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도 같은 슬픔으로 고통 받고 있다고 생각하면 마음의 상처를 위로받지는 못하더라도 편안해질 수는 있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극작가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남긴 말이다.

우리는 누구나 삶에 주어진 크고 작은 시련 앞에 슬퍼하고 때론 고통 받는다. 각자 견뎌내야 할 그 수많은 사연이 담긴 무의식의 상처를 수면 위로 끌어내 시각화하고 응시함으로써 함께 나누고 작은 위로와 공감을 전달하는 작가가 있다.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의 마음속 방황하는 감정들을 자신만의 시각언어로 표현하는 작가, 윤예진을 만나보자.

Q. 자신의 작품 세계를 소개한다면?

저는 현대사회에서 빈번히 발생하는 불합리한 현상, 윤리의식의 부재 그로 인해 고통 받는 수많은 소외계층 등 모두가 삶의 현실에 지쳐 외면하고 있지만 누군가는 바로잡아야하는 집단의 부조리한 구조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어요. 이는 성장과정 중 제가 개인적으로 겪은 사건, 사고에 의한 트라우마에서 비롯된 사회에 대한 분노와 우울한 감정들을 표출하는 방법이기도 해요.

‘또 다시 겨울’, 116.8×80.3 cm, oil on canvas, 2018

우리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항시 타인에게 노출되어 살아가며 커다란 집단을 이루고 있죠. 모두가 평등을 노래하는 집단 아래 보이지 않는 곳에서 행해지는 무자비한 폭력들은 개개인을 철저히 무시하고 소외시키는 현상을 발생하게 만든다고 생각해요. 저는 이러한 구조 아래 타인이 요구하는 모습만을 추구하며 자아를 상실하고 살아가는 사람들, ‘이방인들’의 내면에 존재하는 우울과 불안, 그리고 그 안에 존재하는 무의식 속 욕망을 일깨우는 내용을 캔버스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Q. 작품을 통해 ‘무의식 속 죽음의 욕망’을 다룬다고 들었는데, 그와 같은 주제를 다루는 게 된 계기가 있는가?

제가 작품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죽음이란 물리적인 형태의 죽음보다는 정신적인 해방처럼 자기 자신을 억압하고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무의식 속에 존재하는 내면의 우울한 감정이나 트라우마를 승화하는 형태에 가까워요. 저는 타인의 폭력에 의한 죽음을 경험한 적이 있는데, 처음 그런 일을 겪게 되었을 때는 철저히 제 자신을 죽이고자 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비슷한 일을 다시금 겪게 되었을 때는 더 이상 스스로를 탓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겪은 이 부조리함에 대한 분노와 충동이 드러나게 되었죠.

시각을 달리하게 되니 이제는 나와 비슷한 일을 겪은 사람들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함께 이 고통을 덜어낼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에 몰두하게 됐어요. 자신을 죽이고 있는 과거의 저와 같은 사람들이 더 이상 괴로워하지 않도록, 일종의 사명감을 가지고 작업에 임하고 있죠.

Q. 작품 속 인간은 사슴의 두상으로 치환되어 등장하는데, 이유가 있는지?

우선 작품에 등장하는 사람은 제 자신의 모습이기도 하고 우리 모두를 대변하는 역할을 부여받은 존재이기도 해요. 개개인의 특성보다는 집단이 요구하는 여리고 유약한 성질의, 그러나 아름다운 사슴의 탈을 뒤집어쓰고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담아내고 있죠. 이건 외적인 인격을 표방하는 페르소나이며 욕망을 억압하는 장치로 작용하고 있어요.

하지만 죽은 사슴의 생동감 넘치는 투명한 눈동자는 캔버스 너머의 현실을 또렷이 응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자아를 파괴하는 현실에 대한 무언의 반항이자 외침이라는 점을 드러내고자 했어요.

‘온실 속 공상’, 116.8×80.3 cm, oil on canvas, 2018

Q. 자신의 작품 세계가 잘 담긴 작품을 추천해 준다면?

최근에 작업한 ‘비상’이라는 작품을 추천해드리고 싶네요. 작품 속에는 춤을 추듯 날개를 곧게 뻗은 사람이 등장하는데 제 작품에 사슴과 마찬가지로 자주 등장하는 동물이 바로 ‘새’예요. 사슴은 타인이 나에게 바라는 수동적이고 온순한 탈의 역할을 지니고 있다면, 새는 제가 선망하는 대상이에요.

저는 평소에는 괜찮다가도 다리가 불편할 때가 종종 있어서 가끔은 다리 통증 때문에 혼자 침대에서 일어나기도 고통스러워 비명을 지르기도 해요. 신체의 기능을 상실한다는 것은 그 무엇보다도 사람을 무기력해지게 만들더라고요. 분명한 지향점을 가지고 도약하는 새를 보면 한없이 비참하다가도 또 그 모습이 점이 될 때까지 가만히 서서 눈으로 좇게 돼요. 이를 작품 속 인물과 결합해 자신을 구속하고 있는 사슴의 탈을 벗어던지고 자유를 표방하는 이상적이고 아름다운 모습을 담아내고 싶었어요.

Q. 감상자는 윤예진의 작품을 어떻게 느끼길 원하는가?

공감해주셨으면 좋겠어요. 불편해 해주셨으면 더욱 좋겠고요. 가면을 쓰고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철저히 외면하고 있는 내면의 우울하고 불편한 감정들을 제 작품을 통해 들추어냄으로써 더 이상 모두가 자신의 아픔을 속이지 않고 살아갔으면 해요. 그 다음 단계가 바로 함께 공감하고, 치유하고, 나아가는 거죠.

Q. 현재 작가로서의 가장 큰 고민은 무엇인가?

아무래도 외롭다는 점이겠죠. 재정적인 문제도 있고 건강의 문제도 있지만 이제 대학원까지 졸업하고 나니까 새벽까지 같이 작업을 하던 친구들이 대부분 타지로 흩어지고 저는 집안에 박혀 365일 캔버스만 쳐다보고 있는 하루하루가 정말 많이 외롭고 지치더라고요. 같이 시작한 청년작가들도 비슷한 이유로 놓는 모습을 보면 배로 와닿게 되고요. 하지만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이나 주변 동료 작가님들, 선생님들, 무엇보다 저를 위해 희생하는 가족들을 보며 마음을 굳게 다잡고 있어요.

Q. 마지막으로 작가 윤예진의 꿈은 무엇인가?

보다 적극적이고 똑똑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잘못된 것을 바로잡을 줄 알고, 소외받은 사람들을 위해 목소리를 내고, 우리 사회의 저와 같은 모든 이방인들이 더 이상 방황하지 않도록. 굳이 평면작업이 아니더라도 그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작품을 할 수 있고, 제 작품을 좋아해주시는 분들이 있는 한 저 또한 포기하지 않고 계속 작업을 이어나가고 싶습니다. (중기이코노미 객원=김찬용 전시해설가)

<저작권자 ⓒ 중기이코노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