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년 전인 1987년 6월10일, 매일경제는 한국 기술수준이 10~15년 내 미국을 위협할 것이라는 기사를 보도했다. 동경발 AP연합을 인용한 이 기사는, 미국 존홉킨스 대학 동아시아연구소장인 조지·패커드의 말을 인용했다. “일본의 미국에 대한 기술적 우위 위협 등이 미·일간의 무역긴장을 고조시키고 있으며 한국 등도 향후 10~15년 이내에 일본 뒤를 잇는 위협적인 기술대국이 될 것”이라는 것이다.

이 전문가의 예상대로라면, 1997~2007년이면 한국은 최소한 일본 뒤를 잇는 위협적인 기술대국이 됐어야 한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1997년 6월10일 같은 신문을 확인해보니, 기술대국은 고사하고 참담한 현실을 어렵지 않게 감지할 수 있는 기사로 도배되다시피 했다.

기사들 중 대우경제연구소는 ‘우리나라 수출상품이 선진국 시장에서 경쟁력을 잃어 감소한 수출액은 연평균 124억7000달러가 될 것’으로 추정했다. 지금 기준으로 계산하면 14조원에 이른다. 최근 정부가 모든 국민에게 지급한 긴급재난지원금 예산과 비슷한 수준이다. 당시 물가를 감안하면 국가경제에 미칠 여파는 어렵지 않게 감지할 수 있다.

세부 내용을 더 살펴보면, ‘1989년부터 1996년까지 최근 8년간 선진국 시장에서 우리나라 수출상품의 점유율이 낮아지면서 수출이 총 998억달러 줄어들 것’이라고 덧붙였다. 공교롭게도 10년 전 동아시아 전문가라는 한 미국인이, 한국이 대만·중국과 함께 미국을 위협할 기술대국이 돼 있을 것이라고 전망한 그 시점에 정작 한국은 선진국 시장에서 경쟁력을 잃고 있었던 것이다.

여기에 이 신문은 사설을 통해 “우리는 이제 외화가득률이 낮은 저가제품 위주의 수출에서 탈피해야 한다. 또한 이를 위해선 개개 상품의 품질만이 아니라 국가 전체의 이미지도 잘 관리해야 함을 깨달아야 한다”고 언급했다. 이 사설의 제목은 ‘자만이 빚어낸 경쟁력 상실’이다.

제33주년 6·10민주항쟁 기념식이 열린 10일, 서울 용산구 남영동 민주인권기념관(남영동 대공분실) 옥상에 대형 태극기가 걸려 있다.<사진=뉴시스>

이후 대한민국은 역사상 최악의 경제 소용돌이라고 할 수 있는 IMF 늪에 빠졌고, 지금 2020년을 맞았다. 강산은 두 번이 바뀌었지만, 여전히 사회 곳곳에는 IMF 후유증이 악착같이 공존하고 있다. 당시 사회에 갓 발을 디딘 청춘들은 이제 사회 중심축인 ‘라떼(나 때는) 세대’가 됐다. 국난극복이 취미라 할 만큼 건전하고 강인한 국민성 덕일까. 조금 더디긴 했지만, 대한민국은 기술강국인 일본과 무역전쟁에 버금갈 정도의 긴장감을 고조시킬 만큼 기술대국으로 자리했다는 내외적 평을 받고 있다.

여기에 코로나19 팬데믹 시점에서 대한민국의 기술력을 전 세계에 입증했다. 방역뿐만 아니라 의료·IT기술까지. 더 이상 한국이 표본으로 삼아야 할 대상이 보이지 않게 된 것이다. 시대의 흐름은 이제 대한민국이 앞서 나가야 할 때라고 누누이 강조하고 있다. 이는 더 이상 외화가득률이 낮은 저가제품 위주의 수출로는 안 된다는 의미다. 그만큼 기술분야에 있어 다시 한 번 체질개선을 할 기회를 잡아야 한다는 의미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여기에 더해 한 가지 더, 국가 전체의 이미지도 잘 관리해야 한다는 부분에 대해서도 언급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글의 시작점인 1987년 6월10일 자 신문을 다시 한번 살펴보자. 당시 경향신문 12면에는 민정당 전당대회 대의원 투표에서 노태우 씨가 대통령 후보로 확정됐다는 내용이 실렸다.

신문을 몇 장 더 넘기면 인간 노태우를 소개하는 글이 한 면 가량 실렸고, 한참을 더 넘겨 마지막 면에는 ‘6·10 규탄대회 원천봉쇄’란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당시 현장에는 5만8000여명이 모였다는 사실도 함께다. 이제는 하나의 문화제 형태로 자리 잡은 ‘촛불집회’ 이전 형태에서는 최대 규모다. 그만큼 많은 국민이 한 목소리를 내고 싶은 것이 있었다. ‘이한열’이라는 젊은 목숨을 빼앗아간 그 시국에 국민들은 참된 민주주의 실현을 간절히 원하고 있었다.

어느 언론사 사설에 실린 ‘대한민국이 선진국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선점하기 위해서는 상품의 품질만이 아니라 국가 전체의 이미지도 잘 관리해야 한다’는 참뜻은 여기서 살필 수 있다. 세계 최강대국에 자리할 수 있는 두 가지 조건 격인 ‘기술력’과 ‘민주주의’. 2020년 지금의 대한민국이 할 수 있다. 중기이코노미 채민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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