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부터 우리 사회에 ‘을’들이 목소리를 조금씩 내기 시작했다. 아니 더 이상 참지 못해 터져나온 절규에 가깝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듯하다. 그 절규는 많은 사람의 생명까지 위협하고 또 빼앗아갈 만큼 절박했지만, 이를 해결할 명답은 쉽게 찾지 못할 정도로 우리 사회는 복잡해졌다. 이런 가운데 우리 사회의 과도한 서비스 요구가 을의 고충을 더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과도한 서비스’는 곧 돈과 직결됐다. 이 때문에 기업 입장에서는 빠른 배달이 필요했으며, 24시간 영업을 따르지 않으면 불이익을 준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배달노동자는 정해진 시간 내에 물건을 전달하기 위해 위험을 감수해야 했다. 24시간 영업을 이어가기 위해 수많은 편의점에서는 추가 인력이 필요했으며, 이를 감당하지 못하면 점주 스스로 초월적 노동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한국의 원자재 경제 예속을 두고 가마우지 경제라고 말을 했다. 피땀은 우리 노동자가 흘리는데, 이윤 상당수는 원천기술을 가졌던 일본이 챙겨 가는 구조다. 지금이야 상황이 많이 개선됐지만, 여전히 일부 산업은 그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좌향기성(坐享其成)이라는 사자성어도 있다. 흔히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되놈이 가져간다는 속담과 같은 의미다.

사회가 과도한 서비스를 요구하고, 기업은 이에 부응한다는 미명하에 다채로운 사업을 추진했다. 그 사업을 수행하는 것은 결국 을로 규정되는 노동자이고, 소상공인이었다. 위험을 감수하고 초인간적 노동으로 벌어들인 이윤이 오롯이 을의 몫이 되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과도한 서비스를 강요하는 사회 문화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나왔다.

손님 발길 뚝 끊어진 늦은 시간 매장 문을 닫고 일정 시간 지나면 배달서비스를 하지 말자는 것이었다. 그리 낯선 풍경은 아니다. 대한민국이 아닌 다른 여러 국가에서 늦은 밤 느끼는 차분함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변화를 요구할 명분이 분명했다. 때문에 ‘적당함’으로 조절된 서비스 시스템은 다소 시간이 걸릴 수 있겠지만, 시나브로 자리할 것이라는 기대가 컸다.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가 시행될 당시, 골목상권은 9시면 문을 닫거나 배달서비스로 전환해야 했다. 한 푼이 아쉽다보니 소상인 상당수는 배달대행업체에 의지하거나 직접 배달 길에 나서기도 했다.<사진=뉴시스>

그러나 아쉽게도 비대면 시대는 오히려 더 과도한 서비스를 요구하고 있다. 연일 코로나19 확진자가 수백 명에 이르자, 정부는 지난달 말부터 사회적거리 두기 2.5단계를 시행했다. 이에 맞춰 골목상권은 9시면 문을 닫거나 배달서비스로 전환해야 했다. 한 푼이 아쉽다보니 소상인 상당수는 배달대행업체에 의지하거나 오토바이를 몰고 직접 배달 길에 나서고 있다.

그리고 지난 9일 새벽, 인천 을왕동에서 치킨 집을 운영하던 50대 남성이 음주 운전자의 차량 사고로 사망하는 안타까운 일이 발생했다. 사회는 이해 못할 행동을 보이고 있는 운전자를 비난하고, 늦은 시간 고되게 일하다 유명을 달리한 사실에 안타까워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번 사고를 이미 직감했을지 모른다. 정부는 이 사고를 방치하고 있었다는 지적에 토를 달면 안 된다.

비대면 시대를 맞아 배달서비스가 크게 확대되면서, 이로 인한 정부 차원의 대책은 물론이거니와 변화된 시민의식도 필요한 시대지만 여전히 기존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배달문화는 인터넷 발전과 맞물려 급속히 성장했다. 여기에 코로나19는 오프라인 소비행위를 더 위축시켰다. 이런 이유에서 배달문화 확산세는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는 제2, 제3의 을왕동 오토바이 사고가 나지 않도록 대책 마련을 서둘러야 한다. 소비자 역시 일상의 변화에 성숙한 자세를 보여주길 기대해본다.

유럽 어느 조용한 도시. 어둠이 내리자 차분하고 조용한 이채로운 풍경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본다. 하지만 대한민국 어느 도시에서 보는 비슷한 풍경에 대해서는 ‘을씨년스럽다’, ‘촌스럽다’라고 언론이 먼저 나서 말하곤 한다. 비대면 시대가 몰고 오는 진짜 변화는 ‘사람 중심’의 경제가 아닐까. 중기이코노미 채민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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