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경영권 승계, 노조탄압 문제 등과 관련해 지난 6일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 이는 삼성준법감시위원회가 지난 3월11일 이 부회장에게 대국민 사과를 권고한데 따른 조치다. 

삼성이 준법감시위를 설치한 직접적인 이유가,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국정농단 파기환송심 재판부의 권고에 따른 것임을 감안하면, 이번 사과가 형량을 낮추기 위한 꼼수라는 비난은 당연하다고 할 수도 있다. 파기환송심 재판부 또한 환골탈태급 반성을 형량에 반영하겠다는 취지를 직접 밝힌바 있어, 노골적인 형량 거래가 아니냐는 국민들의 따가운 눈총도 적지 않다. 이 부회장의 사과문 발표를 놓고, 여야 정치권과 대다수 언론들은 칭송 일색이지만, 진정성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재판부와 삼성준법감시위의 권고에 따른 억지 사과라서 그런 것이 아니다. 떠밀리듯 한 사과이지만, 거기에 진정성을 담지 말라는 법도 없다. 그러나 사과의 내용을 살펴보면, 현재에 대한 반성이 전혀 없다. 무엇을 잘못했는지도 모른 채, 앞으로 잘하겠다는 식이다. 해고노동자 김용희 씨 등 많은 피해자와 피해단체에 대한 어떤 언급이나 걸맞는 해결방안도 제시하지 않고, 카메라 앞에서 하는 일방적인 사과였다. 눈속임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 사과는 카메라 앞보다는 피해자에게 먼저 하는 게 도리다. 미래에 대한 약속보다는 현재 문제에 대한 해결의지가 우선돼야한다. 

국내에선 독보적인 글로벌기업 삼성. 그러나 자랑할 것보다는 부끄러워해야 할 일들이 더 많다. 박근혜 정권의 국정농단 과정에서 삼성은 스스로 피해자라 주장했지만, 돈을 주고 온갖 부정한 혜택을 제공받은 공범이다.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간의 불법 또는 부당한 합병,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사기 사건 또한 국정농단 정권의 비호와 묵인 아래 자행한 범죄행위다. 이재용 부회장은 사과문에서 경영권을 자녀에게 물려주지 않겠다고 공언했지만, 이 약속이 자신이 행한 불법 또는 편법 승계의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앞으로 법을 어기거나 윤리적으로 지탄받는 행위를 하지 않겠다는 약속에 진정성을 담으려면, 지금까지 불법 또는 편법 승계 과정에 대해 책임지는 자세가 먼저여야 한다. 

앞으로 노동3권을 보장하겠다는 약속 또한 마찬가지다. 삼성이 국내를 대표하는 기업임은 틀림없지만, 무노조 원칙은 고루하기 짝이 없는 경영철학이었다. 3대를 이어온 무노조 원칙을 포기하는 것은 반갑지만, 삼성이 지켜온 고루한 경영원칙 때문에 많은 노동자들이 해고되고 감금당하는 피해를 입었다. 서울 강남역 앞 25m 높이 철탑에서 330일 넘게 농성중인 해고노동자 김용희 씨는 삼성 무노조 경영이 만들어낸 피해자다. 그를 철탑에서 내려올수 있게 하지 않으면서, 무노조 경영을 포기하겠다는 약속은 사탕발림이나 다를 바 없다. 무노조 경영의 포기는 변한 시대상의 반영이라 할 수 있지만, 그 자체가 노동존중 경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경영을 대물림하지 않겠다, 무노조 경영을 포기하겠다며, 국민들 앞에서 중요한 약속을 했다. 지금까지 삼성에서 볼 수 없었던 모습이지만, 환골탈태라 평가하기엔 여전히 거리가 멀다. 이 부회장의 사과를 두고 더불어민주당 이인영 원내대표는 사법적 회피를 위한 눈속임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평가했지만, 많은 국민들의 생각은 다르다. 삼성그룹. 지금까지 경영철학은 너무 고루했고, 부당한 정권과 한통속이 돼 국정을 농단하면서 편법 또는 불법 승계를 계속했다. 

이번 이재용 부회장의 사과가 환골탈태의 시발점이 될지, 사법적 단죄를 피하기 위한 꼼수로 끝날지 판단은 아직 이르다. 기대하는 이도 있고, 이번 말고도 사과를 한 두번 했냐면서 냉소하는 이들도 많다. 분명한 사실은 무노조 경영, 국정농단 세력과 정경유착 그리고 불법 또는 편법으로 기업을 대물림하는 관행을 버리지 못한다면, 삼성의 미래는 없다는 점이다. 환골탈태, 국민의 요구 또한 그것이다. 이재용 부회장과 삼성그룹, 국민에게 버림받지 않도록 제대로 변하기를 당부한다. (중기이코노미=안호덕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