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살아남는 게 목표다.” “잘 하고 말고가 어딨어. 올해는 버티는 게 잘하는 거지.”

코로나 이후 그나마 작업을 이어가기 위해 투잡, 쓰리잡으로 버티던 작가들마저 일이 끊기거나 반 토막 났고, 작업실 월세를 밀리기 시작하거나 전시가 엎어지면서, 어렵지 않게 들리는 말들 중 하나다.

한 번 터지면 굉음을 내며 폭발할 듯해, 속으로 밀어 넣고 또 다시 속으로 게워내기를 반복하던 불안의 감정들이 아무렇지 않은 덤덤한 표정의 얼굴의 가면을 쓰고 입 밖을 들락거렸다. 만일 입 밖으로 불안의 얼굴이 내미는 순간 낚아채어 바닥에 패대기를 쳤다면, 뱃속에 검게 타들어간 감정들이 주렁주렁 매달린 포도송이 같은 모습으로 드르륵~ 뽑혀져 나올지도 모르겠다는 상상을 했었다.

실로 코로나 이후 전시소식이나, 작업 이야기를 주로 주고받으며 안부를 확인하던 작가들, ‘잘 버티고 있느냐’의 내용이 빠지지 않기 시작했고 서로 우울증을 호소하기도 했다.

기실, 어지간한 가난과 엄청난 작업량과 노동량에도 굴하지 않던 이들조차 겨우 작업을 이어갈 수입조차 끊기고 나니 불안증이 고개를 쳐들기 시작했다.

크고 작은 대부분의 전시들이 규모와 상관없이 취소되거나 그나마 확실하지 않은 ‘미래(?)’로 밀리기도 했으며, 대부분의 국공립 미술관 전시들은 오픈하지 않는다. 몇 작가는 작품판매가 예정돼 있던 작품들이 전부 취소되기도 했고, 몇몇은 국내 레지던시 입주가 확정되고도 입주일정이 미정인 상태로 내내 기다리고 있기도 하다. 얼마 전 모 미술관 기획전시를 준비 중이던 작가는 큰 규모의 전시이니 만큼 그간 해왔던 작업 중에 대규모 작업을 준비하느라 무려 7톤 가량의 작품을 옮겼어야 했다. 미술관 설치로 한참을 바쁘게 지냈으나, 오픈은 아직까지 하지 않고 있다.

관 측에서는 재오픈 일정이 나오는대로 기재하겠다 했으나 언제가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많은 작가들이 작품설치를 끝내고 전시 포스터와 홍보가 돼 있으나, 아무도 관람하지 못하는 상태가 된 것이다. 이에 많은 국공립 미술관을 비롯 갤러리들도 비대면 전시를 열고 있고, 유튜브나 각종 소셜미디어를 통해 전시를 관람할 수 있도록 하고 있는 실정이다. 필자 역시 원래대로라면 입주했어야 하는 해외 레지던시 입주가 내년으로 미뤄진 상태다.

이렇듯 예상했거나, 이미 짜여진 스케줄이 코로나19 사태 이후 줄줄이 취소되거나 변경되고, 비대면 전시형태로 이뤄지고 있다.

코로나 이후 전시소식이나 작업 이야기를 주로 주고받으며 안부를 확인하던 작가들, ‘잘 버티고 있느냐’의 내용이 빠지지 않기 시작했고 서로 우울증을 호소하기도 했다.<사진=김윤아 작가>

빠듯했던 수입조차 유지가 어려워지자 각종 지자체에 신청할 수 있는 지원금을 받기 위해 신청서를 쓰기 시작했다.

‘긴급지원’이라는 말이 붙거나 ‘코로나 긴급지원’으로 시작하는 모든 지원은 작품매입 형식과 지원금 형식이 있었는데, 매입은 정해진 작품 사이즈나 규모 안에서 지원을 받았다. 지역 문화콘텐츠 사업 같은 경우 역시 비대면 추진사업을 지향하고 있음을 분명히 명시하고 있고, 가능한 한 온라인 내에서 활동 가능한 형태를 구상하기를 원했다.

