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승용 박사(중국 문학, 한국외대 중국연구소 연구원)

그동안 각 대학교에서는 인터넷을 이용한 원격강의가 이뤄졌고, 지난주 한 대기업에서는 원격으로 입사시험을 성공적으로 마쳤다고 해, 학교강의와 입사시험 등에서도 새로운 변화의 바람이 분다고까지 평가하기도 했다.

그런데 최근 몇몇 대학교에서, 원격으로 치러진 시험에서 학생들이 한곳에 모여 협의를 하며 시험을 치르는 등 부정행위가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 애초에 이러한 사태가 벌어질지 모른다는 우려 속에서도 원격시험이 성공적으로 치러지기를 조심스레 기대했었는데, 시험부정을 저지른 학생들에게 실망과 허탈감까지도 느끼는 것이 나만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한편 학생들 처지에서 생각해 보면, 학교에서 좋은 점수를 받아야 졸업을 한 다음 좋은 회사에 취직하고 그래야 배우자를 만나 가정을 꾸며 아들딸 낳고 행복하게 잘 살 수 있다는 생각에 갇혀서, 어떻게든 학점을 조금이라도 더 올려보고 싶었을 학생들의 간절한 심정에 안쓰럽기까지 하다.

학생이 시험에서 좋은 점수를 얻어야 한다는 강박감은, 예로부터 우리나라나 중국처럼 과거시험을 통해서 관리를 선발하던 전통에 기인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으니, 이번처럼 시험에서 부정행위를 저지른 것을 두고 학생들만 탓할 일이 아닌지도 모르겠다.

중국 서안(西安)의 곡강지(曲江池)이다. 당(唐)나라의 황실 정원인 부용원(芙蓉苑) 바로 옆에 있는 휴양지로 유명하다. 특히 당나라 때에는 과거시험 합격자들이 이곳에 와서 크게 한판 축하연을 벌였다고 한다. 신라 유학생 출신인 최치원도 시험에 합격한 다음 이곳 어디에선가 동료들과 기분 좋게 술자리를 가졌을 것이다.<사진=문승용 박사>

예로부터 중국에서 공식적인 관리 임용제도는 한(漢)나라 무제(武帝) 때 실시한 향거리선(鄕擧理選)과 삼국시대 조조(曹操)의 둘째 아들인 위(魏)나라 문제(文帝) 때부터 실시한 구품중정제(九品中正制)에서 비롯됐다고 할 수 있다.

향거리선은 어떤 사람이 부모에 효성스러운지와 청렴한지와 같은 유교적인 덕목에 기초해서 능력 있는 인재를 조정의 대신이나 지방 장관의 추천을 받아 선발하는 것이다. 구품중정제는 관리로 임용될 만한 인물을 9등급 즉, 상상(上上), 상중(上中), 상하(上下), 중상(中上), 중중(中中), 중하(中下), 하상(下上), 하중(下中), 하하(下下)로 나눠 등급을 매겨두었다가 나중에 자리가 나면 직위에 걸맞은 등급의 인물을 임명하는 제도다.

그런데 이것들은 모두 일종의 추천제로서 “상품 가운데에는 한미한 집안 출신이 없고, 하품 가운데에는 권력집안 출신이 없다(上品無寒門，下品無世族)”라고 하듯이, 상품이나 하품으로 추천하는 것 자체가 이미 문벌(門閥) 위주로 이뤄지게 돼 있었고, 나라의 정치가 문벌 귀족들의 손아귀에서 쥐락펴락하는 폐단에 빠지게 되는 한계를 가지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해 권력을 황제가 쥐고 중앙집권제를 강화할 목적으로 시행된 것이 과거제도다. 시험을 치러서 관리를 뽑는 제도는 수(隋)나라 때 시작돼 몽골의 지배시절인 원(元)나라 때를 제외하고는 청나라가 망할 때까지 줄곧 이어졌다. 우리나라에서도 고려 광종(光宗) 때 이후 조선이 망할 때까지 지속됐다. 그밖에 베트남에서 잠시 과거제도를 실시한 적이 있었던 것을 제외하면, 지배와 피지배계급이 타고나면서부터 정해지던 왕조시대에 시험을 통해서 관리를 뽑는다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제도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중세 봉건시기 아버지와 아들의 작위가 세습되는 귀족제도를 가지고 있었던 유럽에서는 시험을 치러서 실력에 따라 관리를 뽑아 임용하는 중국의 과거제도가 매우 이상적인 제도라며 놀라워했다.

그뿐만 아니라 근대 이전까지 중국은 대체로 세계경제 3분의 1의 생산력을 가지고 있었다고 할 만큼 다른 어느 나라에 비해서 풍요로웠다. 그것이 가능할 수 있었던 이유로 중국이 일찍부터 종이, 인쇄술, 나침반, 화약과 같은 고대 4대 발명품을 보유하고 있었고, 많은 나라에서 갖고 싶어서 열광했던 도자기, 비단, 차와 같은 상품의 교역을 통해서 막대한 경제적인 부를 이루었기 때문에 근대 이전 중국은 당시 다른 나라들을 압도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과거시험에 급제한 어사가 머리장식용으로 썼던 어사화(御史花)다. 가늘게 조갠 대나무 줄기에 푸른 물감으로 물들인 종이로 감싸고 여러 색깔의 꽃종이를 꿴 다음 한 끝을 모자의 뒤에 꽂았다. 과거 급제했다는 임명장인 교지(敎旨)를 임금에게 받은 다음 어사화를 머리에 꽂고 시가 행렬에 나섰다. 어사화를 쓴 합격자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출처=국립중앙박물관>

그런데 정작 중국과 우리나라는 근대 이전 최고의 과학기술을 보유하고 있었고, 남들이 보기에 그토록 이상적인 관리 임용제도를 두었으면서, 어째서 정작 근대국가로 발전하는 데에는 성공하지 못했던 것일까?

흔히 말하는 서구 유럽은 과학기술과 민주주의를 통해서 근대국가로 발전했다고 할 수 있는데, 중국에서는 많은 인재들이 과거시험에 몰두하느라 정작 창의적인 사고를 통해서 과학 발전을 이끌지 못하고, 오히려 기술자라고 해서 천시당하며 나라 발전에도 기여하지 못했다.

게다가 오랫동안 애써서 공부한 끝에 과거시험에 합격한 이들은 이제 지배세력으로 눌러앉아서 편안하게 기득권을 누리려고 했으며, 어느 왕조에서나 말기에는 과거시험의 부정부패가 만연해 그나마 능력 있는 이를 관리로 뽑으려고 했던 좋은 취지를 무색하게 만들었으니, 과거제도가 나라 발전에 오히려 걸림돌이 됐다고 하는 것이 지나친 것일까?

우리의 조선시대 선비나 관리들이 성리학(性理學)과 같은 높은 수준의 사상체계를 완성하는 등 높은 수준의 문명국가였다는 점에 오늘날 우리들이 자부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결국 그들 사상은 당시 지배와 피지배계급을 공고히 하는 이념으로 작용했던 것 이외에 정작 백성들이 한끼라도 배불리 먹고 살 수 있도록 하는 데에 어떤 역할을 했는지는 모르겠다.

오늘날 젊은 학생들이 졸업 후에 편안한 삶을 보장받으려는 안일한 생각에 아무렇지 않게 시험부정을 저지르는 것을 보자니까, 지난 왕조시대에 어떻게든 과거시험에 합격해 지배계급으로서 기득권을 누리려고 했던 선비들의 어두운 그림자를 다시 보는 것 같아 안타깝다. (중기이코노미 객원=한국외대 중국연구소 문승용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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