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도급 업체의 기술자료를 유용한 두산인프라코어㈜에 대해 2018년 공정거래위원회가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을 부과하고, 법인과 관련한 직원을 검찰에 고발하기로 한 결정을 내린 것은 하도급거래에 만연했던 기술탈취 행위를 제재한 대표적인 사례다.

두산인프라코어는 굴삭기 부품의 구매가격을 낮출 목적으로 부품 공급업체를 변경하는 시도를 했고, 그 과정에서 기존 납품업체의 기술자료를 해당부품의 새로운 공급처가 될 업체에 전달해, 그 업체가 부품을 개발하는데 활용하도록 했다. 두산인프라코어가 2015년부터 2017년까지 3년 동안 30개 하도급 업체를 대상으로 ‘승인도’라는 부품 제조에 관한 기술자료를 제출받은 총수는 382건이다. 승인도는 원사업자가 위탁한 제품이 위탁한 대로 제조될 수 있는지 여부를 사전에 확인하기 위한 목적으로 하도급 업체가 작성하는 도면으로서, 그 도면에는 해당제품의 제조방법에 관한 내용이 망라돼 있다. 두산인프라코어는 그 기술자료를 요구하면서 서면을 통해 요구한 적도 없었다.

더불어민주당 송갑석 의원이 15일 개최한 ‘대기업 갑질 피해사례 발표 및 근절방안 정책토론회’에서는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LG전자, 롯데건설 등 대기업들로부터 기술탈취 등 갑질 피해를 입은 중소기업 관계자의 피해사례가 발표됐다.   ©중기이코노미

기술탈취, 곳곳에서 일어났지만 피해구제는 어려웠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LG전자, 롯데건설 등 대기업들로부터 기술탈취 등 갑질 피해를 입은 중소기업 관계자의 피해사례가 발표됐다. 기술탈취에 따른 피해가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지만 공정위에 신고하는 경우도 많지 않을뿐더러, 실제 신고하더라도 피해사실로 인정받는 것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

중소벤처기업부가 2018년 실시한 중소기업 기술보호 수준 실태조사에 따르면, 기업부설연구소를 보유한 중소기업의 14.3%는 거래기업(대기업 등)으로부터 자사가 보유한 중요한 기술자료 제공을 요구받은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정부의 기술유출 피해 예방 및 지원사업에도 불구하고 기술유출로 인한 범죄는 2012년 448건에서 2016년 528건으로 증가했다.

기술관련 분쟁이 발생하면, 중소기업은 피해사실 입증이 어렵고 손해배상액이 불충분해 대부분 소송을 포기한다. 2015년 중기부의 지식재산권 분쟁 실태조사에 따르면, 기술침해와 관련한 소송시 중소기업의 가장 큰 애로사항은 증거자료 제시 및 입증의 어려움(51.9%)으로 나타났다.

기술탈취 유형 다양…솜방망이 제재에 기술탈취 늘어

하도급관계에서 나타나는 기술탈취·유용 행위는 ▲‘승인도’ 등을 명목으로 처음부터 핵심기술을 요구하거나, 제3자에 유출하면서 부족부분을 한꺼번에 요구 ▲품질관리, 국가기관의 검사 등에 필요하다며 기술자료 요구 ▲이원화(다각화), 규격화 등의 경영방침에 따라 하도급 업체가 개발한 기술자료를 확보해 제3자에 유출해 제품을 생산하도록 유도 ▲처음에는 하도급 업체의 기술이나 제품 가치를 인정해 정상적인 납품단가를 정했다가, 재계약 과정에서 기술자료를 요구하며 납품단가 인하요구를 하거나 거래거절 등이다.

김 변호사는 대기업 입장에서는 기술탈취(편취) 행위로 얻는 이익에 비해 행정당국으로 부터 사후 제재조치를 받는 과징금과 손해배상액 등이 턱없이 낮아, 대기업이 부족한 기술을 우선 탈취(편취)하자는 유인이 발생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비밀유지협약 의무…거래 해지시 비밀자료 반환·폐기를

<그래픽=채민선 기자>   ©중기이코노미

김 변호사는 기술자료를 요구하는 관행을 근절하고, 공정한 기술거래 질서를 확립하기 위해서 대·중소기업 간 비밀유지협약서(NDA) 체결을 의무화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상생협력법에서는 기술자료 요구를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지만 많은 대기업이 구두, 전화, 메일 등을 통해 비밀자료를 요구하고 비밀유지협약서를 체결하지 않는다. 중소기업의 경우 상대적으로 열위에 있고 법률적 지식과 인력이 부족해, 서면 요구나 비밀유지협약서 작성 등의 권리를 당당하게 주장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따라서 상생협력법을 개정해 대기업이 중소기업에 기술 비밀자료를 요구하는 경우, 반드시 비밀유지협약서를 체결하도록 규정하고, 위반할 경우 벌칙을 부과해야한다는 것이 김 변호사의 주장이다.

또 하도급법에서는 원사업자가 ‘정당한 사유’를 입증한 경우, 수급사업자에게 예외적으로 기술자료 요구를 허용하고 있다. 정당한 사유로 인정되는 경우는 ▲공동특허 개발과정에서 필요한 경우 ▲공동기술개발 약정 범위 내에서 필요한 경우 ▲대금 인상폭 결정과 직접 관련된 경우 ▲제품 하자 규명과 직접 관련된 경우 등이다.

김 변호사는 이 정당한 사유 요건을 삭제하고, 원사업자가 해당 기술요구 및 유용행위가 정당화될 수 있는 특별한 사정을 입증하도록 법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아울러 하도급 계약이 해지되면 기술자료를 하도급 업체에 반환하거나 폐기해야 하는데, 원사업자가 기술자료를 반환하거나 폐기하지 않는 관행이 여전해, 기술자료를 서면으로 요구할 경우 해당 서면에 기술자료의 반환, 폐기 일자 등을 명시하도록 하도급법 시행령을 개정하는 것도 필요하다. 중기이코노미 채민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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