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채민선 기자>   ©중기이코노미

지난 2019년 LG화학이 이차전지에 관한 특허권영업비밀 침해를 이유로 SK이노베이션에 대해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CT)와 연방법원에 소를 제기하면서, 디스커버리(증거개시) 제도를 국내에 도입해야 한다는 논의가 있었다. LG화학이 같은 우리나라 기업을 상대로 미국에서 소송을 진행하는 이유 중 하나가 디스커버리 제도의 존재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미국 연방민사소송규칙에서 규정하고 있는 디스커버리 제도는 민사소송에 적용되는 증거조사절차로서, 소송당사자 또는 당사자가 될 자가 소송에 관계되는 정보를 획득하고 보전하기 위해 서로 각종 정보와 문서 등을 교환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공판 전에는 반대 측이 무슨 증거와 증인을 제출할 지 알 수 없으므로 이를 반박할 증거확보를 불가능하게 하는 습격공판을 막기 위한 장치로 기능을 한다.

◇미국 법원의 강력한 증거제출명령 제도=한국지식재산연구원이 27일 발표한 ‘한국형 디스커버리 제도 도입 논의에 대한 검토’ 보고서는, 분쟁과정에서 증거 등의 구조적 편재(치우침) 문제는 우리 사법제도가 갖고 있는 문제점 중 하나인데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수단으로 우리 실정에 맞는 한국형 디스커버리 제도 도입이 필요하다고 했다.

미국의 디스커버리 제도에서는 법원의 증거제출명령에 따르지 않는 경우, 법원이 다양한 조치를 취할 수 있다. ▲증거제출명령의 배경이 된 주장이 입증되거나, 유력한 것으로 간주 할 수 있고 ▲자료제출명령을 받은 당사자가 자료를 제출할 때까지 소송절차를 중단할 수 있으며 ▲자료제출명령을 따르지 않은 당사자가 해당 자료에 관한 주장을 할 수 없도록 제한하거나 ▲자료제출명령을 따르지 않는 당사자의 주장이나 항변을 전부 또는 일부 기각할 수도 있다.

심지어 ▲판결 하자가 있더라도 자료제출명령에 따르지 않은 당사자에게 불리하게 판결할 수도 있으며 ▲자료제출명령에 따르지 않은 행위를 법정모독행위로 보아 형사처벌도 할 수 있다.

소송이 점차 전문화, 복잡화되어 감에 따라 소송과정에서 증거 및 정보의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으며, 이는 재판을 통한 정의 실현을 방해하는 요인으로 지적돼 왔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의 디스커버리 제도 도입에 대해서도 원칙적으로 찬성하는 견해가 다수다.

◇법률환경에 맞는 한국형 디스커버리 필요=보고서는 디스커버리 제도를 도입할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소송절차 등에 있어서 미국과 상이한 법률환경을 고려해 우리 소송절차에 적합한 형태로 수정해서 받아들여야 할 것이라고 권고했다.

디스커버리 제도 도입 논의는 ▲기존 소송법 상의 제도개선 ▲소제기 전 증거조사 제도 도입 ▲특허법상 자료제출명령 제도 도입과 타 분야 확대 ▲행정절차에 반영 등 4가지 유형으로 나타나고 있다.

현 민사소송법의 문서제출명령 제도는 일부 디스커버리 제도와 유사한 것으로 볼 수 있지만, 문서제출명령에 불응할 경우 제재의 내용이 단지 문서의 기재에 대한 상대방의 주장을 진실한 것으로 인정할 수 있는 수준이고, 이를 실제로 적용하는 사례도 드물어 우리 재판실무에서의 증거개시제도는 유명무실하다는 평가다.

따라서 미국의 디스커버리 제도와 같이 자료제출명령에 따르지 않은 당사자에게 불리하게 전부 또는 일부의 판결을 할 수 있는 수준으로 자료제출명령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견해도 있다.

한국지식재산연구원 김시열 박사는 “우리나라에서 이루어지는 다양한 디스커버리 제도의 도입을 위한 시도는 각 방식에 따라 어느 정도 한계는 있지만, 단순히 해외의 특정제도를 도입하는데 얽매이지 않고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나름의 상황에 맞는 제도 마련에 대한 논의가 시도되고 있다는 점에 긍정적인 의의가 있다”고 평가했다. 중기이코노미 채민선 기자

<저작권자 ⓒ 중기이코노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