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SPC그룹 허영인 회장과 파리크라상 등 계열사가 검찰에 고발됐다. 공정거래위원회가 허 회장 등이 통행세 등을 통해 계열사 SPC삼립을 부당하게 지원한 사실을 적발하고 제재에 나섰다. 이 사건을 보면, 총수일가의 사적인 이익추구가 국민경제에 어떤 피해를 끼치는지 잘 알 수 있다.

공정위 조사결과, SPC 그룹의 제빵 계열사들은 밀가루 등 원재료를 계열사로부터 직접 구입하는 대신, SPC삼립을 통해 구매했다. 아무 역할도 없이 거래 중간에 끼어 SPC삼립이 챙긴 이익을 이른바 ‘통행세’라고 한다.

이처럼 SPC삼립이 7년간 부당하게 414억원을 지원받았기에, 3개 제빵계열사가 판매하는 제품의 소비자가격은 비쌌다. SPC삼립이 제품원가를 높인 탓에 소비자가 직접 피해를 봤다. 아울러 잼과 같은 원재료를 공급해야 할 기존 사업자인 중소기업들은 사업참여 기회를 박탈당했다.

공정거래법은 특수관계인에 대한 부당지원이나 일감몰아주기를 금지한다. 총수일가의 사적인 이익추구를 의미하는 ‘사익편취’ 규제대상 회사의 현황도 공개한다. 하지만 기업지배구조가 근본적으로 개선되지 않는 한, 공정위의 제재에도 불구하고 총수일가의 사익추구 행태를 근절할 수 없다. 총수일가 이외 계열사와 경쟁업체, 국민경제에 발생하는 피해를 예방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현행 공정거래법은 총수일가 지분이 30% 이상인 상장회사(비상장회사는 20%이상)에 대해 사익편취 규제를 적용한다. 총수일가에게 부당한 이익을 귀속시키는 4개 유형의 부당한 내부거래가 제재대상이다. 

지난 10일 국회에서 열린 ‘2021년 주주총회, 기업지배구조 개선 방안 모색을 위한 토론회’에서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정상영 변호사는, 공정거래위원회의 ‘2019년 대기업 지배구조 현황’ 자료를 근거로 사익편취 규제대상 회사에서 총수일가의 이사등재 비율이 56.6%에 달한다고 지적했다.

지분율이 기준보다 다소 낮아 규제대상에서 벗어난 이른바 ‘규제 사각지대’ 회사들 역시 총수일가의 이사등재 비율이 23.0%에 달했다. 규제대상이 아닌 회사들(10.5%)이나 전체 회사 평균치(17,8%)보다 월등히 높은 수준이다. 

총수의 2·3세가 이사로 등재된 회사들 중 규제대상이거나 사각지대에 해당하는 경우도 67.8%에 달했다. 사익편취 규제대상인 기업의 경우 이사회를 총수일가가 장악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규모가 큰 기업의 경우 총수일가가 이사회를 장악해 운영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기에, 상법은 자산 2조원이상 상장사에 사외이사와 감사위원회 설치 등 안전장치를 마련했다. 하지만 총수일가의 입김에서 자유롭지 않은 이사회가 안전장치로 기능할 수 없다. 정상영 변호사에 따르면 2018년 5월부터 2019년 5월 사이 대기업집단 이사회 안건 6722건 중 사외이사의 반대 등으로 원안대로 통과되지 않은 안건은 단 24건, 0.36%에 불과하다. 그나마 부결은 단 3건이고, 기타로 분류된 경우가 21건이다.

전체 안건 중 대규모 내부거래 관련은 11.2%였는데, 모든 안건이 원안대로 가결됐고 부결된 안건은 없었다. 사외이사와 감사위원회가 상법의 취지와 달리 거수기로 전락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최근 이사회 견제 역할로 국민연금이 주목받지만, 한계가 뚜렷하다고 정상영 변호사는 비판했다. 국민연금이 관련법에 따라 적극적 주주권 행사를 위한 규정을 만들고, 2019년 대한항공 등 일부 기업에서 이사선임시 반대표를 던진 것은 성과로 평가된다. 하지만 총수일가의 횡령이나 사익편취 사안이 발생한 기업에서, 주주제안 등 적극적 주주권 행사를 하지 않은 경우가 많아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최근 상법 개정 등을 추진 중이지만, 마찬가지로 부족한 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소수주주들의 다중대표소송을 확대하고, 감사위원 선출시 의결권 제한을 회피하는 꼼수를 막기 위한 감사위원 분리선출제를 도입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주주대표소송제 의무 도입, 노동자 대표 추천 사외이사 선임 등도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중기이코노미 이창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