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근의 그림은 모든 형태의 명암을 없애고 간결하게 표현해 평면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 평면성은 박수근이 유일하게 활동했던 미술모임인 ‘주호회’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측된다.

‘주호회’에는 한국인뿐만 아니라 평양 박물관의 학예원이었던 일본인이 함께 있었는데, 그가 한국적인 것의 모색을 강조해 고구려 고분벽화를 함께 연구했다고 한다. 평면적으로 묘사된 고분벽화와 같은 구성은 박수근뿐만 아니라 함께 활동했던 최영림의 그림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굴비’, 20.5×36.5cm, oil on canvas, 1962, 갤러리현대.

◇화강암, 예술이 되다=박수근은 평소 석탑과 석불의 형태와 질감에 관심이 많았고, 아름다움을 느꼈다. 그리고 그 표면을 표현하기 위해 평소에 돌을 직접 가져다 놓고 관찰하며 화강암 질감의 사실적인 재현에 중점을 두고 바탕 작업을 했다.

실제로 그의 그림을 분석해보면, 8개의 층으로 구성돼 그 표현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 것을 알 수 있다. 1960년 이후 한국 화단에 젊은 미술가들을 중심으로 추상미술 운동이 전개되기는 했으나, 그 이전부터 시도한 박수근의 화풍은 무척 독보적이다.

화강암은 한국에서는 흔하게 찾아볼 수 있는 돌이지만, 외국에서는 찾기 어려운 돌 중 하나다. 그리고 돌처럼 표현된 질감 위에 간결한 형태의 그림은 어린 시절 강가의 돌 위에 그림을 그리던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1980년대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사실주의 화풍이 유행을 하며 돌에 대한 질감을 사실적으로 표현하는 미술가들이 많아졌다. 그러나 박수근이 살아가던 그 시대를 대변할 수 있는 감성의 그림들과는 다르다. 박수근의 눈과 마음이 포착한 전후 한국에서 불확실한 미래를 살아가고 있지만, 이를 극복하려는 민초들의 강한 의지는 화강암의 질감으로 더욱 빛이 나고 있다.

‘세 여인’, 20.5×36.5cm, oil on canvas, 1960년대, 갤러리현대.

◇현실에 맞선 의지, 나목이 되다=소설 ‘나목’에서 박수근을 비유한 옥희도는 자신이 화가라는 정체성을 계속해서 강조하고 있다. 당시 한국에서는 먹고 살기조차 힘든 이들이 많았으며, 예술가의 위상이 오늘날에 비하면 높다고 할 수도 없었다.

사실 미군부대에서 현실과 타협해 그들의 취향에 맞는 그림을 그렸다면, 그 당시로서는 큰돈을 벌 기회도 있었다. 그러나 박수근은 현실과 타협하지 않았고, 자신의 마음에 품고 있는 이상을 중요시 여겼다.

그렇기에 그는 평생 끊임없이 외부의 공격으로부터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했다. 여러 실험을 거쳐 자신의 화풍을 개발했고, 또 좋은 그림을 위해 같은 구도를 반복해서 습작하기도 했다.

그의 노력에 보상의 빛이 보이는 위치에 서게 됐을 때, 미술가로서 한창의 나이에 세상을 등진 박수근은 여러 가지로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박수근이 담담하게 남긴 한국의 1950~1960년대 풍경은 전쟁과 이념의 다툼으로만 얼룩지지는 않았던 당시의 보통날들을 보여주고 있다.

어쩌면 박완서의 해석처럼 박수근 그림에 등장하는 가지만 앙상한 나무들은 겨울을 이겨내고 봄을 기다리는 나목이었을 것이고, 또 그 마른 나무들은 척박한 현실에 내일의 희망을 가슴에 품고 있는 박수근, 자신의 처지를 반영한 것이다. (중기이코노미 객원=김태현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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