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FICIAL’, Pigment Print, 2020.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세계의 구조를 발견하는 것, 형체의 순수한 기쁨을 탐닉하는 것, 이 혼돈에는 모두 질서가 있다는 것을 밝히는 것이다.” 20세기 가장 위대한 사진작가 중 한 명이라 할 수 있는 프랑스의 사진작가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이 남긴 말이다.

카메라 기술이 발달하고 휴대폰 카메라가 익숙해진 우리에게 사진은 더 이상 낯선 기술이 아니다. 하지만, 그 사진을 통해 익숙하게 마주한 세계가 아닌 그 이면을 바라본다면 어떤 모습일까? 일상 속에 우리가 망각하고 있었던 가시 세계의 숨은 시선을 찾아내는 작가가 있다. 사진을 통해 사진 너머의 영역을 유영하는 작가 구제치를 만나보자.

Q. 자신의 작품 세계를 소개해달라

일상적인 환경 안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유형적 피사체인 건축물을 소재로 한 이미지를 활용해 새로운 사진들을 만들어보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장소성과 물성 등 고유의 특성을 배제하고 독자적인 이미지로서의 가능성을 가늠해보고, 또 간단한 편집으로 얻어지는 우연성에 그 특징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진짜도 가짜도 아닌, 실재도 허구도 아닌 중의적인 범주의 이미지, 이게 과연 사진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라는 지점에까지 다다르는 것이 현재의 지향점입니다.

Q. 함축된 구도로 추상적 감각이 느껴지는 사진 작업이 인상적이다. 현재의 작업 방식을 취하게 된 계기가 있는가?

특정한 날 마음먹고 시작했다기보다는, 많은 과정이 자연스럽게 이뤄졌다고 생각됩니다. 사진을 ‘찍는’ 것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누구나 갖고 있는 스마트폰 덕분인데, 일상, 소통, 먹짤보다는 시간이 지난 뒤에 보아도 의미가 퇴색되지 않는, 찍는 입장이 배제된, 철저히 대상화된 추상적이고 패턴화된 이미지를 찾고 찍는 쪽으로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이 기간이 나름대로 훈련이 되었다고 생각됩니다.

이후에 우리 주변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유형적 피사체인 건축물의 다양한 패턴과 외형에 매료되어 건축물을 담아보는 쪽으로 천착하게 되었고, 이들을 소재로 더 새로운 관점을 부여할 수는 없을까를 고민하면서 지금의 결과들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이 또한 완성된 형태가 아니고 더 나은 방법을 찾아가는 과정에 있습니다.

Q. 자신의 작품 세계가 잘 담긴 대표작을 추천해준다면?

‘HOOKED’를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실재하는 건축물이 이미 훌륭하기도 하지만, 겹겹이 쌓여 흘러내리는 듯한 곡선들과 가운데서 극적으로 맞아 떨어지면서 생기는 날카로운 지점들이 묘한 긴장감을 주고, 또 제가 의도하는 우연성이 가장 극적으로 나타난 작품이라고 생각됩니다. 이러한 결과면 이같은 방식을 더 고수해도 되겠구나 하는 안도감이 들기도 했습니다.

‘HOOKED’, Pigment Print, 2020.

Q. 감상자는 작품을 통해 무엇을 느끼길 원하는가?

기존에 실재하는 공공경관을 조금 다른 시선으로 관찰하다 보면 새로운 이미지로 전환될 수 있다는 인식, 관점과 과정 등에 공감해주셨으면 합니다. ‘재해석’의 관점. 나아가 ‘나도 할 수 있을것 같은데?’의 동기부여까지 이어지면 더 좋겠네요. 예술가만이 예술을 하는건 아니니까요.

Q. 주로 사진매체를 활용하는데, 사진으로 작업을 선보이는 이유가 있는지?

표현에서의 용이함 때문입니다. 소셜미디어가 발전할수록 사진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는 확신은 이전부터 있었구요. 작가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기 때문에 드로잉 등 미술실기를 따로 배우거나 연습한 적이 없습니다. 제가 선보이는 이미지들을 손으로 그려내거나 디자인 툴로 구현하라고 하면 꽤 힘든 배움의 과정을 거치거나 시간이 오래 걸리거나 하겠지만, 사진으로 작업하는 건 이보다는 수월합니다.

완벽하게 원하는 이미지를 얻으려면 데이비드 라샤펠(David LaChapelle)처럼 완벽한 연출을 해야겠지만, 건축물에서의 연출은 이미 설계단계에서 잘 되었다고 보고, 저의 역할은 주관적인 시선으로 이미 존재하는 실재를 재해석하는 데에 방점이 찍혀 있다고 생각합니다.

표현을 위한 소스는 사진으로 충분히 얻을 수 있습니다. 또 동양의 ‘사진’의 의미는 똑같이 베껴진 상태인 ‘결과’이고 서양의 ‘Photograph’의 의미는 나누어 보면 ‘빛으로 그리다’ 라는 ‘과정’인데, 후자의 관점에서 보면 이 작업들도 드로잉에 포함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Q. 앞으로 어떤 작품을 준비할 계획인가?

지금같은 방식의 이미지들로 올 12월에 아트스페이스 이색에서 첫 개인전을 열 계획입니다. 그리고 이 방식을 유지하고 좀 더 발전시키면 한 장의 틀에 다양한 이미지를 결합시켜 그 안에서 더 깊은 내러티브가 읽혀지는 콜라주 형태의 사진이 될 거 같구요. 그외 소재나 방식에 변화를 줄 수도 있겠죠. 지금의 팬데믹 상황이 앞으로도 계속 이어진다면 한 인간과 세계의 경계면 등을 포착하는 시리즈를 해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조금은 있지만, 어떻게 구체화 될지는 확언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Q. 작가로서의 가장 큰 고민은 무엇인가?

의미부여에 대한 측면인데요. 드로잉이나 연출사진과는 다르게 표현의 영역에서 어떠한 의미로 이렇게 구성했다 하는 의미의 층위가 얕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제 작업들이 누군가 이미 만들어놓은 실재를 빌려오는 것에서부터 시작되기 때문에 의미나 정당성 등이 부족할 수 있습니다. 이를 채우려면 다양한 역사, 미학, 철학들을 익혀야겠지만 쉽지 않네요. (중기이코노미 객원=김찬용 전시해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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