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장 파국으로 치달을 듯 했던 미중 간 무역갈등은 일단 멈춰 섰다. 지난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과의 무역합의에 대해 “3개월 전과 약간 다르게 본다”고 한 발언, 양국 간 갈등의 실체를 인정하면서도 숨고르기에 들어선 것으로 해석된다. 

그럼에도 한국의 수출전선에 드리운 먹구름은 여전히 짙다. 11일 한국은행이 공개한 통화신용정책보고서는 “주요국에 비해 양호한 개선 흐름을 보이고 있는 중국 경제가 미·중 무역갈등으로 다시 타격을 받을 경우, 우리나라의 對중 수출이 적지 않은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보고서는 또 “지난해 크게 불거졌던 미중 무역갈등이 코로나19가 전세계로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다시 심화되는 조짐이다”고 지적하고, 1단계 무역합의로 봉합됐던 양국 간 갈등이 다시 격화된다면, 우리 수출의 하방 리스크도 커질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미국의 중국기업에 대한 규제, 글로벌 기업의 탈중국화 가속 등이 “對중국 의존도가 높은 우리 수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소지가 있다”고 우려했다. “중국 기술기업들의 성장 약화, 중국내 다국적기업의 리쇼어링 증가 등은 對중 중간재 수출비중이 높은 우리 수출의 감소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밸류체인이 글로벌화된 통상환경에서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은 미중 간 무역갈등의 직접적인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다. 2018년 시작된 미중 무역갈등이 최고조에 달했던 지난해, 한국이 입은 피해가 무척 컸다는 점이 이를 입증한다.

10일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이 내놓은 ‘한국의 FTA 15년 성과와 정책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2018년 한국의 제1 수출상대국은 중국으로 전체 수출의 26.8%를 차지했다. 4위인 홍콩(7.6%)을 포함하면 비중이 34.4%까지 올라간다. 

중국에 이어 미국(12.0%), 베트남(8.0%), 일본(5.1%) 등 5대 수출상대국과의 수출비중은 전체의 59.5%에 달한다.

보고서는 “미중 통상분쟁, 일본의 수출규제 등 통상환경의 불확실성이 확대되고 있는 상황 속에서, 우리나라의 미국·중국·일본 등 주요국에 대한 높은 의존도를 완화시켜야한다”고 제언했다. 이어 “FTA를 통한 국별 수출 다변화와 분쟁에 대한 안전장치 마련에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다른 한편으로, “최근 WTO 개혁의 일환으로 미국이 제기한 개도국 지위문제에 대해 미래 WTO 협상에서 개도국의 특권을 주장하기 않기로 입장을 정리했다”는 점을 지적하며, 변화된 통상환경에 대응해야한다고 강조했다. 미국의 WTO 개혁요구는 중국을 겨눈 화살의 성격이 크지만, 국제통상질서 재편을 촉발했다는 점에서 한국의 적절한 대처가 요구된다는 주장이다. 

1995년 이후 세계경제질서를 이끌어온 WTO를 대체할 새로운 통상질서의 등장이 본격화될 것이란 전망은 다수 경제단체가 공유한다. 전경련이 최근 미국 등 18개국 경제단체와 국제기구 3곳 등 21개 단체를 대상으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한 단체 중 31.3%는  온 WTO 체제 기반의 기존 통상환경이 파괴되는 역사의 변곡점이 도래했다고 봤다.

뿐만 아니라 코로나19 이후 WTO 중심의 다자무역질서에 대한 변화를 어떻게 전망하냐는 질문에, 지역별 경제블록 중심으로 세계무역질서 판도가 재편되고 결과적으로 WTO가 무력화될 것이란 응답도 48%에 달했다.

지역별 체제로의 전환보다 WTO를 대체·보완하는 새로운 무역협정기구에 대한 논의가 시작될 것이란 전망도 20%였다. 그러나 WTO 개혁의 가속화와 기존 합의 이행에 탄력이 붙을 것이란 응답은 20%에 그쳤다. 전경련의 이번 설문조사 결과는, 국제통상질서와 글로벌 공급망 재편에 앞서 한국정부에게 선제적인 대응전략을 준비해야한다는 과제를 제시한 셈이다. 중기이코노미 이창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