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5년여 전,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 직전 한 달여간에 걸쳐 삼성증권은 사기에 준하는 범죄를 저질렀다. 삼성증권은 자신의 고객인 삼성물산 소액주주를 속여 손해를 끼쳤음에도 아무도 처벌받지 않았다. 정부는 사기성 부당거래를 기획·실행했던 삼성물산 임직원들이 영업을 계속할 수 있도록 방치했다. 그래서 삼성증권은 ‘좋은 증권사’란 명예를 거머쥘 수 있었다. 

금융소비자연맹이 지난 9월2일 발표한 ‘소비자 평가 2020년 좋은 증권사’ 순위에서 삼성증권은 3위를 치지했다. 국내 56개 증권사 중 삼성증권 윗자리에는 NH투자증권(1위)과 한국투자증권(2위)이 있을 뿐이다. 국민 대다수가 하루하루 살아가기조차 벅찬 현실에, 망각이 더해지지 않았다면 삼성증권은 ‘나쁜 증권사’로 기억돼야한다. 

시간이 흘러 잊었던 삼성증권의 부당거래 수법은 엉뚱한 곳에서 폭로됐다. ‘삼성그룹 불법승계’ 혐의로 재판 중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공소장을 통해서다. 검찰이 법원에 제출한 공소장에는, 이 부회장의 삼성그룹 승계를 목적으로 삼성증권이 고객을 기망하고, 결과적으로 금전적 손해를 안기는 과정이 낱낱이 기록됐다. 아울러 그 과정에서 삼성증권 임직원들이 행한 불법행위도 구체적으로 적시했다.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 직전 시점으로 돌아가보자. 애초부터 무리한 합병이었기에 합병 성사까지는 넘어야할 산이 많았다. 삼성물산 지분 7.12%를 보유한 헤지펀드 엘리엇 어소시에이트가 제기한 주총결의금지 가처분 소송은 애교수준이다. 청와대와 보건복지부장관까지 압력을 행사해, 삼성물산 최대주주 국민연금(10.1%)에게 합병찬성을 강요한 범죄에 비하면 그렇다는 말이다. 삼성물산 주주에게 불리한 합병이란 이유로, 의결권 자문사 세계 1위 ISS·세계 2위 글래스루이스 양사가 낸 합병반대 권고 또한 건너기 쉽지 않은 강이었다. 

다급해진 이재용 부회장. 악화된 여론을 반전시키기 위해 합병 주총일 직전 나흘간에 걸쳐 언론에 광고비로 36억원을 뿌렸다. 광고효과는 즉시 나타났다.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간의 합병찬성을 촉구하는 제목의 기사가 쏟아졌다. “국민연금 삼성물산 합병 찬성, 당연한 선택이다”, “삼성물산 소액주주들 ‘엘리엇 먹튀 우려’ 위임장 전달 늘어”, “국가 경제냐, 주주이익이냐…국민연금의 선택은” 등 등. 삼성물산 가치가 과소평가됐다면서, 이유있는 문제제기를 했던 엘리엇 어소시에이트. 해지펀드란 멍에를 극복하지 못하고 ‘공공의 적’으로 낙인찍혔다. 

그래도 불안했던 이재용 부회장. 삼성물산 1%미만 소액주주 지분도 긁어모으기 시작했다. 일반 개인주주(18.4%), 일반 법인주주(0.78%), 삼성그룹 전·현직 임직원(1.73%) 지분을 합하면 20.91%에 달하기 때문이다. 이건희 회장 등 삼성그룹 및 특수관계인(13.82%)을 훨씬 상회하는 지분으로 합병주총 결의를 좌우할 큰 물량이다. 

이 대목에서 삼성증권이 등장한다. 삼성증권 리테일 본부 및 전국 지점망에 PB까지 총 동원돼, 1%미만 소액주주를 합병 우호세력으로 돌리는 작업에 들어간다.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지시에 따라 일반 개인주주 지분(18.4%) 중 7%를 우군으로 확보하기 위해 움직였다. 일반 법인주주와 삼성그룹 전·현직 임직원 지분은 전량(2.51%) 확보를 목표로 삼았다.  

