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유력 경제지인 이코노미스트(economist)가 한국의 가정들이 빚더미에 허덕이고 있다고 최근 진단했다. 이코노미스트는 한국 가계저축률이 1988년 19%에서 2012년 4%로 급락해 OECD 국가중 최하치이고, 늘어나는 가계부채가 경제성장을 위협할 것이며, 한국의 연금기금은 규모가 작고 사회복지 혜택들은 충분치 않다고 경고했다. 이 신문은 한국 정부가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 급성부채뿐 아니라 만성부채도 해결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즉 만성부채가 발생할 수 밖에 없는 사회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우리나라 경제도 흔들릴 것이라는 분석이다.

가계부채를 줄이기 위한 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부채규모는 1000조원을 넘어섰다. 일반가정에서 빚이 줄기는커녕 꾸준히 증가할 수 밖에 없는데는 두가지 큰 원인이 있다. 첫 번째는 여전히 하늘 높을 줄 모르고 치솟는 아파트값을 비롯한 주거비용이다. 가계지출 가운데 주거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 2012년에 8.0%를 넘어섰고 지난해에는 8.2%까지 늘었다는 보도다. 올해에도 전월세가격 인상 등으로 주거비 부담은 가파르게 오를 것이라는 전망치가 곳곳에서 나온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빚을 내 아파트를 구입한 경우에는 매달 이자 갚아가느라 허덕일 수 밖에 없다.

두 번째는 사교육비다. 아이 한 두명 있는 일반 가정에서 매달 학원비로 나가는 비용이 적잖이 50만원에서 100만원 수준이다. 갈수록 가처분 소득은 줄어드는데 사교육비는 요지부동이고 그렇다고 안 시킬 수 없으니 빚을 내야 하는 게 학부모 입장이다. 지난달 한국개발연구원(KDI)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40대가구의 경우 처분가능소득의 약 14%를 교육비에 지출했다. 미국 40대가구의 교육비 지출이 처분가능소득의 약 2.1%임을 감안하면 이해가 어려운 수치다.

이코노미스트가 지적했듯 우리나라 사회복지 제도는 곳곳에 구멍이 나 있다. 여기에 돈을 벌수 있는 시기에 주거비와 사교육비로 허덕인 장년층이 제대로 된 노후를 준비했을리 만무하다. 우리나라는 노후대비가 부족하기 때문에 정년퇴직 후에도 가장 오래 일하는 나라다. 나이가 들어도 일을 할 수 있다면 행복한 일이겠으나 생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내몰린다면 이는 불행의 시작에 불과하다. 최근 OECD에 따르면 2012년 기준한국 남성의 유효 은퇴연령은 평균 71.1세, 여성은 평균 69.8세로 2위를 차지했다. 퇴직금, 연금만으로 노후를 대비할 수 없기 때문에 고령임에도 노동을 해야 하는 게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정부는 ‘중산층 70% 복원’을 약속했다. 하지만 과도한 주거비와 사교육비 지출로 노후대비는 커녕 갈수록 부채만 늘어나는 실정에서 중산층 복원은 요원할 뿐이다. 실효성없는 인기영합 대책은 과감히 정리하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새롭게 판을 짤 것을 촉구한다. 말만 번지르르하게 내세우지 말고 가계부채가 왜 느는지, 중산층이 왜 얇아지고 있는지, 왜 소득은 점점 양극화되고 있는지 원인부터 찾고 없애라. 사교육비를 줄이고 아파트 가격을 내리는 것부터가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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