품기업 간 거래관계가 신뢰에 기반한 장기적인 거래, 즉 관계계약으로 자리잡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다. 중기이코노미 채민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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