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승용 박사(중국 문학, 한국외대 중국연구소 연구원)

이번 정부가 들어서서 3년여 동안 20여 차례 이상 부동산 정책이 나왔지만, 별다른 성과도 없이 정부와 여당에 대한 지지율만 하락하는 것을 보고 있자니, 부동산 문제에는 백 가지 정책을 써도 아무런 효험이 없는 것인지 참으로 안타깝다.

게다가 우리나라처럼 국토가 작고 인구가 많은 나라에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집에 대한 애착이 매우 강하기 때문에 부동산에 관해 정부가 어떠한 특단의 조처를 내려도 약발이 먹히지 않을 것이라는 말을 하는 이도 있다.

그렇지만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 3가지 기본요소로 옷과 음식과 집을 통틀어서 의식주(衣食住)라고 말하는 것처럼, 전통적으로 우리나라에서는 거주하는 집보다는 입고 먹는 것을 보다 더 우선으로 삼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중국에서는 우리처럼 입고, 먹고, 거주하는 것이라는 의미에서 ‘의식주’라고 하지 않고, 먹는 것을 맨 앞에 둬서 식의주(食衣住)라고 말한다. 먹는 것이 그만큼 현실적으로 절실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중국은 국토가 넓은 만큼 음식재료가 다양하기도 해서 세상의 먹는 것이 중국에 모두 있다는 의미에서 “식재중국(食在中國)”이라고 즐겨 말하듯이, 중국은 그야말로 식도락의 천국이라고 할 만하다.

신석기 시대 원시 인류의 생활상을 그린 상상도다. 인류가 농사를 짓고 정착생활을 위해 물가에 움을 파고 살기 시작하면서 ‘부동산’이 생명을 이어가는 중요한 수단이자 재산이 된다고 여기기 시작했을 것이다. <사진제공=문승용 박사>

그렇지만 우리나라나 중국에서 인간 삶의 기본요소 가운데 거주한다는 의미인 주(住)의 순위가 뒤에 자리하고 있는 것은 같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아주 오래전 구석기 시대 원시 인류가 수렵생활을 하던 때에는 일정한 지역에 정착해 살지 않았기 때문에 집이라고 할 만한 거처가 따로 없었을 것이니, 어느 지역이 좋고 나쁘다거나 어느 집이 비싸고 싸다는 인식조차 아예 없었을 것이다.

이후 신석기 시대 원시 인류가 정착생활을 위해 비로소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 땅이 삶의 터전이자 재산이 된다는 인식을 했을 것이다. 당시 인류는 농사를 짓기에 유리한 물가 부근 평지를 농지로 삼고 그 곁에 거주할 움막을 짓고 살기 위해서 이른바 명당을 찾아다니며 다른 사람들과 다툼을 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당시까지만 해도 사람이 얼마 되지 않았으니, 다른 사람이 이미 자리 잡고 사는 곳은 피해서 또 다른 곳을 찾아가면 될 일이니까, 그 땅을 빼앗으려고 굳이 피 터지게 싸우는 일은 흔하지 않았을 것이다.

기원전 6세기 공자가 동굴에서 태어났다는 기록에서 보듯이, 이때까지만 해도 보통 사람들은 편의에 따라서 아무데나 살 곳을 정할 수 있었으니 집 문제가 살아가기 위한 절실한 조건은 아니었던 것 같다.

공자 이후 100여 년 뒤에 살았던 맹자의 시대가 되면, 보통 백성들도 이사 다니는 일이 삶의 주요 관심사가 되지 않았나 싶다.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에서 보듯이, 맹자 어머니처럼 당시 사람들은 자식 공부를 위해서 혹은 생계를 위해서 이 집 저 집으로 이사를 다녀야만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맹자네는 어째서 애당초 좋은 교육환경이 보장된 서당 근처로 이사하지 않고 장례 터와 시장 부근으로 이사했던 것일까?

맹자가 공자의 다음 가는 성인이라 해 아성(亞聖)이라 하고, 그의 사당을 아성부(亞聖府) 또는 맹묘(孟廟)라고도 한다. 맹묘 안에는 맹자가 공자의 도를 계승해 떨쳤다고 하는 뜻의 ‘도천니산(道闡尼山)’이라는 편액이 있다. <사진제공=문승용 박사>

단지 생계만을 위해서라면 당연히 시장 근처에서 계속 살아야만 했겠지만, 그래도 자식의 교육이 중요하다고 여겼던 맹자의 어머니는 생계의 어려움을 무릅쓰고 서당 근처로 이사했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먹고 사는 것보다 자식의 공부를 우선했던 것이 바로 맹자 어머니가 오늘날 현모양처로 존경을 받는 이유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오늘날 흔히 고위공직자들이 청문회에서 인사 검증을 받을 때 자식 교육을 위해서 불법전입을 했던 것이라고 실토하면, 그래도 좋은 교육환경에서 자식을 키워보고 싶은 것이 부모 마음 아니겠냐며, 얼마간 동정을 받는 것 또한 맹자 어머니 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특정지역에 좋은 교육환경과 여러 편의시설은 물론 많은 일자리가 있는데다가 일단 자리 잡고 나면 큰 시세 차익이 보장되다 보니, 많은 사람이 몰려가 살고 싶어 하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지 모르겠다.

한편, 노자가 ‘도덕경(道德經)’ 80장에서 이상적인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백성들에게 자신이 사는 곳을 편안히 여기게 하고, 자신의 풍습을 즐거이 여기게 하면… 늙어 죽을 때까지 이리저리 옮겨 다니지 않을 것이다(安其居, 樂其俗,… 民至老死不相往來)”라고 했다.

노자의 말처럼, 오늘날과 같이 물질 만능의 자본주의 시대에 국민을 한곳에 묶어 두고 옮겨 다니며 살지 못하게 할 수는 없을 것이겠지만, 백성들이 지금 사는 곳에서 마음 편히 즐겁게 여긴다면 굳이 애써서 어느 특정한 곳에 몰려가 살려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오늘날 정부가 그때그때 땜질식 처방을 내놓기보다는 온 나라를 모든 국민이 살고 싶도록 좀 더 멀리 내다보는 부동산 정책을 세워야 할 것이다. (중기이코노미 객원=한국외대 중국연구소 문승용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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