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김윤아 작가>

#1. 날은 춥지만 볕이 좋아서 두툼한 야상하나 두르고 동네 칼국수 집으로 향했다. 입구가 보이는 쪽으로 자릴 잡고 멍청하게 티브이 위에 시선을 아무렇게나 올리고 있는데 마스크를 안 낀 중년의 여인이 들어온다. 그 뒤로 노스페이스 까만 패딩 점퍼를 입은 모습이 마치 까만 눈사람 같은 착시를 일으키던 중년 남성이 들어와 함께 착석한다.

여인은 머리칼에 수분이 남은걸 보니 머리를 감은지 얼마 되지 않았고, 얼굴 표면에 고슬거리는 들뜬 파우더 가루를 보니 급한 화장이다. 오렌지 컬러가 감도는 립스틱 역시 입술에 채 달라붙지 못하고 곧 그녀를 떠날 듯 잔뜩 들떠 있었다. 착석하자 패딩 점퍼의 지퍼를 중간까지 내리면서 드러난 남성의 배는 바다 위의 부표마냥 크고, 둥글고, 쓸쓸했다.

칼국수가 나오기까지 수분이 흐르도록 정적이 흘렀고, 들뜬 립스틱과 부표는 둘 사이에 눌러 앉은 바위 같은 정적을 외면하고 있었다.

밑반찬이 나오자(밑반찬이라고 해봐야 김치 한 접시가 전부인 식당이다), 남성의 팔이 스프링처럼 튀어 올라 김치 하나를 집어 올리는데 빨간 국물이 둥근 부표 위에 두어 방울 떨어졌다. 당황한 여자는 달그락거리는 티슈곽에서 냅킨을 뽑아 그의 부표에 올렸다.

아마 오늘 오전에는 자신들의 요새를 싼 값에 빌린 저들이 서둘러 닿았을 것이다.

그래. 곧 크리스마스가 오겠지.

#2. 40년간 운영하던 식당 주인은 처음엔 시큰둥했다. 재단지원을 받아서 대표가 기획한 상점 관련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업소를 찾아 갔을 때 일이다.

취지를 설명하며 매출에도 도움이 되고자 한다고 했을 때 그는 ‘매상은 더 오르지 않아도 된다’라고 했을 정도였는데, 오늘 내내 일을 진행하는 동안 레몬 컬러로 변해가는 벽을 바라보느라 수십 번을 들락거리며 오래된 자신의 가게를 확인하던 그는 얼굴에 차오르는 즐거움을 감추지 못했다. 1차 작업이 다 끝나자 그는 자장면을 먹으라며 한사코 부른다. 처음 우리를 뿌옇게 바라보던 그의 동공이 구름 한 점 없는 밤하늘 마냥 총총하다.

<사진=김윤아 작가>

처음 시범케이스로 맡게 된 중국집은 지역에서 40년된 가게로 비교적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편이다. 외관은 여기저기 페인트가 벗겨지고 습기를 먹어 거무죽죽한 각종 먼지의 얼룩이 땅콩 껍질 마냥 깨지고 너덜거렸다. 입구 쪽의 간판 역시 시커먼 먼지 때가 먹으로 그린 듯이 간판의 끝자락을 따라 단단히 고정돼 있었다.

가게 앞에 서서 외관을 느리게 바라보면서 이미 정해진 예산 안에서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잘’ 진행할 수 있을지 고민했으나, 그 터무니 적은 예산을 넘기지 않기란 그야말로 ‘코끼리 냉장고에 넣기’만큼이나 불가능한 일이었다.

다른 얘길하자면, 12월은 개인적으론 정말이지 여러 악재들이 손잡고 전력질주로 달려드는 대환장 파티의 달이었다. 3회 연속 수업이 예정된 워크숍이 코로나로 인해 취소되고, 12월 말까지 진행되고 있는 진주에서의 개인전은 코로나로 인해 방문객이 오지 못하는 상황이 됐다. 또, 몇년 전 입주했던 레지던시에서 초대 받은 오픈스튜디오 행사에서는 해외 레지던시 관련해서 발표하기로 돼 있던 일정이 코로나 확진자 방문으로 인해 취소됐고, 지난 몇 달간 수 없는 회의를 진행하며 시안을 짜온 공공미술 프로젝트도 내년으로 미뤄졌다. 

와중에 제안을 받은 홍(보) 반장 프로젝트에 사실 큰 애정이 가진 않았다. 일단은 심신이 매우 지쳐있는 상태이기도 했고, 언급한 대로 턱없이 부족한 예산과 다급한 일정 때문이었다. 더욱이 이 프로젝트를 만든 대표 역시 ‘쳐내는’ 일 정도의 느낌으로 제안을 하기도 했었다.

어차피 12월 모든 일정이 넘어간 와중에 못할게 무엇이란 말인가. 진행하게 될 가게 앞을 서성이다 유리창 가까이 붙어 내부 모습을 들여다보게 되었는데 가게만큼이나 오랜 세월을 들락거렸을 것 같은 단골들의 모습과, 다닥다닥 붙은 테이블 사이를 오가며 서빙하는 중년의 아주머니와 텅 빈 시간이면 티브이 위에 시선을 놓고 있는 가게 사장으로 보이는 분의 풍경을 우두커니 바라보다 보니 누군가의 말처럼 ‘사람이 오래 한 곳에 머물면 그 곳이 된다’라는 말이 스친다.

잘 하고 싶다는 애정이 훅 들었고, 지난 주 내내 외부에 들어갈 작업구상과 재료를 다듬느라 작업장에 꼼짝 없이 붙어 있었다. 아마 일을 진행하면서 참여자 모두가 비슷한 마음이었나보다. 모자란 재료 예산은 참여인원들이 조금씩 보탰다. 일을 진행하는 동안 가게 사람들이 거리로 나와 새단장하는 모습을 보며 즐겼고, 소일거리를 도왔다. 이 겨울 먹고 살자고 참여한 일이었는데.

그 청량한 눈빛들에 뿌듯함이 본봉보다 두둑한 보너스 같다. 일을 마치자 어둑한 저녁이 됐고, 가게 안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이 더 짙다.

곧 크리스마스가 오겠지.

…

오래된 가게도, 떠다니는 부표에게도 공평하게 눈이 온다면 참 좋겠다. (중기이코노미 객원=김윤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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