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45(Weighty painting’ installation view.

나는 그림 그리기를 지속하는 것에 관심을 둔다. 나에게 그림은 어떤 대상을 지시하는 매개체가 아닌 그림 그 자체가 스스로의 존재를 지속하기 위한 자기 목적적인 성격을 갖는다.

그래서 언제나 과정 속에서 그림을 그리는 나 자신이 지향점이 되어 진행된다. 그리고 나는 이 과정 속에서 목격되는 반복, 변화, 생성, 소멸의 다양한 변주들을 드러내는 작업을 하고 있다.

‘러닝 페인팅(Running Painting)’ 프로젝트는 매일 그림 그리기를 수행하는 작업이었다. 매일 그리기는 의식적으로 그림을 그리는 과정 속에 나를 던져두는 것이다. 이 방식은 그림과 나를 밀착시켜 내가 그린 그림에 대해 생각해보는 반성적 사고의 시간을 제거한다. 그래서 나는 그림 그리기를 머뭇거리게 하는 어떤 검열의 과정도 없이 직관적으로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약 4년 동안 이 작업을 진행하면서 수백점의 회화들이 생산되었다. 이들은 자연스럽게 어느 하나로 분류하거나 해석할 수 없이 비일관적인 것이 되었다. 나는 이들을 완성된 결과물이 아닌 그림 그리기 행위가 만들어내는 ‘부산물(By-product)’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이 설치 작업에서는 이미지가 은폐되어 구조물에 설치되었고 그림의 물성이 드러날 뿐이다.

‘NO. 776(Black star)’, pen on paper, 28.1x21cm, 2020.

‘무거운 그림(Weighty painting)’은 최소한의 가벼운 붓질로 그려진 수백장의 드로잉들을 접착하여 만든 조각이다. 이 그림-조각은 실제로 그 물리적인 무게가 20~30kg에 육박하기에 ‘무거운 그림’으로 이름 지어졌다.

‘무거운’의 또 다른 의미는 ‘가치 있는’, ‘의미 있는’과 같은 중의적 의미를 내포한다. 한 장의 ‘가벼운’ 그림이 반복적으로 쌓여 무게를 만들어 낼 때 ‘무거운’ 그림이 된다. 반복적인 무의미한 행위가 의미로 전환되는 순간을 만들고 싶었다.

‘검은 별(Black star)’은 1.0mm 검정색 볼펜으로 무수히 많은 선을 그어 별의 형상을 그린 것이다. 수없이 많은 선 긋기의 수고로움으로 탄생한 하나의 별은 화려하게 반짝이지만 실상 텅 비어 있는 허상과 같다. 오히려 배경이 된 어둠은 드러나지 않지만, 공간을 가득 메우며 별을 존재하게 하는 실체라 할 수 있다.

이 작업을 통해서 나는 결과라 생각되는 것과 그 과정의 관계를 드러내고 싶었다. 결과는 텅 비어 있고 과정은 가득 차 있다. 그래서 과정은 언제나 현재의 삶을 가득 메우고 있는 진솔한 것이라 생각한다. (작가노트, 정리=중기이코노미 객원 예술만세 김현성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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