당시 삼성증권은 제일모직 자문사로 삼성물산 및 삼성물산 주주와는 이해상충 관계에 있었다. 적정성 여부를 두고 논란 중인 합병비율(삼성물산 1주=제일모직 0.35주)이 제일모직 자문사 입김에 따라 달라져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이렇듯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시 전자의 가치가 올라가면 후자의 가치는 떨어질 수밖에 없는 제로섬 관계였다. 

그럼에도 삼성증권은 삼성물산으로부터 삼성물산 주주성명, 주민등록번호(사업자등록번호), 주소, 이메일주소, 보유주식 종목·수량 등의 정보를 넘겨받았다. 또 삼성증권은 받은 정보를 자사가 보유한 고객정보와 대조해 고객의 연락처, 주소, PB 등이 관리하는 고객의 성향 등의 정보를 다시 삼성물산에 전달했다. 

나아가 삼성증권 임직원들은 삼성물산 주주에게 이해상충 사실을 고지하지 않고 합병찬성 의결을 직접 권유했다. 마치 통상적인 상담인 것처럼 가장해 전화 또는 방문을 통해 삼성물산 주주가 자신의 이익에 반하는 결정으로 하도록 유도했다. 삼성증권 임직원들이 삼성물산 주주를 속여 삼성물산 1주당 제일모직 0.35주 이상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박탈했다. 사기죄 구성요건 중 하나인 ‘기망행위’를 한 셈이다. 

삼성증권 임직원들의 기망행위 등으로 모은 소액주주 지분은 2.51%. 2015년 7월17일 삼성물산 주주총회에서 69.53% 찬성으로 제일모직과 합병은 통과됐다. 합병 가결 정족수(2/3)를 불과 2.86% 초과하는 박빙의 승부였다. 만약 삼성증권 임직원들이 끌어모은 소액주주 지분(2.51%)이 합병반대로 돌아섰다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은 무산됐을 게 분명하다. 

삼성증권 임직원들의 기망행위로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은 성사됐다. 결국 삼성증권의 권고(기망행위)로 합병찬성을 결정한 삼성물산 소액주주는 손해를 봤다. 반면 합병으로 제일모직 대주주 이재용 부회장은 3조~4조원 가량의 부당이득을 얻은 것으로 추정된다. 결국 삼성물산 소액주주를 기망하여 제3자(이재용)에게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게 해준 삼성증권 임직원 대다수는 형법 347조가 규정한 사기범에 해당할 수 있다. 

설사 사기죄 구성요건을 완전히 충족하지 못했다고 치자. 그렇더라도 삼성증권이 이해상충 사실을 숨김으로써 삼성물산 주주가 자신에게 손해되는 결정을 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이해상충 방지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삼성증권의 ‘쌍방대리’ 행위는, 그 자체만으로도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형사처벌 대상이다. 아울러 삼성증권이 삼성물산으로부터 삼성물산 주주명단 등 개인정보를 받아, 당자사의 동의없이 임의로 활용한 행위 또한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으로 형사처벌 대상이다. 

이처럼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 직전 삼성증권이 벌인 사실상의 사기행위가 검찰 공소장에 적시됐다. 부당한 이익을 취한 범죄행위가 이미 드러났음에도 단죄하지 않으면, 동일 유사한 범죄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 향후에도 고객의 이익과 이재용의 이익이 충돌하면, 삼성증권은 이재용을 선택한다는 의미다. 삼성증권이 ‘나쁜 증권사’에서 벗어나, 제3위 ‘좋은 증권사’가 되기 위한 최소한의 전제는 과거와의 단절과 청산이다. 금융당국의 조사와 검찰수사를 촉구한다. 중기이코노미 논설위원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