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국회, 식물국회 등 경멸과 조롱의 대상이 됐던 20대 국회 지형에 환멸을 느낀 국민의 심판이 있었다. 개헌 빼곤 뭐든지 할 수 있다는 180석을 집권여당에게 몰아줬다. 더불어민주당이 내건 4·15 총선 공약을 지킨다는 전제하에, 책임정치를 통해 서민·대중의 삶을 확 바꿀 수 있는 국회를 만들었다. 당리당략에만 절은 대다수 국회의원이 아닌 국민의 힘으로. 

21대 국회의원 임기가 시작도 되지 않았는데, 집권여당의 책임정치는 벌써 길을 잃었다. 야당과의 협치를 핑계 삼아 180석이 가진 무게를 망각했고, 집권여당이 감당해야 할 짐조차 내팽개쳤다. 20대 국회 막판까지도 재벌대기업에게 이별 선물을 주고야말겠다는 여야 간의 합의를 보면서 든 생각이다. 

국회는 지난 29일 본회의를 통해 기간산업안정기금 설치·운영을 위한 산업은행법 일부 개정안, KT 맞춤형 입법인 인터넷전문은행법 일부 개정안, 공정위 조사과정에서 대기업의 방어권을 보장하는 내용의 공정거래법 일부 개정안을 의결했다. 재벌총수 일가의 사익이 아닌 공익을 고려한다면, 이들 3개 법안은 백해무익한 악법이다. 국민의 준엄한 심판을 받은 20대 국회가 아닌, 민의에 따라 새로 구성될 21대 국회에서 보다 깊은 논의와 함께 처리했어야 할 법안들이다. 

40조원의 국민 혈세가 소요되는 산업은행법 개정안은 문재인 대통령의 뜻과도 정면으로 배치된다. 기간산업안정기금 지원의 전제조건으로 “고용총량 유지와 자구노력, 이익공유 등의 장치를 마련하겠다”는 대통령이 약속. 불과 1주일 만에 거짓말이 됐다. 신업은행법안에 따르면 ‘일정 수준으로 고용을 유지하기 위해 근로자와 경영자가 함께 노력’만 하면, 대통령이 공언한 고용총량 유지의무를 완수한 꼴이 된다. 노사가 합의하면 상당한 수준의 정리해고도 가능하다는 말이다. 

지원대상 기업에 대한 경영 감독·참여 권리 등 이익공유 장치 마련을 강제할 수단도 사실상 없다. 오히려 경영정상화 이후 정부 출자분에 대한 총수일가 등 기존 주주에게 우선 매수권까지 보장했다. 기간산업안정기금 40조원을 투입해 정상화된 기업의 이익을 총수일가가 독점할 수 있도록 담보까지 제공했다. 코로나19 재난을 기회로 기업지배권을 강화하겠다는 총수일가의 탐욕을 채워줄 제도를 향후 5년간 보장한 셈이다. 20대 국회 임기 종료 한 달 전, 집권여당과 극우·보수 야당이 타협했다는 이유로.

29일 본회의에서 민주당과 극우·보수 야당은 야합을 통해 인터넷전문은행특례법 개정안도 통과시켰다. 지난 3월 본회의에서 여론의 반대 등을 이유로 국회의원 109명이 반대 또는 기권해 부결됐던 법안이다. 사실상 표지만 바꾼 동일한 법안을 재상정한 형식도 문제지만, 법안의 내용은 더 가관이다. 이 법안의 핵심은 공정거래법 위반 범죄자도 은행의 대주주가 될 수 있도록 결격사유를 완화하는 것이어서, K뱅크 지배주주인 KT 특례법이라 한다. KT가 20대 국회에 제출한 숙제라는 이유만으로, 20대 국회가 매듭을 짓겠다는 심사가 아니라면 전혀 납득이 안되는 법이다.  

국회에서 2년 동안 잠자고 있던 공정거래법 일부 개정안도 여야 간 타협을 통해 의결했다. 이로써 문재인 정부의 국정과제인 ‘공정경제’ 조성을 위해 공정위가 국회에 제출한 공정거래법 전면 개정안은 폐기 수순을 밟는다. 전속 전속고발권제 폐지, 일감 몰아주기 규제 강화, 지주회사 보유주식 한도 확대 등의 공정거래법 전면 개정안의 핵심 내용은 법안심사조차 없었다. 반면 공정위 조사과정에서 대기업의 방어권을 강화해, 공정거래법 위반의 범죄에서 빠져나갈 여지를 키웠다. 대·중소기업 모두에게 공정한 시장을 만들겠다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개악안으로 둔갑했다. 여야 합치를 명분으로 20대 국회 막바지에.

6월1일이면 국회 재적인원 과반(150명)을 훨씬 상회하는 180명의 국회의원을 가질 집권여당에게 묻는다. 21대 국회 개원을 한 달여를 앞둔 시점에 산업은행법·인터넷전문은행법·공정거래법 개정안 통과가 절실했는지. 산업은행법을 당장 개정하지 않아도 기간산업이 겪는 경영난을 지원할 방법은 많다. 산업은행법 개정안 통과 이전, 정부도 대항항공과 아시아나항공에 약 3조원 지원방안을 밝혔다. 행정명령 등을 통해 먼저 집행절차를 진행하고. 동시에 입법을 보완하는 방법도 있다. 재벌기업 총수일가에게는 특혜를 부여하고, 국민 모두에게 부담만을 강요하는 입법은 20대 국회가 마지막이어야 한다.  

인터넷전문은행법·공정거래법 개정안 역시 마찬가지다. 이미 부결된 법안을 재상정까지 하면서 강행한 이유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인터넷전문은행법 개정 이전 K뱅크는 약 6000억원 증자를 결정했기에 급한 불은 이미 끈 상태였다. 한 달여 남은 21대 국회 개원을 기다리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공정거래법 개정안 역시 개악이란 오명까지 들어가면서, 급하게 처리해 집권여당이 비난을 자초한 이유를 도무지 알 수 없다. 

그래서 더 걱정이다. 집권여당이 개혁을 명분으로 원칙을 분명히 세우지 못한다면, 여야 간의 야합만이 난무할 것이란 우려에서다. 협치와 타협이 정당성을 갖기 위해서는 사익보다는 공익을 키우고, 사회적 강자보다는 약자에 대한 배려가 전제돼야한다. 그런데 20대 국회 막바지에 여야 합의를 통해 처리한 산업은행법·인터넷전문은행법·공정거래법 개정안에는 야합의 흔적만이 보일 뿐, 정당한 의미의 협치와 타협은 찾아볼 수 없다. 정말 고민거리다. 국민은 집권여당에게 180석의 권능을 줬는데, 공사익을 구별 못할 것 같아서. 공공의 이름으로 일부 계층의 특권과 기득권을 제한하는데 주저할 것 같아서. 중기이코노미 논설위원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