작품매입의 경우는 지역 제한을 두고 있어서 필자는 작업실 주소지가 포함되는 지역을 찾아 그 중 한 곳에 지원서를 작성했다. 작성해야 할 서류를 다운 받아 화면 한가운데에 띄워놓고, 나는 한동안 손을 움직이지 못하고 가만 바라봤다. 너무나 지긋지긋했고, 공허했다.

기금 단위가 컸던 지역 문화콘텐츠 공모에 지원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으나, 비대면 전시형태의 사업을 구상해야 한다는 게 마치 시리얼을 미숫가루에 말아 먹는 듯 답답했고, 스테이크를 고추장에 찍어먹는 것 마냥 어색했으며, 식빵이랑 먹는 청국장 마냥 여하튼, 하여튼 맛이 없었다.

한동안 자판 앞에서 서성이던 손을 어쩌지 못하고 있을 때 전화가 울렸다. 동료 작가였다. 모 지역 공모가 떴는데 같이 팀으로 지원해보면 어떨까 하는 전화였다. 한참을 이야기하다가 처음 씩씩하게 전화 걸었던 그녀의 수화기 너머 목소리가 잦아들기 시작했다.

내용을 형식에(비대면) 맞추려다 보니 계속 억지스러워졌고, 조악해지기 시작하는 걸 그녀도 나도 입 밖으로 내지 않았을 뿐 서로 느끼고 있던 걸게다. 좀 더 생각해 보자고 이야길 하고 통화를 마쳤다.

생각해보면 지자체들도 인식이 부족하다. 공공미술 대부분의 지원금액은 벽화사업으로 빠지고, 덕분에 지역예술 살리기 취지는 무색하기 짝이 없었다. 해외에서는 최대 십년 주기 공공미술 작업을 한국 내에선 대부분의 과정이 1년으로 끝난다. 잘 알다시피 무슨 무슨 벽화마을이라고 떠들썩하게 하지만, 그로인해 생긴 지역주민의 염증은 더 크다. 예술가들을 불러 보아 다양한 미술놀이를 하는 사업들은 그저 예술적 쉼터(?) 정도로 자리매김하거나 그조차도 유지되지 못하고 일회성 이벤트로 끝나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한국의 공공미술은 바라보기조차 창피할 정도로 흉물스럽고 조악하기 짝이 없는 모양새를 갖추고, 버리지도 못하는 비싼 쓰레기 조각처럼 여기저기 그 모습을 보는 일도 어렵지 않다.

코로나 이후 공공미술은 여전히 벽화마을로 초점이 맞춰져 있다. 자료에 따르면, 벽화마을이 바이러스처럼 번져 나가기 시작한 것은 2006년 통영에 위치한 동피랑 마을이 벽화로 유명세를 얻기 시작하면부터다. 그 후 지금까지 벽화마을이 생긴 게 100여 곳이 넘는다.

덧붙이자면, 건축비의 1퍼센트 이상을 미술작품 구입 등에 사용하도록 권장하는 ‘미술장식제도’는 처음 작가에게 일자리 창출과 수입 등의 취지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폐단을 낳기도 했다. 공사비를 절감하려는 건축주들이 작품을 보기보다는 리베이트를 많이 주는 작가에게 집중적으로 작업을 의뢰하기 시작했고, 그 사이 건축주와 작가를 알선하며 중간에 커미션을 가져가는 브로커들까지 생겨났다. 더 나아가 공공미술만 노리는 ‘작가’들이 생겨나 중국이나 동남아 쪽에 공장을 두고 싸게 조각을 제작하는 전문 작가들을 보는 게 이제는 낯선 일도 아니다.

이제 비대면 형태이고, 바야흐로 유튜브 시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직 아무 글도 적지 못한 서류를 열어놓은 노트북 화면을 껐고 전화기를 보니 ‘생방송 중’ 이라는 알람이 뜬다. 무심코 클릭을 해보니, 모 미술관에서 마이크를 든 도슨트가 방송으로 작품을 소개하고 있다. 내가 앉은 자리는 그대로인데, 내가 방금 어디를 들어가고 어디로 나왔다는 말인지. (중기이코노미 객원=김윤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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